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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지난 여름, 무더위가 오기 바로 전, 나는 제주에 있었다. 제주 올레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원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었지만, 비용이나 여타 다른 이유들이 나를 가로막았고, 그것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을 때, 생각해 낸 다른 대안이 제주 올레길이었다. 그리고 직접 몸으로 겪어낸 올레길에 나는 푹 빠지고 말았다.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 시원스런 오름, 사방이 가로막힌 곳 없이 뻥 뚫는 그곳에서 나는 자유를 느꼈던 것이다.
올레 3코스. 바다에서 시작되어 오름을 오르고, 인적 하나 없는 밭을 지나 차가 지나기나 하는지 궁금하기까지 한 도로에서 나는 ‘김영갑 갤러리’를 발견했다. 올레길에 대한 정보를 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은 꼭 보고 가기를 권하던 곳이었지만, 그리 중하게 여기질 않았고, 나는 그에 대해, 그리고 그의 작업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아 그곳에 방문했을 때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사진을 보고, 그의 갤러리를 둘러보고 난 후에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아무런 편견 없이 그의 사진을, 그가 사랑한 제주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질 만큼. 그의 사진 앞에서 감격하기도 했고, 감탄의 혹은 탄식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오랜만에 저 아래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미소를 지을 수도 있었다.
아! 어떻게 이런! 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짧은 감탄사뿐이었다.
그의 사진에서는 '바람' 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얼마나 제주를 사랑하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인지..
제주는 그를 얼마나 사랑하여 이런 사진을 허락했는지...
그의 갤러리에 다녀온 느낌을 블로그에 정리하면서 내가 적었던 말이다. 사진이라 믿겨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의 작품을 보고 서울에 가서 그의 작품집이며 책들을 모조리 찾아 읽어야지, 하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서울로 돌아온 나는 그를 잊고 말았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난 건 텔레비전 카메라 광고 속에서였다. 익숙한 풍광을 배경으로 내가 찾아 읽고 싶었던 책이 보이는데, 일순 어! 하고 멍해져 버렸다. 저 사진.. 저 책... 아!

<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사진 뿐만 아니라 그는 글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았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사진도 너무 소중하고, 글도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 책을 읽어 나간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운 과정이었다. 다시 갤러리에 서 있는 듯... 그렇게 사진을 보았다. 글을 음미했다. 내가 느꼈던 제주의 바람이, 파도 소리가, 변화무쌍한 하늘의 구름이 떠올랐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눈을 감아 버리게 된다. 책을 읽으며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자연히 한권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제주도 갤러리에서 만난 그가 느낌 위주의 감성적인 사람이었다면, 책으로 만나는 그는 마음 아프게 하는 천재의 모습이었다. 사진 하나 외에는 어느 것도 모르고, 사진을 위해 자신의 평생을 바친, 재능 있는 사람은 신의 질투를 받는다고 했던가, 단명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던 천재.
그가 사진을 선택하여 제주에 터를 마련한 뒤, 사진을 찍으며 겪은 일, 만나서 정을 주게 된 사람들, 마음에 들었던 마라도, 변해가는 마라도, 루게릭 병에 걸린 뒤 투병 이야기, 두모악을 만들어가는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담겨 있다. 그렇게 그에 대해 알아 가면 알수록, 제주의 풍광이 담긴 그의 사진이 더 마음에 들어온다. 한평생을 오롯이 제주에 바쳤기 때문에라도, 제주는 그에게 그런 사진을 허락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에 한평생을 바치고서 그가 알게 된 것은 자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 뿐 아니라, ‘인생’ 그 자체 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글에는 인생을 먼저 살아간 선배의 진심어린 충고도 담겨 있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 이 길을 포기하고 다른 무엇을 선택한다 해도 그 나름의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다른 일을 선택해 환경이 변한다 해도, 나는 나이기에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혼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이 물음에 답을 얻지 못한다면 어디를 가나 방황하고 절망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분명 끝은 있을 것이다. (p64)
인생의 힘든 순간이 올 때면, 나는 올레길을 걸을 때의 나를 떠올릴 것이고, 그 길에서 만난 김영갑씨와 그분의 생, 사진, 책을 떠올릴 것이다. 하나에 미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그렇게 힘들고 고된 시간을 넘어서서 만날 수 있었던 사진과 그분의 글이 얼마나 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지 떠올릴 것이다.
그럼으로 나는 힘을 얻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
정말 마음이 벅차오르는 행복한 독서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