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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등급 그녀
진소라 지음 / 예담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다. 결혼 정보 회사에서 제공한다는 설문에 응하면 도대체 나는 몇등급일지. 소, 돼지도 아닌 인간인데, 인간에게도 등급을 매길 수 있단다. 물론 회사의 입장에서, 자본주의 논리로 따져 고객이 모두 똑같아 보일리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참 많이 씁쓸하다. 돈, 직업, 외모가 분명 그 등급을 나누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아, 이 문제를 가볍게 넘길 수만 있다면 이야기는 발랄하고, 재밌다.
주인공 고우신. 세탁소집 딸. 고졸에다가 일년동안 아버지 병간호 하느라 직업도 없다. 딱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꿈도 없고, 완성(?)되면 엄마에게 짠-하고 내놓을 예정이었던 애인도 그녀를 배신하고 다른 부잣집 여자에게 간다.
전 남친의 결혼식날. 전남친 뿐 아니라 이별을 사주한 원수 윤승완, ‘적’보다도 더 먼 관계인 엄마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알게된 우신은 작전을 짠다.
과연 그녀의 복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처음에 달콤한 로맨스일거라 생각했던 이야기는 읽어나갈수록 그보다는 한사람의 성장 소설이라고 하기에 더 어울리는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꿈이 없었던 그녀가 어떤 꿈을 가지게 되고, 사랑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진 그녀의 앞에는 전진하는 것만 남았다.
전남친에게 복수하기 위해 세운 계획, 고우신과 돌아가신 아버지 고장수씨에 얽힌 이야기. 세탁과 관련된 이야기, 결혼 정보 회사 등등 소소한 소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잔잔한 재미를 던져준다. 좀 더 매끄럽게 다듬어져서 기승전결이 확실하게 하나하나의 사건이 잘 매듭지어 넘어갔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너무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해서 정신은 없지만, 가끔씩 보이는 단 한줄로 정의되는 그녀만의 깨달음에는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스물 일곱이 되어서, 전부를 잃고 1억이 든 통장 하나 겨우 손에 쥐고서야 알아버렸다. 결국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준다는 걸. (p31)
“ 깊은 상처를 입어본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없어요. 얼마나 아픈지 아니까......”
“ 뭐?”
“ 그리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줄도 알죠. ” (p196)
결혼 정보 회사에서 D등급을 받으면 그리 좋은 조건의 결혼 상대자가 아니라는 말이지만, 국제적인 기준으로 다이아몬드 색깔에서 D등급은 최상급을 의미한다고 한다.
누군가가 정해준 등급이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이더냐. 고우신의 말대로 내가 생각하기에 스스로가 최상급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싶다. 자신감이 먼저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