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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세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살짝 바꾸어 본다면, 우여곡절 끝에 양가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하는 내용으로 끝이 났더라면 지금 처럼 오랜 세월동안 사랑받는 희곡으로 남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에 대한 환상 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금지된 사랑', '안타까운 사랑' 에 대한 동경은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보았으리라. 가질 수 없는 것, 놓쳐버린 기회에 대한 아쉬움은 쉽게 잊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여자는 자신의 바다, 그리고 모든 남자는 자신의 하늘을 품고 있어. 아니면 반대로 모든 여자는 자신의 산을, 모든 남자는 자신의 바다를 품고 있지. 그들은 상대방의 낯선 매력에 빠져들곤 하지.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에서 서로 맞닿을 수 있지만 절대 하나가 될 수 없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없지. p.36"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익숙해 지는 것, 편안함' 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 간다는 것만큼 힘든 것이 없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빛나는 것, 그것은>에서 독수리와 물고기 익투스의 사랑 처럼 서로가 간절히 원해도 공유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품을 수 없는, 안길 수 없는> 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세계를 인정해 주는 것,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사랑 아닐까?
여섯편의 사랑이야기들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바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었다. 평생을 스쳐지나가듯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튤슈와의 사랑, 역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연인 튤슈를 찾아 떠도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복수성, 즉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혹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나타나는 사랑의 신비로운 감정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그의 사랑은 '용기없는 사랑'처럼 보였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남자는 '사랑하는 것'이 그의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를 찾기 위해 지구를 몇바퀴나 돌고, 매일같이 광장에서 목이 잠길때까지 튤슈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이 그의 일이라고 말한다.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열정은 갈수록 강렬해집니다. p.185 " 하지만, 정작 그녀를 만났을 때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어쩜 그는 사랑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스스로 찰나의 사랑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짙은 검은 색 눈을 가진 튤슈든, 초록색 눈동자의 튤슈든 그녀가 혼자이든 일행이 있었는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한 마디만 했었어도 가슴이 이렇게 답답하진 않을텐데...
"튤슈가 왜 좋은 여자냐고요? 제가 사귀었던, 자신들이 튤슈라고 우겼던 여자들과는 달리 그녀는 저와 다투지 않았고, 다툴 상황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저와의 관계에서 이익을 따지지도 않았으며 제게서 뭔가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녀 자신과 저를 속이지 않았고, 위선적이거나 가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고, 음흉한 일도 벌이지 않았죠. 왜냐하면 이런 것들로 다툴 만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죠. "
책을 펼치려던 순간, 사랑을 막 시작하려는 젊은 남녀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는 띠지를 보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불가능한, 닿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 라는 것을 뻔히 아는데 무슨 생각으로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권하는 것일까. 어쩜 역자는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누군가 내게 책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도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