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이영수(듀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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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작가 “듀나”의 이름은 심심찮게 들어왔다.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작품보다도 베일에 가려져 있는 작가의 정체 때문일 것이다. 이메일로만 소통하며 실명과 나이는 물론 남자인지 여자인지, 한 명인지 아니면 작가 집단인지도 확인되지 않은 “신비”로운 작가의 정체 때문인지 자주 다니는 장르소설 동호회에서는 그의 정체를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어서 나또한 저절로 그의 이름(필명)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1994년부터 온라인 활동을 시작했다니 이미 작품 경력이 16년이 넘는 “중견 작가”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그의 작품은 몇몇 장르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에 수록된 몇 몇 단편들과 몇몇 매체에서 본 그의 대중문화 비평 글들을 몇 편 읽었을 뿐 본격적인 작품은 이번에 출간된 단편 소설집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자음과모음(이룸)/2011년 1월)>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SF 전문작가로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판타지, 공포, SF 등 전(全)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의 기발하고 독특한 상상력에 꽤나 매력적이면서도 왠지 낯설다는 느낌이 함께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책에서는 총 1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마다 분량의 편차가 있어 어떤 작품은 불과 몇 페이지의 짧은 분량이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중편 소설 분량이기도 하다. 분량에 따라 이야기의 구조도 제각각이어서 어떤 작품은 기승전결(起承轉結)이 불분명하여 단지 사건만을 소개하는 정도로 그치고, 어떤 작품은 설정부터 결말까지 마치 장편소설을 축약해놓은 듯한 완벽한 서사(敍事)구조를 담아내고 있기도 해서 각 단편마다 서로 다른 느낌을 들게 한다. 그중 인상 깊었던 작품은 표제작이기도 한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와 동일한 세계관인 “안개 바다”를 들 수 있다. 가까운 미래 어느날 서울과 평양 등 세계 주요 대도시에 미확인물체(UFO)가 착륙한다. 그런데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보듯 “지구 정복”이 아니라 이 외계인들은 일정 지역을 확보하여 자신들이 필요한 자원 - 인간도 포함된다 - 을 채취하여 점령 지역을 요새화하고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구역에 접근해도 별다른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 특이한 존재들이다. 인간들은 그들의 우주선을 이용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우주모험시대가 열리게 되는데, 새로운 행성과 차원에 도착한 인간들과 동물들은 행성의 환경에 맞춰 새로운 종(種진)으로 진화(進化) -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서는 인간들이 인간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화하고, “안개 바다”에서는 특이하게도 “개”가 인간형(人間形)으로 변화한다 - 하게 되는데 이러한 진화의 촉발은 바로 우주선이 퍼뜨린 “링커 바이러스”에 의해 이루어진다.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서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인 “북한”을 등장시키는데, 평양을 점령한 우주선이 링커 바이러스를 퍼뜨리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지만 오히려 그 폐쇄성 때문에 인근 국가로 퍼지지 않게 되고, 세계가 공조하여 북한 주민들을 배척하고 학살하게 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결국 외계 행성에서 조우하게 된 남한 출신 주인공과 북한 출신 “빨갱이” - 이데올로기적인 호칭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을 부르는 대명사로 설정하고 있다 - 인원들이 생존을 위해 대립하면서 서로 죽고 죽이게 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종(種)”으로 진화하게 된다.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의 세계관과 설정을 그대로 적용한 <안개바다>에서는 지구의 북극과 남극을 연상시키는, 얼음으로 뒤덮힌 또 다른 외계 행성에서의 진화에 대해 그리고 있는데, 두 작품은 작가가 기획하고 있는 연작소설 중 하나라니 조만간 장편으로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두 작품 외에 지구의 모든 사람이 성서에 나오는 인물 중 최고령인 969년을 살았다고 하는 “므두셀라[Methuselah]”의 이름을 딴 바이러스에 걸리면서 “불사신”이 되고 정부에서 사람들의 업적을 평가하여 수명을 조절 - 공적 살인 형식 - 하는 “음모론”을 다룬 “죽음과 세금”, 작가가 중국(中國) 괴이(怪異) 소설집인 <요재지이(聊齋志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던 <전설의 고향>을 연상시키는 “여우골”, 너무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한 나머지 주인까지 살인하게 되는 환경관리 자동 시스템을 그린 “정원사” 