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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 세상 모든 사랑의 시작과 끝
존 스펜스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좋아하는 예술가나 작가의 생애에 관심을 가지는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들의 삶을 읽는 다는 것은 작품속에 그려진 겉모양이나 줄거리뿐만 아니라 작품 그 자체를 진정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오만과 편견> <엠마>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천재적 작가 제인 오스틴의 전기다. 그녀의 작품속 주제는 늘 사랑이었다. 인간이 예술과 문학이라는 분야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사랑'받았던 주제가 있었던가. 사랑은 기쁨이기도 하면서 슬픔이며, 행복이기도 하고 분노와 좌절이기도 하다. 사랑은 곧 인간이고 삶 자체다.
우선 제인 오스틴을 만난다는 반가운 마음만 앞섰다는 것을 인정한다. 책의 앞부분에 복잡한 가계도가 배치된 것을 확인 하는 순간부터 약간의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원한 것은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인데 그녀를 알기위해서는 수많은 친족과 가족, 이웃들의 이야기까지 들어주어야 하니... 주인공을 인물들이 언급될때마다 일일이 확인하면서 읽어야 하는 점도 힘들었지만 소설적 요소를 완전 배제한 전기적 접근 자체가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 즈음에서 시야를 조금 더 넓게 가져보기로 했다. 18세기 영국 사회의 모습을 알아가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자 책 읽기가 한결 편해졌다. 우선은 책의 첫 부분이 유산을 배분받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집안 어른이 돌아가시면 얼마만큼의 유산을 물려 받느냐가 한 어린 아이의 일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이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좀더 많은 유산을 받기를 바랬고, 대부같은 후원자를 찾아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로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였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싫어했던 것으로 보이는 제인도 유산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했다. 검은색 레이스 조각을 훔쳤다는 누명을 썼던 한 부인은 중범죄로 분류되어 구속되었는데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교수형에 처해지거나 14년의 오스트레일리아 유배형이 선고될 위기에 처해졌다고 한다. 결국 무죄판결을 받아 풀려났지만 그런 점도 당시의 사회를 잘 보여주는 기준이 되고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제인이 살았던 시대의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유산을 배분받을 때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사회적 활동에도 제약이 따랐음은 물론이다. 당시 많은 여성들은 결혼을 통해 자신의 안정된 삶을 보장받기를 원했는데 지참금이 신부로서의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 씁쓸하다. 지참금이 없거나 기타 사유로 결혼을 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하지 못했던 여성들은 결국 남은 생을 남자 형제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결혼한 여성의 경우도 잦은 출산과 육아, 자녀 교육등의 힘겨운 짐을 감내하여야만 했는데 실제로 아기를 낳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18세기 영국 여인들의 삶이 같은 세기를 살았던 한국 여인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언듯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제인이 작품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작품 하나하나가 탄생하기까지 과정을 보면, 어떤 작품을 쓸 무렵 제인과 제인의 주변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일이 작품의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작품의 배경이나 캐릭터의 설정 심지어는 등장인물의 이름조차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초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특정 인물을 위해 헌정되었다. 그렇다면 제인의 작품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일까. 단연코 제인이 사랑했던 남자 톰 러프로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어떠한 오만과 편견도 이겨냄을 보여주었던 작품 속 주인공은 어쩌면 제인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
제인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사랑'을 주제로 로맨틱한 소설들을 썼음에도 자신은 사랑하는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제인이 원했던 것은 남편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에 목 매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존재로, 진정한 소설가가 되어 작품 활동을 계속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제인은 평범한 여인과는 다른 당차다고 해야할지 뭔가 특별함이 있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제인을 가장 특별하게 만들어준 힘은 바로 '열정'이었다. 18세기의 여류작가가 오늘날에와서 그녀의 작품이 아닌 '제인 오스틴'으로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 또한 현대여성들이 변화된 가치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