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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힘겹게 책장을 덮는다. 겨우, 정말 겨우 다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이 훑고 간 나의 마음속에 너무 큰 반향이 남아 큰 울림을 만들고, 그 울림으로, 마음을 채워가는 이 조바심을, 걱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다.
처음엔 그랬다.
작가는 앨리스의 입장을 헤아려 달라고,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많은 사람의 입장을 한번쯤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 중심에 들어가지 못하고 존과 애나, 톰, 리디아라는 그녀 주변에 머물고 있었다. 마음은 단단한 벽을 만들어버렸고, 나는 그것을 깰 수 없었다. 두려움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어쩌면, 알츠하이머는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것이 되버렸기 때문이다. 우선은 그 생각만 들었다.
“ 애나, 네가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면 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야. 네 아이들도 그걸 물려받을 확률이 50퍼센트씩 있는 거야. ” (p140)
알츠하이머는 DNA를 통해 후세로, 후세로 전달 될 수 있는 유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앨리스, 난 못 할 것 같소. 미안하지만, 1년 동안 집에 앉아서 병으로 무너져가는 당신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소...... 연구실에 있으면 당신이 집에 있는 모든 문짝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다니는 걸 안 봐도 되지. ” (p303)
앨리스의 남편, 존의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갔다. 지금껏 내가 봐왔던 것이 치매를 앓고 있는 당사자가 아닌 주변에서 고통받는 사람의 모습이었기에 아직은 이런 생각만 한다.
알츠하이머.
처음에 이 단어를 들었을 때, 그 있어 보이는(? 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발음에 병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우리말로 해석하여 ‘치매’ 란 말을 들었을 때, 그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했다.
‘ 치매는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던 사람이 뇌기능 장애로 인해 후천적으로 지적 능력이 상실되는 경우를 말한다 ’ 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런 의미 말고 내가 생각하는 치매 환자의 생활은 ‘저주’와 동일시되는 것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앨리스는 50대의 하버드대 심리언어학 교수이다. 교수로서의 책임 뿐 아니라 세 아이의 엄마로, 존의 부인으로 똑부러지는 삶을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어느날 그녀에게 잠깐의 기억 장애가 찾아온다. 메모의 내용을 알 수 없거나, 달리기를 하다 자신의 집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저 처음엔 그 나이대에 찾아올 수 있는 갱년기 증세나 우울증이라고만 생각했다가 증세가 계속되고 점점 심해지는 것을 보고 다른 병원을 찾아가 조발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된다. 소설은 앨리스의 기억 장애가 찾아온, 아니 그녀가 생활 속에서 그것을 느끼는 시점인 2003년 9월부터 2년 후, 자신의 자녀를 ‘아기 엄마’, ‘여배우’라고 부르는,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시간까지 보여준다. 그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 대한 대리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는 의미면서 좀 더 객관적으로 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나는 이 책에서 예전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악몽같은 시간과는 다른 뭔가...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우아한’ 시간을 본다. 그녀의 병을, 기억을 잃어가는 것을 슬픔이라고, 함께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하며 그 감정을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은 미안하다. 그녀의 아픔이, ‘치매에 대처하는’ 국가적인 차이인지, 아니면 의료 수준의 차이인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격차’로 인해 나는 그렇게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물론 처음엔 그저 두려움, 걱정 뿐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책의 내용을 다시 음미하면서 처음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생각만 들지는 않게 된 것이다.
앨리스의 곁에는 그녀를 이해하고자 하는, 그녀의 병과 함께 싸우려 애쓰는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병에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과 사회 복지사와 같은 ‘사회’라는 울타리도 있었다. 알츠하이머, 치매라는 병을 그저 가족의 문제로만 한정짓기엔, 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 뿐 아니라 무너져 가는 환자를 바라봐야 하는 가족의 아픔과 상실감이 너무 크다는 걸 같이 공감해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 너희들이 내 나이쯤 되면 아마 예방 치료법이 나올 거야. ” (p141)
“ 우리와 손을 잡아 주십시오. 우리가 기억력, 언어, 인지 능력의 손상을 딛고 나름의 기능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환자 모임과 보호자 모임에의 참여를 독려하십시오. 치매 환자나 보호자 모두 서로를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도 저곳도 아닌 닥터 수스의 이상한 나라에서 삶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습니다.
저의 지난날들은 사라지고 있고 다가올 날들도 불확실합니다. 그럼 전 무엇을 위해 살까요? 오늘을 위해 삽니다. 저는 현재를 살아갑니다. “ (p326)
그녀의 연설에서 나는 그녀의 희망 뿐 아니라, 나의 희망, 기대를 보았다. 기억을 잊는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는다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그 슬픔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이 책은 그런 노력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제시해 준다. 처음의 나처럼 그저 두려움이나 걱정을 갖는 것만으로는 병을 이길 수 없으며 제대로된 대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저주는 풀리라고 있는 것이다’
왠지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함께 노력한다면 저주는 풀릴거라고. 원래부터 저주란 그런거라고.
우습겠지만 나는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가, 앨리스가, 그녀의 가족이 그렇게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한걸음이란 그런 것임을 나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