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평점 :
그는 절대 조급하지 않다.
대화를 진행하는 주도권은 이미 그에게 있었고, 찬찬히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으로 상대를 살피고 파악해 나간다. 아니 어쩌면 상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감정사의 눈길일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이 사람을 내가 얼마에 넘길 수 있을까.
그의 직업은 헤드 헌터.
경쟁이 심한 그 쪽에서도 TOP이다.
‘우린 사람을 뽑는 일을 하는 거라고. 그들을 살인죄로 기소하려는게 아니라!’ 라고 반박하는 동료에게 ‘ 아니, 난 기소하려는거야. 그게 바로 내가 오슬로에서 최고의 헤드헌터인 이유지.’ 라고 차갑게 내뱉을 수 있는, 자신만만한 사람이다.
이런 완벽한 그에게도 아킬레스건, 약점은 있었다. 바로 아내 디아나.
아내 디아나를 너무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약점이다.
참, 그는 로게르 브론, 영어식으로는 로저 브라운으로 발음되는 이름을 가졌다.
주인공 로게르 브론과 그의 아내 디아나를 보여주는 방식은 독특하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카메라 워크를 지켜 보고 있는 것 같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돈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위태로운, 고급스러우면서도 그 속에 깊이 들어가보면 별 것 없는 느낌을, 그들의 생활을 차근차근 훑듯이 보여주는 것으로 전해준다.
이런 그의 상대가 되는 이 역시 자신감 넘치고, 이기는데 익숙하며, 끈질긴 성격을 지닌 강한 남자였다. 마약상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고도 살아돌아올 정도이다.
두 사람의 대결은 그래서 기대되게 만든다. 비록 로게르 브론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가 사랑하는 그녀를 빚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조금은 허술한 것이어도 말이다.
이렇게 팽팽한 두사람의 대결이 어느 순간 조금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일까.
브론이 끔직하게 사랑해 마지 않는 아내 디아나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때부터 일까, 브론에게 찾아온 우연같은 인생 역전의 기회가 너무 의심스러워서였을까. 최고라 치장해서 내밀었던 두 인물이 머리가 아닌 몸으로 대결을 벌여서였을까.
파티에 가기 위해 아름답게 치장하고 멋진 옷을 입었는데, 어울리지 않은 구두를 신은 아가씨를 보는 것처럼 조금 궁금한 부분이었다. 왜 그랬을까?
이런 부분을 제외하면 노르웨이의 오슬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릴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는 재미를 준다. 아내는 보른을 배신한 것일까? 그의 뒤를 사내는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갖가지 궁금증을 유발하던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결말을 내놓는다.
예전에 비해 번역되는 소설이 많아져서인지 요즘 북유럽 소설을 읽을 기회가 많아졌다.
상당히 진중하고 묘사가 섬세하며 뭐랄까, 글에 상쾌한 건조함이 있다는 것, 지금까지 읽은 북유럽 소설의 느낌은 그랬다. 주인공이 겪는 죽음의 위기는 사실적이고 감각적이어서 함께 고난을 겪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순간 하- 하는 긴 한숨이 나왔다. 드디어 끝이구나, 이제 편안함을 기대해도 될까, 하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재미를 주기 때문에 많은 소설이 우리에게 선보이는 것이고, 앞으로 다른 북유럽 소설을 만나게 된다면 선뜻 손내밀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