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삶의 여백에 담은 깊은 지혜의 울림
박완서.이해인.이인호.방혜자 지음 / 샘터사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한 편의 시나 산문을 대할때면,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가슴에 와닿는 감동만큼이나 글을 쓰신분에대한 궁금증이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글을 쓰신 작가는 어린시절이 어떠했는지. 언제부터 열정을 품기 시작했으며 글을 처음 쓰게 된 계기나 ,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개인적으로 '글쓴이의 말'이 짧지 않게 들어가 있는 책을 만나면 참 반가운 생각이 들곤 한다. 최근에는 문학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저자와의 만남'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또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설사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마련된 자리라 할지라도 독자들에겐 충분한 가치가 있다.

<대화>는 박완서님과 이해인님, 그리고 방혜자님과 이인호님의 대화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박완서님과 이해인님은 설명이 필요없는 분들 아니던가. 1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삶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삶에 대한 진솔함과 영혼을 정화시키는듯한 박완서님의 글이 6.25를 겪으면서,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보낸 슬픔을 바탕으로 씌여졌다는 것을 알고 무척 마음 아팠다.

예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내가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음이 착잡하고 혼란스러울때의 내 모습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시각화 해준 화가라는 점 때문이다. "슬픔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냥 견디며 사는 거죠. p.49" 박완서님의 말씀처럼 물한모금 넘길 수 만큼 고통스런 날을 보낼 때, 상처입은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이겨내라고, 너는 할수 있다는 강요가 아닌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다. 가만히 슬픔에 귀기울여 줄사람, 옆에서 아무말 하지 않고 손 한번 잡아 주는 것으로 슬픔을 공감해 주는 사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위로임을 깨닫는다. 한 사람의 화가가 고뇌의 순간, 절망의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킨 모습, 그 모습을 박완서님에게서도 보았다.

"제 초기 작품은 다 전쟁 얘기에요. 그것은 제가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이기도 하고... 저는 전쟁을 통해 하나하나의 소중한 개별자들이 어떻게 삶의 비극 속에 던져졌는지. 그런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 p.85
"제 자식을, 사랑하는 남편을 보낸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요? 그건 극복이 아니죠. 어떻게 참고 더불어 사느냐의 문제일뿐. 절대로 슬픔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냥 견디며 사는 거죠." p.49

이해인님을 떠올리면 가정먼저 '순수한 영혼'이란 느낌이 든다. 수녀원이란 폐쇄적인 이미지를 던져버리고 세상의 소외받은 사람을 위해 사랑의 메세지를 나누시는 모습이 항상 고귀하고 존경스러웠는데 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수녀원에서의 일화에 대해 솔직하게 들려주신 점은 얼마나 고맙던지. 내가 우러러보던 분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분들께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다. ^^

방혜자님과 이인호님은 이번에 책을 통해 알게된 분들이다. 방혜자님은 '빛'의 화가로서 "우리가 사실은 빛이고 빛에서 와서 빛으로 가는 존재로구나." 하는 깨달음 얻으셨다고 한다. 이인호님은 역사학자이면서 한국 최초로 여성 대사의 임무를 수행하신 분으로 두분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이루기 힘든 성공을 얻었고 후진들에게 길을 열어 주셨다는 점에서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일제강점기때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쓰면 벌을 서고, 집에서는 일본말을 쓰면 혼이 났던 혼란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린 마음에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었다. 그리고, 한국이란 나라가 '약소국'으로 인식되어진 시대에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어려움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지금은 지나치게(?) 당당해진우리의 모습을 반성해 본다.

두분을 통해서 꿈을 향한 열정도 보았고 강한 의지와 신념등 정말이지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당시는 1960년대다. 어린딸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신 어른들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읽은 반기문총장님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했다. 그 시대에 맞추어 적당히 공부시키고, 좋은 혼처에 시집보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딸의 인생을 위해 몇십년을 내다볼줄 아셨던 어르신들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이다.

언제부터인가 가슴속으로부터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던 분, 그분들의 대화에 동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너무 기뻤다.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들은 대신 해주시고, 궁금해 했던 대답들을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연륜이 깊다' 하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네분의 대화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신 점에서 내 인생의 거울로 삼고 싶은 분들이기도 하지만 글을 통해, 시를 통해, 예술 작품으로, 학자로서 타인에게 삶을 나누어 주시고 깊은 지혜의 울림을 들려주신 것. 그것이 진정 닮고 싶은 부분이다. 책을 읽은 후 이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도 드물었다. 제목 그대로 <대화>한 느낌, 삶을 나누어 가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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