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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평점 :
‘ 나는 말야, 결혼도 안했으면서 요즘 부부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해.’
‘ 그래? 그럼 이 소설 보고 한번 깊이, 깊이 더 생각해봐. ’
친구가 내민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빨간 장화’와 ‘달콤한 작은 거짓말’ 이었다.
아무래도 작가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는 사족을 붙이며, 어떤 쪽인지는 읽고 판단해 보라고 했다.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가 ‘빨간 장화’를 먼저 집어들었다.
주인공은 쇼조와 히와코 부부였다. 결혼한지 꽤 됐지만 아직 아이는 없는 젊은 부부다.
읽어나갈수록 덤덤해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뭐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닭살돋는 부부아냐, 이렇게 생각되었다.
‘건성인게 빤히 보이는 저 사람의 맞장구가 어째서 나는 행복하게 느껴질까.’ (p32)
‘나는 쇼짱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더 그를 좋아하는 것 같다.’ (p67)
행복, 좋아하는, 이런 단어들의 주술에 쉽싸여 있었나 보다. 쇼짱의 뭐랄 것도 없는 단순한 말에도 그저 좋아하며 쿡쿡 웃음 지어버리는 히와코의 모습을 행복한 주부의 모습이라 나는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
‘배워도 배워도 자꾸만 잊어버린다. 이 사라에게는 내 말이 통하지 않는데. ’(p58)
“나랑 헤어져도 쇼짱은 분명 괜찮을거야.“
”쇼짱과 헤어져도 나도 분명 괜찮겠지.“ (p84-5)
히와코는 왜인지 모르게 자꾸 이런 말을 내뱉었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도 있었다. 그저 배부른자의 행복한 투정으로 치부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좀 다르게 다가온다.
위태위태해 보이던 그들의 관계가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히와코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이야기가 어느덧 쇼조의 입장으로 넘어가면서부터였다.
‘히와코가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다.’(p93)
나도 듣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정작 남편인 쇼조는 듣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이 트밋하고, 그저 짐작에 의해 전개가 된다. 그는 부인인 히와코의 이야기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야기들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 부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쇼조는 왜 그 모양인지, 히와코는 도대체 무얼 보고 살고 있는 것인지, 이젠 내 머릿속에 어째서?, 왜? 라는 질문이 꽉 차버렸다.
열린 결말이란 이럴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 작가에게 외치고 싶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 부부라는 관계는 내가 생각하기엔 참 오묘하다.
<매리는 외박중>의 매리는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의리! ’ 하고 하던데 의리는 고사하고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지조차 의심되는 쇼조와 히와코의 관계는 대체 무얼까 싶다. 나는 부부관계란 것도 인간관계의 한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은연중 연결고리라 생각하고 대부분의 부부들이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아이도 이 부부에게는 없다. 책의 제목이 되어준 <빨간 장화>를 보면서... 나는 정말 미로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왜, 당신들은 같이 살고 있는거냐구요!!! 친구도 그보다는 낫겠네요.. 어린 아이도 그렇게 말했으면 기억을 하고 있겠네요..
작가 스스로도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 결말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읽으면서... 이런건 부부가 아니야. 라 결론지었다. 역시 결론은 읽는 이의 몫인거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