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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들기 전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6-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6
S. J. 왓슨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7월
평점 :
‘오늘, 침실이 왠지 낯설다......’ 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잠에서 깨어난 침실이 낯설고, 이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왜 이 곳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옆에 누워있는 남자가 누군지, 저기 옷장에 걸린 옷들은 왜 저렇게 나이든 여자의 것인지. 결정적으로 욕실의 거울로 본 내 모습이 너무 낯설다. 나는 스무살일텐데... 거울 속의 여자는 주름이 많고, 너무 늙었다. 비명이 나오려고 한다.
매일 아침 그녀는 모든 것이 낯선 상태에서 잠에서 깬다.
크리스틴. 기억 상실증에 걸린 그녀는 24시간 정도의 기억만을 간직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하루 동안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다가 잠들고 난후, 다음 날 아침이면 어제의 기억을 모두 잃고 이렇게 낯선 상태에서 잠이 깨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온다.
자신이 닥터 내시라고 밝힌 사람은 그녀를 돌봐주고 있는 의사라고 밝히고, 둘이 만난 자리에서 그녀에게 다이어리 하나를 건네준다.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한 그녀.
그에게서 받은 다이어리를 통해 기억을 하나하나 조합하고 또 다른 기억을 적어나감으로서 스스로가 누구인지 밝혀 나간다.
기억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그녀는 일기를 쓴다. 옷장 안에 일기를 넣어 두었다는 것조차 잊기 때문에 내시에게 전화를 걸어 일기가 있는 곳을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매일 매일 낯선 곳에서 눈을 뜨고, 곁에 누워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몰라 소스라치게 놀라고, 우리는 결혼한 사이라는 말을 듣고, 남편 벤이라 소개받고, 의사의 전화를 받고 일기를 보고서야 상황이 적응되는 나날이다.
아마도... 매일 매일이 지옥 같을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남편이라고 하고, 처음 보는 사람인데 만났던 기록 -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것이 남아 있고, 처음 보는 사람같은데 내 취향을 알고 있고, 일기를 통해 상황이 납득은 되지만,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남아 있고, 힘들어서 미쳐버릴지도 모를 그 상황에서 크리스틴은 일기를 등대 삼아 엉킨 미스테리를 풀어 나간다.
차분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곧 그녀의 상황 속으로, 답답하고 모든 것이 희뿌옇기만 한 그녀의 기억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도대체 왜 그녀가 왜 그런 상태에 놓였는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함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바스락거리는 마른 낙엽처럼 건조한, 그렇지만 터지기 일보 직전의 폭탄을 손에 든 것처럼 불안한 마음을 간직한 채 책을 읽어나가게 된다. 그런 상태를 요령있게 유지하다가 뭔가 상황이 이상하고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짐작될 때엔 그녀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이다. 아! 하고 깨달을 때쯤엔 상황 종료. 그만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솜씨가 대단하다. 솔직히 데뷔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이며 푹 빠져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오죽하면 영화화가 결정되어 있을까. 영상으로는 불안 불안한 분위기와 그녀의 안타까운 상황이 어떻게 묘사될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