등이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그 외에 짧은 분량의 단편인 “동전마술”, “물음표를 머리에 인 남자” 등은 소재는 참 기발하지만 사건의 원인이 불명확 - 또는 제공된 정보가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너무 적어서 - 해서 읽다 만 듯 한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단편 하나하나가 다른 데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색다른 소재를 담고 있어 신선한 매력과 재미를 느끼게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작가의 상상력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 탓인지 조금은 낯설음까지 느끼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감히 평가해본다면 상상력의 기발함과 독특함은 나만의 전작주의(全作主義)의 작가이자 늘 그의 상상력에 경탄하게 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비교해 볼 만 하지만 흡입력과 재미는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이 단편집 하나만으로 듀나의 작품 세계를 올곧이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는 너무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검색을 해보니 그의 작품들이 작가 경력만큼 장편, 단편 다양하게 출간되어 있으니 몇 몇 작품들을 더 읽어본 후에나 충분한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 “듀나”적인 상상의 세계, 앞으로도 꽤나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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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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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처음 접한 건 전 3부작 출간이 완료된 해인 지난 2009년 여름이었다. “일요일 저녁부터 <밀레니엄>을 읽지 마시오! 뜬눈으로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이라는 자극적인 홍보 문구에 이끌려 읽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데 집근처 시립도서관 서고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보물을 발견했다는 심정으로 냉큼 빌려 2권 750쪽에 가까운 분량을 단 이틀 만에 읽었을 정도로 - 다행히 일요일 저녁이 아닌 토요일 저녁에 읽어서 홍보문구처럼 지장을 받진 않았다^^ - 그 재미에 한껏 매료되었었다. 결국 3부까지 내처 읽고 나서는 미니홈피에 2009년 한 해 내가 읽은 “가장 재미있는 책”으로 글을 올리기도 했고, 이렇게 재밌을 줄 알았다면 빌려보지 말고 살 걸 하는 후회가 절로 들게 했던 책이었다. 그런데 전 세계 5천만 명이 읽었다는 이 책이 국내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는지 금세 절판이 되어버려 아쉬웠었는데, 이번에 “뿔(웅진문학에디션)”에서 새로운 표지와 번역으로 출간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원제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2011년 1월)>을 다시 만나게 되니 마치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 같은 반가움이 먼저 앞섰다. 구판을 가지고 있지 않는 터라 새로운 출간본과 비교는 할 수 가 없었지만 빽빽해서 읽기 힘들었던 구판보다 훨씬 읽기 편해진 새로운 판형과 보다 매끄러워진 번역 - 번역자는 구판과 신판 같은 분이다 - 으로 새롭게 읽는 것 같은 재미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시사 월간지 <밀레니엄>의 기자이자 공동 운영자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자신의 섣부른 폭로 기사로 인해 3개월 감옥행에 처하게 되고, 잡지사 또한 광고가 중단되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런 그에게 스웨덴 굴지의 기업 총수인 “헨리크 방예르”가 40여년 전 실종된 증손녀 “하리에르” 사건을 조사해준다면 잡지사의 위기를 단번에 해결해주겠다는 거부할 수 없는 제의를 해온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우선 방예르를 만나보자 하는 마음으로 방예의 집을 방문한 미카엘은 방예르의 설명에 흥미를 느끼고는 의뢰를 승낙하게 된다. 한편 보안회사에서 천재적 해커 솜씨를 발휘해 대인조사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리스베르 살란데르”는 거식증 환자처럼 삐쩍 마른 몸매에 엄청 짧게 커트한 머리, 코와 눈썹에는 피어싱을, 말벌 문신과 큼직한 용문신 - 원제인 "용문신을 가진 여자", 즉 새로 바뀐 표지의 인물이 바로 살란데르를 지칭한다 - 새긴데다가 까마귀처럼 검게 머리를 물들이고 다니는 24세의 “이상한” 여성이다. 그녀는 어릴 적 당한 폭력 - 1권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등장하지 않고 2부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 으로 인해 12년 동안 사회적 보호와 정신 치료를 받았고 성년이 되었어도 법원에서 임명한 후견인이 그녀의 재산과 생활을 제한하는 처분을 받게 된다. 자신의 보호하던 전임 후견인이 갑작스레 쓰러지자 새로운 후견인을 지정받는데 새 후견인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그녀를 성적으로 학대하지만 몰래 디지털 캠코더를 설치하여 자신이 학대당하는 장면을 촬영하여 멋지게 복수한다. 그리고는 몇 개월 전 미카엘 조사를 의뢰했던 인물과 미카엘을 곤경에 빠뜨렸던 기사의 주인 간에 숨어있는 모종의 관계에 개인적인 흥미를 느끼고 주목하기 시작한다.

