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아줌마의 잉글리쉬 생활
김은영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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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읽었다.
그녀의 결혼+영국+교사로서, 엄마로서의 생활 모두를 말이다.
영국사람과 결혼해서 영국에 살고 있다는 것만해도 부러운 점인데, 거기다가 영국에서 수학 선생님을 하고 있다니!!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되기에 그녀가 정말로 대단해 보인다. 스스로도 밝히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노력에 의해 얻어진 사실이라는 점 역시 더욱 그녀를 돋보이게 한다.

결혼을 해서 영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서울, 촌년’으로 학교-집, 혹은 학원-집 밖에 몰랐던 그녀가, 수학 학과를 나와서 뜬금없이 통역사가 되겠다 마음먹었지만 실패했던 그녀가 외국계 회사에 당당히 합격하여 ‘통역사’로서의 인생을 살리라곤 그 누구도- 그녀 자신도 몰랐다. 회사에서 필을 만나 결혼하고, 영국으로 가 수학 교사가 되기 위해 학교를 다니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사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운명’ 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렇게 방황하고 있는 것도 먼 훗날, 미래의 어떤 일에 잘 쓰이기 위해 방황하는 것이 아닐까... 희망적인 생각을 품을 수 있게도 되었다.
왜냐면 몸소 그렇게 살아왔다 말하는 그녀가 이렇게 당당히 내 앞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흥미로운 다른 한가지는 바로 실생활에 쓰이는 영어를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독학으로 언어를 공부하려는 나에게 친구가 했던 말이 있다.
“ 책에 담겨 있지 않은 생생한 정보를 알려면 학원을 다니는게 나을거야” 라고.
문법이나 단어, 대체적인 정보들 외에 지금, 현재, 보통,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휘, 유행하는 이야기 등을 알려면 직접 학원을 다니면서, 부딪히면서 배우는게 최선이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책에 첨부된 Tip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이 ‘ 독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최신 정보가 되어주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실생활과 가까운, 너무너무 재밌는 에피소드같은 내용이 읽는데 즐거움을 주었다.

영어 공부를 하다가 쉬면서 읽어보기에 적당한 책이 아닐까 싶다. 내용도 쉽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이 어떻게 휴식이 될 수 있어! 하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그래도 왠지 이 책은 그렇게 휴식처럼 편하게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희망적인 내용 뿐 아니라, 정보도 담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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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0
김진영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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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책은 담고 있는 내용때문인지 몰라도 스스로 독기를 내뿜을 때가 있다. 나쁜 기운은 책을 펼쳐든 그 순간부터 스멀스멀 드라이 아이스처럼 퍼져 나와 읽는 이를 감싼다.

그 기운은 투명하다. 눈치를 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르고 그냥 넘어가는 사람 또한 있게 된다.

첫장을 넘기면서 좌우를 살피게 되었다.

그렇게 첫장부터 마지막까지 힘들었다.

새어나오는 독기에 따끔따끔 찔리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가끔씩 소설은 허구가 아니라 진실이라 의심될 때가 있다.

사실이 아니라 진실, 그것도 외면하고픈 진실.

혹은 세상에 대고 하는 고해성사같은 기분도 든다.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이해는 하겠지만, 그래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적어도 세상에 대고 하는 그 고해성사를 읽는 사람이 신부님은 아니란 걸 좀 알아줬으면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길게 말했지만, 결국 읽기 힘들었다는 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하지는 않다는 걸 알지만, 눈 앞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어쩔줄 모르겠는 그런 마음이었다.

솔직히 결말도 그저 세상이 정해놓은 순리에 따라 결정된 것이지 진짜 그렇게 희망적인 결말이었을까 의심도 된다.

열 네 살, 혹은 그 언저리의 아이들이 과연 이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읽는 내내 불안감에 좌불안석이었다가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라는게 고작 그런 호기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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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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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말야, 결혼도 안했으면서 요즘 부부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해.’

‘ 그래? 그럼 이 소설 보고 한번 깊이, 깊이 더 생각해봐. ’

친구가 내민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빨간 장화’와 ‘달콤한 작은 거짓말’ 이었다.

아무래도 작가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는 사족을 붙이며, 어떤 쪽인지는 읽고 판단해 보라고 했다.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가 ‘빨간 장화’를 먼저 집어들었다.

주인공은 쇼조와 히와코 부부였다. 결혼한지 꽤 됐지만 아직 아이는 없는 젊은 부부다.

읽어나갈수록 덤덤해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뭐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닭살돋는 부부아냐, 이렇게 생각되었다.

‘건성인게 빤히 보이는 저 사람의 맞장구가 어째서 나는 행복하게 느껴질까.’ (p32)

‘나는 쇼짱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더 그를 좋아하는 것 같다.’ (p67)

행복, 좋아하는, 이런 단어들의 주술에 쉽싸여 있었나 보다. 쇼짱의 뭐랄 것도 없는 단순한 말에도 그저 좋아하며 쿡쿡 웃음 지어버리는 히와코의 모습을 행복한 주부의 모습이라 나는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

‘배워도 배워도 자꾸만 잊어버린다. 이 사라에게는 내 말이 통하지 않는데. ’(p58)

“나랑 헤어져도 쇼짱은 분명 괜찮을거야.“
”쇼짱과 헤어져도 나도 분명 괜찮겠지.“ (p84-5)


히와코는 왜인지 모르게 자꾸 이런 말을 내뱉었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도 있었다. 그저 배부른자의 행복한 투정으로 치부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좀 다르게 다가온다.

위태위태해 보이던 그들의 관계가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히와코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이야기가 어느덧 쇼조의 입장으로 넘어가면서부터였다.

