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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의 반어법 ㅣ 지식여행자 4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책은 에세이류를 주로 알고 있었는데, 누군가 그녀가 쓴 추리소설이라며 이 책을 건넸을 때, 그녀가 추리소설을? 와 같은 의아함과 과연 어떤 사건이 펼쳐질까 하는 호기심, 에세이가 아닌 정통 ‘소설’을 그녀가 쓸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등 여러 감정이 머릿속을 교차해 지나갔다.
독특한 발상과 거침없는 언행의 그녀였는지라, 통통 튀는, 새로운 형식의 추리 소설을 기대하고 책을 펼쳤다가 러시아 정통 문학같은 진중함과 운명적인 삶의 묵직함이 담겨 있어 많이 놀라웠다.
1960년, 일본인 히로세 시마는 체코 프라하의 소비에트 대사관 부속 8년제 보통 학교에 편입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히 만들어낸 무용 선생님 올가와 프랑스어 선생님 엘레오노라와 만난다. 특이한 말투와 열정적인 무용을 가르치시는 올가 선생님께 받은 영향으로 시마 역시 무용가가 되려하지만, 현실의 높은 벽에 좌절하게 되었고, 그 후 러시아 관련일을 하다 방문하게 된 모스크바에서 옛날 궁금하게 생각했던 일을 다시 한번 알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친구 카챠를 찾아내고 나서 올가의 과거를 찾는 일은 탄력이 붙는다. 올가의 딸인 지나이다를 찾게되고 드디어 알게 된 올가의 과거.
단순한 사람 찾기인줄 알았던 그 일에 그토록 많은 역사의 소용돌이가 숨어 있을 줄이야.
‘썩어라 불알’ ‘ 칠면조도 생각 끝에 수프 국물이 되어버렸단다’ ‘ 바로 저기 있는 놀라운 천재 소년 말이야!’ 와 같은 거침없는 욕설이나 반어법이 들어있는 문장은 그녀가 살아온 삶이 너무도 굴곡지고 고단하여 좀 더 삶의 희망을 갖고자 선택된 것이었다.
그것을 거의 30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다른 사람의 수기와 지나이다의 이야기,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된 시마와 카챠. 그리고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은 비극을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것을......(p430)
그것을 알게 된 후 시마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었다.
마리여사는 분명 일본인일진데, <올가의 반어법>을 읽고 있으면 러시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스탈린 시대와 그 이후에 벌어진 대규모 숙청과 유배에 휘몰려 알제리의 라게리 수용소에 있던 올가와 다른 사람들의 상황 뿐 아니라 그 시절 지배자 계급의 용서 못할 행위, 그 이후 러시아 뿐 아니라 주변국의 자세한 상황 묘사가 아주 자세하다.
그런 시절이 어떻게 인물들에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도 찬찬히 잘 서술되어 있었다.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나 기대감으로 시작되었던 감정이 어느새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올가의 삶에 그저 찬사를 보낸다. 잘 참아냈고, 잘 견뎌냈고, 이겨내서 참으로 다행이다, 라면서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분명 희망을 전해 주고 있다.
그 희망이 읽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아름다운 이야기, 올가의 반어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