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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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인적으로 머리아픈 일들이 좀 있다. 사무실에 대대적인 보직이동이 예고 되어 있어서 어느정도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직장 15년차, 내 업무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 보다도 자신있는 상황이지만, 책임자가 바뀐다는 것은 업무에 있어 내 스타일을 일부 포기해야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책임자가 원하는대로 기존의 업무 형태가 없어질 수도, 새로운 방식이 도입될 수도 있다. 사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더이상 직장에 얽메이고 싶지 않지만 요즘은 집에서도 업무를 걱정한다. 머리가 복잡하다.
최근에 책읽기에 가속도가 붙은 상황인데 어떤 책들은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책장이 잘 넘어가는 책, 가능한 가벼운 책, 아무 생각없이 나를 웃겨줄 책을 만나고 싶었다.
요란한 광고 문구보다는 '입소문' 때문에 이 책을 골랐고,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옴니버스식의 코믹 영화나 시트콤 같다.
뾰족한 것을 것을 보면 공포를 느끼는 조폭 중간보스, 어릴 때부터 서커스에서 자란 최고의 재주꾼이면서 공중그네에서 추락하는 곡예사, 병원 원장인 장인의 가발을 벗겨 버리고 싶은 충동때문에 괴로워하는 정신과의사, 급부상하는 꽃미남 후배를 의식하느라 공에 집중하지 못하는 3루수, 매너리즘에 빠져 괴로와하는 여류소설가 이 다섯명이 각각의 주인공이다.
주인공들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이라부의사를 찾아오는데 우습게도 모두 같은 처방을 받는다. 육감적으로 생긴 간호사가 놔주는 바늘이 엄청 큰 비타민 주사, 게다가 의사라는 사람은 코를 벌름거리며 흥분된 표정으로 주사약이 주입되는 것을 지켜본다. ^^;;

이라부라는 황당한 의사는 환자의 하소연을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들으면서도 환자의 직업적인 일이나 해보고 싶은 일들을 직접 해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어설픈 조폭 흉내도 내보고, 공중그네타기에 도전하고, 가발을 벗기고, 야구를 해보고, 소설을 쓰는등 도무지 두려움도 없고 대책도 없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과정이 어떠하며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것보다 일단은 해보자하는 마음이다. 이라부의 무모함이 천진함이 너무나도 부럽다.
더욱 황당한 것은 등장하는 주인공 모두 의사로서의 이라부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중독처럼 그를 찾게된다는 설정이다. 욕을 하고 돌아서면서도 또다시 이라부를 찾게되는 사람들. 효과가 의문인 비타민 주사를 맞아가며 ^^;; 이라부와 함께 사고(?)를 친다.

이라부의 모습은 어쩜 '순수함'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마냥 좋아서 하고 싶어 못견디는... '열정' 일수도 있겠다. 주인공들이 '강박관념'이라는 족쇄에 손발이 묶어 꼼짝도 하지 못할 때, 이라부는 한때 그들이 각자의 '목표' 만을 위해 달려가던 상황을 일깨워 주고, 하고싶은 욕망을 함께 이루어주는 존재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의 작품도 처음이고 일본의 문학상 '나오키상'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렇더라도 내용없이 웃기기만 한 작품에 문학상을 수여하지는 않을 것인데 뭔가 깊이가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책에 대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기엔 심적인 여유가 없다.

한가지 와닿는 것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감이 넘쳤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15년차라는 나의 타이틀에 행여나 오점을 남기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항상 완벽해야 하고, 항상 깔끔해야 하고,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말하자면 '눈 감고도 해낼 수 있어야 하는' 그런 위치에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 자체가 나답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뚜렷한 대책도 없이 고민만 하는 나의 모습도 일종의 '강박관념'이 아닐까?

이쯤에서 서평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내게 필요한 건 '웃음'이었고, 이 책 <공중그네>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고 본다.
내겐 어려서부터 '공상'에 잠기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그 버릇이 여전하다. 특히, 책을 읽는 내내 혹은 읽은 후, 내용을 '영화화' 해서 머리속에 떠올리는 것이다. 기존 영화에서 보았던 한 장면을 배경삼고, 내 맘대로 주연배우 캐스팅하고 해서 연출을 한다. 그렇게하면 책의 내용이 입체화 되면서 기억회로에 오래도록 저장된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도 <공중그네> 라는 나만의 영화속 한 장면이 떠올라 킥킥 거리고 있다. 이라부는 책을 통해 만난 환자(?) 들에게도 적당한 처방을 해주는 독특한 의사가 아닐까 싶다. 아님 이라부 자체가 치료제인가 싶기도 하다. 크크~~

비타민 주사대신 비타민 한알을 입속에 털어넣으며... ^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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