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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4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
버나드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때는 청동기 시대 즈음.
라사린 부족의 헨갈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곡식을 모아 비축해 두었다 추운 겨울 부족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정의를 실현하고, 그는 족장으로서 라사린 부족민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호전적인 렌가, 한쪽 발이 불편하여 부족 밖으로 쫓겨난 카마반, 아버지를 쏙 빼닮은 사반이었다. 이들이 사는 곳에 죽음이 턱에 걸린 이방인이 침입한다. 그는 반짝 반짝 빛나는 ‘금’을 가지고 있었고, 사반과 숲에 있던 렌가는 금을 취하고 그를 죽인다. 동생인 사반마저 죽여 비밀을 영원히 숨기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숙부에게 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켜 빼앗기기까지 한다. 그 일로 마음이 상한 렌가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끌고 이방인의 나라로 도망쳐 버리고, 이제 이야기는 라사린과 이방인의 나라 사르메닌, 그리고 카살로 부족을 둘러싼 3대에 걸친 긴 호흡을 시작한다.
성인식을 치른 사반이 라사린 부족의 족장 후계자가 되려 하고, 카살로 부족과 평화를 약속하며 신부로 데려온 데레윈과의 혼인을 앞두고 있는 날, 렌가는 이방인을 이끌고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죽이고 족장이 된다. 족장이 된 후 동생의 아내를 빼앗고, 사반을 하락이라는 상인의 노예로 만들어 추방한다. 하락을 따라 사르메닌으로 가게 된 사반은 그 곳에서 마법사가 되겠다고 사라진 카마반을 만나고 지금까지 모든 일이 카마반의 계획이었음도 알게 된다.
이상하게 뒤틀린 발을 가지고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온갖 구박과 멸시를 받다 죽임을 당할 위험에 몇 번이나 처했던 카마반이 이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야심을 가진 주요 인물로 부각된다.
“ 그럼, 형이 원하는 건 뭐지? “
“ 말했잖아. 만물이 변하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저절로 변하는 건 없어. 그러니 우리가 균형점을 찾아야 해. 태양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겨울도, 질병도, 눈물도 없는 세상. 그러려면 제대로 된 슬라올 신전을 만들어야 해. 내가 원하는 건 그거야. 슬라올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신전. ” (p243)
그가 원한 것은 어쩌면 이렇게 소박한 것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 그래서 누구나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 새로운 세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사람들을 위로하고, 신을 즐겁게 하려던 그의 소박한 시작이 어떻게 변하고, 상처받고, 배신당하고, 웅장하게 이루어지고, 기나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동안 어떻게 변질되어 결국 광기에 휩싸이게 되는지 지켜 볼 수 있다. 그가 슬라올을 위해 지었던 신전은... 스톤헨지다. 어쩌면.
영국 솔즈베리 대평원 안에 그 근방에서도 구할 수 없는 돌들이 서 있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했다. 고대 천문대라고도 하고, 무덤일지도 모른다고도 하는 등 의견은 분분했다. 다만... 그 돌들은 태양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었다. 작가의 상상은 그렇게 출발했다.
어쩌면... 부족이 있었을 것이다. 서로 전쟁을 하기도 하고 서로 돕기도 하는 부족, 그 중 한 부족에, 아버지에서부터 아들로, 다시 그의 아들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자연을 숭배하고, 노예를 부려 돌을 운반하여 신전을 만들고 그렇게 이야기는 점점 뼈대가 만들어 지고 살이 붙고 하나의 형태로 완성되어졌다. 문명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을 때, 거대한 돌을 운반하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 만들어진 커다란 배. 모든 것은 상상이지만,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배를 만들고 지렛대를 동원하여 땅에서 돌을 캐낼 때 날리는 흙, 땀... 모든 것이 느껴질만큼 소설은 그 당시를 잘 묘사한다.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들은 자연을 달랜다는 이유로 인신 공양을 하고, 자연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을 짓는다. 그렇다고 인간들이 자연에 지배를 받기만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렌가는 자신의 욕망 실현을 위해 아버지를 죽였고, 전쟁을 통해 다른 부족을 침범했으며, 카마반은 태양을 위한 신전을 짓는다고 했지만, 어쩌면 자연을 자신의 손 안에 두고픈 마음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사반은 인간과 자연을 동등하게 놓고 평화를 갈구했는지도 모르고.
인공적인 것이 하나 없는, 천연의, 날 것 상태, 아주 원시적인 이야기는 읽는내내 가슴이 뛰게 했다. 광대하고, 더 넓은 배경을 지닌 이야기, 개성이 넘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은 힘이 있고, 살아 있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아마... 미래의 어느날, 스톤헨지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있다면, 나는 이 책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려했던 카마반을, 살아 숨쉬는 생생한 부족들을, 긴 세월을 두고 그들이 이루려 했던 꿈을 생각하며 돌을 바라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스톤헨지는 그냥 너른 평원의 고요하기만한 돌들이 아니라, 펄떡펄떡 뛰는 생명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