'사랑'은 인간의 의식 한 가운데 존재하는 뜨거운 불길이다. 때로는 기름을 들이부은듯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활활타올라 자신과 주위를 온통 불길에 휩싸이게 하는가하면 때론 찬물을 끼얹은 것 처럼 꺼질듯 말듯 희미할 때도 있다. 사랑을 원하지 않는 자가 있을까? 지나간 20대를 돌이켜 보건데 사랑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을 던져도 후회없을 사랑, 가슴 아픈, 가슴 시린 사랑, 이루어 질 수 없는 금지된 사랑일지라도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은, 어쩌면 소설속의 주인공을 꿈꾸었는지도... 사랑은 모든 인간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간직된 본능과도 같은 것인가 보다.
조제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열정적인 삶을 원하는 조제는 가끔씩 자신이 무익한 존재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떠올린다. 조제에게는 연하의 남자친구 자크가 있지만 한때 그녀와 연인관계였던 베르나르에게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문제는 베르나르에게는 착한 아내 니콜이 있다는 사실. 그들은 말리그라스 부부가 주체하는 살롱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는데 알랭 말리그라스 역시 부인이 있으면서도 베아트리스라는 여배우를 사랑한다. 여기서 알랭의 조카 에두아르가 나타나 베아트리스를 사랑하고 베아트리스는 성공을 위해 졸리오를 선택하고... 이렇듯 복잡하게 얽히다니 사랑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그 이유다. 한때는 금지된 사랑(?)에 괴로와하는 사람을 보면 "사랑이 맘대로 되니?" 라는 말에 공감하며 함께 걱정해주고 울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신이 들때까지 맞아볼래?"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비정상적인 연인관계에 대해 주먹부터 불끈 쥐게 되는 습성이 생긴이상 소설속에 숨겨진 깊은 뜻을 떠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들(물론 축복받은 연인들이다)은 함께한 세월에 어울리는 '사랑의 옷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처음엔 핑크빛에 진홍빛 옷만 입다가 때론 아이보리나 초록빛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가끔씩 검은색 옷을 입기도 한다. 사랑의 본 모습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보여질 뿐이다. 서로만 바라보다가 한 곳을 바라보게 되고, '우리 두 사람'에서 '가족'이 되는 것이 사랑이다.
책도 책이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작가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출판계의 마릴린 먼로같다고나 할까. 만인의 연인이라 불리우며 오늘날까지도 섹시한 여성의 대명사로 손꼽히지만 외롭고 쓸쓸했던 마지막 모습이 그녀의 삶을 말해주지 않았던가. 사강은 자유분방한 생활로 유명했다. 두번의 결혼과 이혼, 도박, 약물중독 등 심지어 법정에서도 "남을 해치치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고 했단다. 우선은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당당하게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과연 '진정한 당당함'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랑과 인생에 대한 사탕발림같은 환상을 벗어버리고 냉정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인간과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는데...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아닌 사강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꼈던 인생과 사랑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이토록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작가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왠지... 연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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