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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학
이청준 지음, 전갑배 그림 / 열림원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중학교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라디오'였다. 반찬통만한 크기의 라디오는 도시락 크기만한 밧데리를 검은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채로 하루 24시간 할머니를 따라다녔다. 나의 기억속에 할머니는 항상 라디오와 함께였다. 마치 할머니의 분신이라도 되는양 말이다. 20여년 전이었던 그때만 해도 그 못생긴 소리통이 심심찮게 민요가락을 뽑아내곤 했는데 그 순간에 할머니의 표정이 가장 행복해 보였다. 엿가락 늘어지는 듯한 지리한 곡조를 왜그리 좋아하실까? 언니들과 "잉잉잉~~" 거리며 흉내 내다가 혼나기도 했었다. ^^;; 세월이 흘러 <서편제>라는 영화를 보면서 비로소 우리의 '판소리'가 참으로 개성있고 독특하며, 예술적인 장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니 내면의 감정을 왈칵 쏟아낸 후 진한 여운을 남기는 '우리의 소리', '한국의 미'를 그제서야 느끼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깨닫는다.
이 책에는 이청준님의 [남도사람] 연작 세 편이 실려있다. <서편제>, <소리의 빛>, < 선학동 나그네> 이 중 <서편제>는 임권택 감독에 의해 십수년전 이미 영상화되었고, 거장의 100번째 작품이자 책의 제목인 '천년학'은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것이다. 영화 개봉에 맞추어 새롭게 책이 출간되었구나 싶었는데 보통의 단편집인 경우 6편 내외의 작품이 실린 것에 비해 책이 얇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게다가 <서편제>와 <소리의 빛> 일부 내용은 주석에서 밝힌대로 겹치는 부분도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에 있어서도 평론가들의 호평속에 개봉하였으나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역시나 작품성과 흥행 두 가지 다를 만족하기란 쉽지 않은가 보다.
"사람의 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어주려 해서 심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닌 걸세. 사람의 한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누구한테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살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 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네. 어떤 사람들한텐 사는 것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것이 사는 것이 되듯이 말이네... <서편제> p.52"
한국인의 정서를 이야기하면서 '한恨'을 빼버린다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게 되버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요즘엔 '한이 맺힌다' 라든지 '한스럽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잘 없는 것을 보면 물질적 풍요가 한스러움을 달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는 있나 보다. 단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또다른 모습으로 '한'을 품기도 하고 표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점차 서구화되고 있는, 이미 서구화 되어버린 이 사회가 가끔씩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삭막함 속에 분명 무엇가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恨'이야 아쉬울 것도 없다지만 함께 시들어가는 '정情'이 그립다.
"사람들 중엔 때로 자기 한덩어리를 지니고 그것을 소중하게 아끼면서 그 한덩어리를 조금씩 갈아 마시면서 살아가는 위인들이 있는 듯싶데그랴. <중략> 그런 사람들한테는 그 한이라는 것이 되려 한세상 살아가는 힘이 되고 양식이 되는 폭 아니겄는가. 그 한덩어리를 원망할 것 없을 것 같네. 자네같이 한으로 해서 소리가 열리고 한으로 해서 소리가 깊어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것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일세. <소리의 빛> p.92 "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끊이지 않는 외세의 침략에도 꿋꿋하게 나라를 지켜내고... " 라는 점에 공감하면서 그 시대를, 몸서리쳐지는 시대를 사셨던 분들에 대해 고개가 숙여진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이 '전쟁'아니던가. 고려나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것도 없이 할머니 세대만 해도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6.25등 말 그대로 수난의 시대를 사신 분들이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다. 해방둥이, 전후 세대로서 급변하는 시대를 사신 분들이다. 그분들의 힘은 "내 자식은 배 곯리지 말아야지, 내 자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시켜야지. 내가 ~하지 못한 것이 한인데..." 어쩜 내 부모님도 '한덩어리'를 조금씩 갈아마시 면서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셨으리라.
책을 덮으면서, 문득 비만과 관련해서 인터뷰했던 의학박사의 주장이 떠오른다. 똑같은 칼로리의 음식을 섭취해도 서양인보다 동양인 특히, 한국인의 경우 비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데 그 이유인즉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기근', '기아'에 익숙해져 유전자속에 정보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기아'에 강하다(?) 적자 생존의 법칙인가 하겠지만 하여간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분의 주장이 참으로 설득력 있게 와닿았다. 생뚱맞게 왠 '비만'에 왠 '유전자'냐 싶겠지만, 한국인에게 있어서 '한恨'이란 유전자 속에 깊이 새겨진,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무엇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