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뉴스에선 ‘삼성이 2010년 연매출 150조를 첫돌파’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있다.
도대체 어느 정도 규모의 돈인지 가늠도 안되는 150조원이라는 돈을 놓고, 맨처음 든 생각이 밝힌 매출만 저정도면 비자금으로 조성되기 위해 숨겨둔 돈은 또 얼마일까? 란 것과 삼성이 150조의 매출을 이뤄냈다고 해서 나에게, 아니 이 나라에 돌아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라는 것이었다. 뉴스를 보고 있는데 전혀 기쁘지 않다. 예전에 이건희 회장이 법정에 출두하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을때, 누군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세계 일류 기업 하나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건데, 지금 한창 성장하고 있는데, 저러면 안되는거 아닌가...’ 라며 안타까워 했었다. 그렇게 삼성이라면 그저 믿어주기부터 했던 국민들에게 삼성은 어떤 태도를 취해오고 있는가? 지금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소설 <허수아비춤>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기업이 바로, 삼성이었다.
소설 속의 업계 1위를 놓치지 않는 태봉 기업과 그런 태봉 그룹을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2위 일광 그룹을 보며 자연스레 현실 속의 기업을 떠올리게 된다.
어마어마한 비자금, 비리를 숨기기 위해 벌이는 로비, 불법 경영권 계승, 얽힌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비밀 유지와 ‘이후의 삶’ 보장......
소설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지만 이미 현실과 구분이 모호해져 버렸다. 각종 언론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접해온 기업들- 굳이 삼성 뿐이 아니라 -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교묘히 법을 피해가는 태봉그룹을 따라하는 일광그룹이, 그리고 거상그룹이, 지금 이나라를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대기업들과 다를 바 없다. 그 안에 속하여 로열 패밀리, 골든 패밀리를 형성하고 자기들끼리 ‘돈’을 중심으로 모여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소설을 쓰는 동안 우울했다고 하더니 그 우울이 전염이라도 되는지 책을 읽는내내 같은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백만원, 천만원도 큰 돈인데 그것의 몇 배에 달하는 억단위, 조단위의 돈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그들의 모습에 까닭모를 비애감,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껴야 했으니 말이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그 뒤의 숨겨진 말은 ‘하물며 그깟 사람쯤이야’라고 한다)
이런 생각으로 불법 비자금 1조를 모으기 위해, 그 과정에서 법망을 피하기 위해 법조계, 정*재계, 교육계, 언론계를 막론하고 로비 명목의 어마어마한 자금이 뿌려진다. 불법 비자금을 모으고 나서 그 다음 수순은 불법 경영권 승계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떳떳한 이유는 단 하나다. ‘ 그건 소문일 뿐이야. 만일 사실이라 하더라도 양쪽 당사자들이 입 싹 씻고 부인해 버리면 그만인 거야. 이 세상에 그런 사건이 어디 한둘이더냐. 누구나 그랬으리라고 뻔히 다 알면서도 뭐라는지 알지?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 (p356)
도망칠 구멍이 있기 때문이었다. ‘돈’을 통해 구축해 놓은 그물망처럼 안전한 구멍말이다.
소설이 이런 모습을 그냥 보여주기만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면 많이 아쉬웠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은 그냥 허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업을 견제할 수 있는 건 바로 우리뿐임을 강조한다.
‘ 국민은 나라의 주인인가. 아니다. 노예다. 국가 권력의 노예고, 재벌들의 노예다. 당신들은 이중 노예다. 그런데 정작 당신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이 당신들의 비극이고, 절망이다. ’(p322) 라며 소설 속 인물의 입을 통해 국민에게 호통치고 깨우치라고 가르치고 있다. 오매불망 되고 싶어하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려면 국가 안을 채우고 있는 기업인, 국민 모두가 ‘선진국의 자세’를 갖춰야 한단다. 기업인은 투명경영, 불법 비자금 조성 금지, 이익의 사회 환원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국민들은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탈세나 비리에 연루된 기업이 있으면 ‘불매운동’을 벌여서라도 제대로된 경영을 하도록 만들고, 수많은 시민단체를 통해 철저한 감시와 감독 활동을 벌여야 한다고 한다. 지금처럼 눈 앞의 이익만 보고 이기주의와 기회주의에 빠져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중들의 반응이 그렇게 되풀이되는 한 재벌들의 그런 비리는 끝없이 계속될거라는 사실 ’ (p265) 이란 결과를 얻을 뿐이란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모습을 지적하는 듯 하여 왠지 찔리는 마음이 가득했다. 내 스스로가 자발적 복종을 하며 대기업들이 약탈식 경영을 하여 사회를 무법 천지로 만들고 있는 것을 방조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소외된 이웃에게 한명, 한명씩, 맞춤식 선행을 베푸는 사회 지도층의 윤리란 이런 것이었구나’를 느끼게 해줄 마음에 쏙 와닿는 모범적인 대기업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개인, 개인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작은 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책을 덮고 나서 더 많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소설이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인가?’ 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책을 읽는 사람 모두 자신만의 답을 찾게 되길 바란다. 미래의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더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