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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울지 않아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20대 초반 처음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무리 힘든일이 있어도 절대 울지 않겠다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눈물을 보이는 것은 다른 직원들에게 비겁해 보이는 일이라 생각했고, 박스 하나를 들어도 도와주는 손길이 싫었던 기억이 있다. ''절대 울지 않아, 절대 울지 않아!!!'' 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걸었고 상대가 누구이든 어떤 일이든 지지 않으려 바둥거리며 살았다. 그렇게 나의 과거를 회상하며 책장을 넘기기 작했다.
이 책에는 플로리스트, 체육교사, 백화점 점원, 만화가,영업사원,전업주부, 파견사원등 15명의 직장녀가 등장한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던 경험에 비추어 볼때, 각각의 내용들에 모두 공감이 갔다. 예를 들면 새로운 삶을 찾기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플로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쇼코의 말 "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 일이 안 맞는 것 같아. 꽃을 마구 잘라서 버리질 않나, 끊임없이 계절에 쫓기질 않나, 정작 꽃을 만지는 본인은 계절을 즐길 여유가 없거든." 하고 말한다. 디스플레이가 멋질수록 그녀에겐 더 무거운 납덩이가 메달려 있다.
하지만, 힘든 시기를 이긴 그녀는 기쁜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일은 놀이가 아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혹독하다. 때로는 자신감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이윽고 또 다른 형태의 자신감을 찾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일이 참모습일지도 모른다. p.19
좋아하는 남자에게 실연당하고 자살을 결심했다가 백화점 점원으로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 주인공이 자기에게 다시 돌아오려는 전남친에게... 멋지게 한방 먹이고 했던말 ''죽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생기는 법이다.'' 라는말도 무척 기억에 남는다.
영업부에 자원해서 주류를 팔던 주인공이 주류점에 들릴때마다 자신을 냉대하는 사장 때문에 고민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방법을 모색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하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주류점 사장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했던 것이다. 고객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설 때, 가장 큰 신뢰를 얻는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준 이야기이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했던 아르바이트생 이야기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남들보다 성실하게 일을 했지만 오히려 능력없는 정직원들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외로움을 느끼게 된 주인공을 보면서 직장 생활에도 처세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성실함은 높이 살만하나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았던가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말이다.
직장이란 때로는 업무적인 스트레스 보다 직원들과의 관계나 대책없는 상사, 거래처 직원과의 마찰등 사람과의 갈등이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어떤 형태로든 벽에 부딪혔을 때,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사람과 나 둘 만의 문제라면 그나마 해결이 더 쉬울수도 있겠지만 여러 직원들에게 나는 어떤 느낌을 주는 사람일까, 내가 동료직원을 떠올릴때 깐깐하다, 능력있다 혹은 무능하다, 외적으로 핸섬하다 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 처럼, 나 자신은 다른 직원들에게 어떤 단어를 연상시키는 사람일까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쫓기듯 긴장속에 살아온 나의 직장생활도 세월이 흐르면서 업무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자 이젠 여유를 누릴 줄도 알게 되었다.
직장 생활에서 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업무 능력과 대인관계가 50:50 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한때는 어린시절 내가 꿈꾸어 왔던 모습이 아닌 낯선 내 모습에 실망도 했고, 단순히 경제적인 면에서만 보탬이 된다는 것 외에는 어떤 보람도 느낄 수 없었던 삭막한 직장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단순한 경제적 뒷받침'' 은 내 삶을 여유롭게 해 주었고, ''보람''은 사회구성원으로서 ''누군가는 이 작은 톱니를 책임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동료들과 간혹 수다를 떨다가 우스게 소리를 한다. 지금 내가 이 직장을 그만두면 내 빈자리 하나를 위해 나보다 몇배는 더 능력있는 후배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일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단락이 많긴 했지만 한편의 옴니버스식 영화를 보는 듯했다.
직장 생활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 특히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가는 이야기로 서너편은 꼽을 만큼 내가 겪었거나, 주위에서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내용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몇시간만에 다 읽어버린 책이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한 단락이 너무 짧다는 것.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면 이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더라는... ㅠ.ㅠ 나만 그런가?
''절대 울지 않아2'' 는 어떨까? 3년 혹은 5년쯤 후로 설정해서 주인공들의 달라진 모습을 꼭 보여주시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