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도둑놀이
퍼 페터슨 지음, 손화수 옮김 / 가쎄(GASSE)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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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오랜만’ 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조용하고, 조용함이 지나쳐 적막하기까지 할 것 같은 노르웨이의 동쪽 끝 강가의 작은 집에 사는 노인이 얘기하는 ‘아주 특별한 여름’은, 뭐랄까 다음 이야기를 채근하고 싶어질 만큼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질 듯한데, 너무도 덤덤하고, 어쩌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이런 서술적 문체의 글은 오랜만에 읽어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읽는 이의 궁금증이야 내 알바 아니라는 듯,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느릿느릿 풀어내는 글솜씨가 스산한 가을밤, 왠지 오늘은 반갑기까지 하다. 

p207 난 마치 내가 그 속에 서 있는 것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을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마치 나의 머릿속을 들여다 본 양, 눈 앞에 이런 글이 있을 때...

무언가 책과 내가 교감을 한 듯, 혹은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난 듯 기분이 좋아졌다.

이 책을 표현할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빙빙돌며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옆에서 추임새처럼 넣어주는 말들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말하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나는 책을 읽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한 편의 장편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노트북’과도 같은.. 하나의 잘못된 오해로 인생이 바뀌어져 버린 ‘어톤먼트’ 같은 그런 영화가.

노인이 되어버린 후, 어렸을 때의 자신, 그리고 아버지를 회상하게 되는데, 그 도화선이 되는 것은 우연처럼, 이웃에 자신이 어린시절, 같이 있었던, 같이 그 시절을 겪어낸 러스가 살고 있었던 일이다. 어렸을 적, 이웃에 사는 욘과의 일, 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비밀스런 관계, 매력적인 미소를 지을 줄 알았던 아버지가 하던 비밀스러운 일, 여름 별장으로 쓰던 그 통나무 집에 얽힌 이야기들이 지금은 노인이 되어버린 그 소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잔잔하게 펼쳐진다. 

읽는 이에게 함축된 의미를 풀어보라고 강요하는 소설, 많은 부분을 유추해 보라고 하는 소설, 어쩌면 읽는 이에게는 고역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친절하지만은 않은 소설이다.

그래도 읽어야 하는 건, 이렇게 조용함, 경건함 속에 무언가 비밀스러움과 뜨거움을 숨겨 놓았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다.

한번 생겨버린 호기심이 나의 전부를 잠식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호기심으로 시작되어 잔잔하고 스산한 분위기에 빠지게 되는 소설. <말도둑 놀이>는 왠지 가을과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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