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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유디트 얀베르크.엘리자베트 데사이 지음, 조선희 옮김 / 지향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자신의 삶을 찾은 한 여자의 충격적인 보고문!' 이라는 문구에서 대략 구성이나 내용을 짐작하고 책을 펼쳤지만, 첫장에서 부터 나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 폭언, 폭력, 외도 그러면서도 겉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교수이면서 인정받는 정치가였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야! 당신은 그저 조용히 사라질 존재, 이 세상에 아무 흔적도 남길 수 없어. 당신이란 인간은 오직 나를 통해서만 그 가치가 있을 뿐이야! "
철저한 위선자요 이중인격자인 볼프강의 이 한마디에 갑자기 화딱지가 났다.
자신의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그의 태도도 화가 났지만 주인공 유디트, 남편에게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참고만 있는 그녀에게 더욱 화가났다.
자신의 꿈을 접고, 결혼과 동시에 전업 주부가 된 많은 여인들이 어느순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된다. 남편과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며 살리라 다짐하지만 그 댓가로 자신의 존재, 자신의 '이름'를 잃어버려야 했다.
그녀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계속 읽어야만 하는 고통, 같은 여자로서 너무나도 힘겨웠다.
유디트! 이제 그만... 이젠 자신을 찾아가는 너의 모습을 보여줘.
멋진 반전을 기대하며, 나 스스로를 다독여가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나 자신에 대해 순수해 지기 위해서는 볼프강을 떠나야 한다는 확신을 가진 이후부터 나는 여성 문학의 핵심 구절들을 침대 머리맡에 붙여놓고 꾸준히 나를 강하게 만드는 훈련을 시작하였다. 나는 시집에서 따낸 격언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부여한다>와 그 바로 곁에는 <회의에 빠져있을 때는 홀로!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 것!> 그리고 <나는 내게 속한다> 라는 구절들을 걸어 두었다. p.149
불현듯 몇달전 읽었던 자기개발서 <옵티미스트> 라는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아홉까지 단계중 마지막 9단계 사랑을 확인하는 것 - 나를 사랑하고 나의 가족,친구, 이웃을 사랑하며, 나아가 모든 사물과 하늘,땅, 별,달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라~ ' 세상엔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지만, 가족과 타인을 사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를 함부로 하고 자학하는 사람은 동정은 받을 지언정 사랑 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 역시 그의 아버지 세대처럼 살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지만 그의 아내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와 같은 인생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p.220
드디어 그녀의 반격이 시작된다. 통쾌하고 짜릿하다.
그러나 당장 그녀가 짊어져야할 삶의 무게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많은 여성들이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갖가지 이유들 양육권, 경제력, 사회적 시선등 더구나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남편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그녀의 가슴아픈 생활들이 참으로 마음아팠다.
아무리 차디찬 물속이라도 두려움 없이, 주춤거리지 않고 수영선수는 뛰어드는 법이야. 발가락 한쪽만 조심스럽게 담그면서 물이 아주 차지는 않을까 따위를 묻는 짓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나는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다리이론>까지도 내던져 버렸다. 다리이론-모든 인간은 혼자 설 수 있는 다리가 필요하다. 이 다리는 어디든 한 곳에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 언제나 찾아가 쉴 집이나, 아내와 그의 듬직한 남편이 있고, 직장은 영구적이어야 하며... 그러나 나는 이 안정을 벗어버리기로 했다. p.223
마침내 <나는 나>를 외치며 자신을 되찾은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쉬운 점은 주인공이 '여권운동가'로서가 아닌 평범한 직장녀로서 성공한 여성이었다면 감동이 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앞서가는 여권운동가'에 대한 거부감이 없지 않음을 밝힌다.
초기의 여권운동가들은 명백한 차별주의적 관습에서 여성의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로의 역할을 잘 해주었다.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 사회 활동할 권리, 참정권을 위해 노력했던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최근에는 '여권운동가'들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남자와 똑같아 지기위해 투쟁하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평등은... 남자가 하는 일을 여자가 하고, 여자가 하는 일을 남자도 해야 하는 것이 평등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되, 서로의 역할을 존중해 주는 것'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덮을 때쯤 아이가 다가와 TV를 켰다. 때마침 케이블에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 라는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들이 브리짓의 생일날 건배를 제안하는 장면이었다.
"브리짓을 위하여~ 있는 모습 그대로! " 얼마나 멋진 말인가~ ^^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Just as you 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