‘히와코가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다.’(p93)

나도 듣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정작 남편인 쇼조는 듣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이 트밋하고, 그저 짐작에 의해 전개가 된다. 그는 부인인 히와코의 이야기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야기들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 부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쇼조는 왜 그 모양인지, 히와코는 도대체 무얼 보고 살고 있는 것인지, 이젠 내 머릿속에 어째서?, 왜? 라는 질문이 꽉 차버렸다.

열린 결말이란 이럴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 작가에게 외치고 싶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 부부라는 관계는 내가 생각하기엔 참 오묘하다.

<매리는 외박중>의 매리는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의리! ’ 하고 하던데 의리는 고사하고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지조차 의심되는 쇼조와 히와코의 관계는 대체 무얼까 싶다. 나는 부부관계란 것도 인간관계의 한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은연중 연결고리라 생각하고 대부분의 부부들이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아이도 이 부부에게는 없다. 책의 제목이 되어준 <빨간 장화>를 보면서... 나는 정말 미로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왜, 당신들은 같이 살고 있는거냐구요!!! 친구도 그보다는 낫겠네요.. 어린 아이도 그렇게 말했으면 기억을 하고 있겠네요..

작가 스스로도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 결말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읽으면서... 이런건 부부가 아니야. 라 결론지었다. 역시 결론은 읽는 이의 몫인거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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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입니까 반올림 24
김해원 외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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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작가가 ‘가족’이라는 주제 아래 네 명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중간 접점이 되는 것은 바로 ‘가족이란 주제를 가진 핸드폰 광고’였다.

그 광고에 출연하는 한 가족, 엄마, 아빠, 누나, 남동생 역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표지는 함축적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다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얼굴이 없었다.

얼굴이 있었다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이들이 하는 이야기, 아니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가족입니까?

뭔가 구체적이지 못하고, 뜬금없이도 느껴지지만, ‘가족’이란 단어 한가지만 가지고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참 많은 고민을, 끊임없는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내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가족이란 참 소중하고, 따뜻한 것, 사랑이 넘치는 관계와 같이 희망적인 것만 늘어놓으려 하고, 그런 것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어버린다. 하지만 솔직히 가족이란 안지나 팀장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폭력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곳’ 이 될 수도 있다.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만 있으면 이기적인 요구나 미성숙한 행동도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사회’를 만들기도 한다. 개개인마다 모두 다른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우리 사회는 ‘가족은 따스한 것’ 이라 강요하고 있다. 그 기준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죄의식에 가득차게 된다.

네 명의 이야기는 너무 해피엔딩으로만 끝나 솔직히 싱겁다.

올바르지 못하고, 슬픈 결말은 ‘가족’이란 화두에 어울리지 않아! 라고 작가들 스스로도 묶여 있는 듯 했다. 그것은 광고가 결국은 따스하고, 사랑을 나누는 가족으로 컨셉으로 바뀌는 것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 ‘ 가족’ 이라는 의미가 변질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겠다.

어찌 되었든 이 책은 가족의 의미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 가족입니까?

당신에게 가족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고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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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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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집에 있던 책을 무작정 달라고 해서 이미 한번 읽었다.그 때는 사건이 발생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던 일본의 ‘독가스 테러’ 사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여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갔을거란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고, 독가스 테러의 희생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미건조하게 느껴질만큼 사실적인 인터뷰식 내용이었다.
그 뒤로 우리나라에서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이 났을 때 이 테러 사건을 떠올렸다. 지하철이라는 공통분모에 일상을 살고 있던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이 비슷하여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도쿄로 여행을 가서 지하철 ‘히비야선’을 탔을 때도 나는 이 사건과 책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사건의 가해자였던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 대해 매스컴의 초점이 맞춰져 정작 피해자였던 ‘평범한 사람들’은 외면당하고 있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의해 그들은 기록으로 남겨져 기억될 수 있게 되었다.
흥미진진한 소설을 기대했다가 뒤통수 맞는 기분으로 얼떨떨하게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몇 장 넘기지 않아 푹 빠지게 되었다.
얼마나 놀랐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런 감정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날과 별다를 것 없이 지나가고 있는 일상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바뀐다면, 과연 어떨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슬픈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활짝 갠 초봄의 아침, 연휴의 한가운데다.
‘오늘은 그냥 쉬고 싶다’ 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쉴수는 없고 출근준비를 서둘러 역으로 간다.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아침. 딱히 다른 날과 구분할 필요도 없는 당신의 인생 속 하루. 변장한 다섯 명의 남자가 그라인더로 뾰족하게 간 우산 끝으로 묘한 액체가 든 비닐봉지를 콕 찌르기 전까지는...... 그 비닐 봉투에서 사린이라는 액체가 기화하여 가스를 발생해내기 전까지는 평범한 일상 중 하루였을 것이다.

이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증언이 계속 이어진다. 그저 사실만을 전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인터뷰를 한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는 작가의 노력에 의해 글은 담담하지만 그 안에 폭풍을 담고 있었다. 뜨거운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마치 접시 속의 태풍처럼.
사건이 일어난지 15년이 지났다. 책을 읽으며 내 머릿 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다시는 이런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불특정 다수의 일상을 파괴하는 사람이 결코 나타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 아직도 그 기억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절판되었다가 이 책이 다시 출간된 것은 그래서 기쁘다.
누군가가 그랬다. 오직 책만이 유일하게 이 시대의 ‘진실’을 전하고 있다고,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도 책을 읽어야 한다고. 이렇게 책을 통해 한 시대의 진실이 전해진다. 몇 년, 몇 십년, 혹은 몇 백년이라도. 우리는 과거를 기억함으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과오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큰 교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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