 이미 읽어본 나로서도 1권 말미의 “2권에서 계속됩니다”라는 글귀가 그렇게 안타까웠는데 처음 읽는 독자들은 오죽 할까? 사실 1권 도입부분은 주인공 미카엘 기자가 명예훼손 사건으로 연루된 금융사건에 대한 설명과 주 무대가 되는 방예르 가문의 개인사, 그리고 낯선 스웨덴 인명과 지명들로 인해 다소 지루한 것이 사실이며 1권이 끝날 때까지도 도대체 이 사건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주인공들은 언제쯤이나 만나게 될지 가늠할 수 가 없어 막막함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에도 어떤 독자들은 1권까지 읽다가 실망해서 포기했다는 분들도 몇몇 있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를 먼저 읽어본 경험자로서 미카엘이 방예르 증손녀 실종사건에 착수하고, 또 다른 주인공 살란데르가 자신을 학대하는 후견인에게 멋지게 복수하는 1권 후반부터는 서서히 탄력이 붙기 시작해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2권 부터는 갈수록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도대체 그 결말이 궁금해서 뒷부분을 몇 번을 펼쳐 보게 만드는 기막힌 재미와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지레 포기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40여 년 묵은 실종사건과 전혀 연관이 없을 연쇄살인사건이 비현실적이거나 비약적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연관이 되더니 결국은 해결해내는 작가의 글 솜씨가 정말 놀랍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인 역시 “미카엘”과 짝을 이뤄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리스베트 살란데르”을 단연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미카엘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한 케릭터라면 살란데르는 이제까지 어느 추리소설에서도 볼 수 없던 독특하고 개성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정신이상으로 인해 법적 후견인에서만 사회 활동이 가능한 사회 부적응자이면서 불법 도청, 해킹, 지극히 폭력적인 어두운 면과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않았음에도 날카로운 직관력과 천재적인 분석력을 가진 밝은 면이 적절히 혼재되어 있는 이중성이 참 독특하면서도 신선한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10부작으로 기획되었던 이 시리즈가 3부작으로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 이제 살란데르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먼저 들었을 정도로 참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이 시리즈에 붙어있는 화려한 수식어, 찬사 일색의 입소문 등에 거부감 - 사실 나도 유명 문학상 수상작들이나 입소문난 작품들은 우선 색안경을 끼고 보는 편이다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재미만큼은 그 어느 책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물론 도입부의 지루함, 사건 사건마다 약간씩 맥이 끊기는 점들, 어려운 스웨덴 이름 등 분명히 마이너스 요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재미있는 추리소설로 꼽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에 버금갈 정도로 재미와 반전이 기가 막힌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래서 새롭게 만나게 된 이번 <밀레니엄> 시리즈가 이번 만큼은 널리 읽혀 <밀레니엄> 세계를 보다 많은 독자들이 공유하게 되기를, 내가 미처 놓치고 있던 숨은 재미와 감동을 같이 이야기 나눠 보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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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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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셜록 홈즈”와 비견될 정도로 국가 대표급 명탐정이라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耕助)> 시리즈는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각종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나 카페, 서평 등을 통해서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책으로 직접 만나볼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이번에 출간된 <삼수탑(원제 三つ首塔/시공사/2010년 12월)>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살인을 몰고 다니는 긴다이치” - 그의 손자로 잘 알려져 있는 소년탐정 김전일에 관련된 유머에서 “숙박부에 김전일 이름이 보이면 무조건 도망쳐라. 아니면 당신은 약 67% 확률로 죽는다” 라는 대목을 보고 웃은 적이 있는데 역시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인 것 같다 - 라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무려 12명의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이번 작품은 그의 등장 장면이 적어 천재적인 추리 솜씨를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다소 부족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게 만드는 재미만큼은 발군이었던 추리소설이었다.  

  부모를 잃고 대학 교수인 백부 - 실제로는 이모부(姨母夫)- 의 양녀로 자란 오토네는 어느날 미국에 살고 있다는 증조부(曾祖父)의 남동생 “겐조”가 그녀에게 백억 엔(円)에 이르는 거액의 재산을 상속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단 조건은 “겐조”가 지목한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 오토네는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말에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과연 어떤 남자일까 궁금해 한다. 호텔에서 성대하게 열린 백부의 회갑연날, 공연 중이었던 아크로바트 댄서가 갑작스레 죽고, 인근 객실에서도 두 명의 남자 시체가 발견된다. 그런데 객실에서 죽은 사람이 바로 오토네와 정혼하기로 했던 바로 그 남자로 밝혀지면서 오토네의 유산상속은 그만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거액의 유산은 모든 친척들에게 균등하게 분배되는 상황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상속 대상자인 오토네의 친척들이 하나 둘 씩 살해당하고, 정혼자의 동생이자 환갑잔치 날 살인사건이 벌어진 객실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 의문의 남자인 “마사토 고로”와 사랑에 빠진 오토네는 경찰과 볼품없는 외모의 명탐정 “긴다이치”의 의심의 눈초리가 자신에게 모아지자 그만 도망을 치게 된다. 그리고는 마사토와 함께 겐지가 세웠다는 “삼수탑”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만 함정에 빠져 옛 우물에 갖혀 버리게 되고, 그곳에서 마사토 고로의 진정한 정체를 알게 된다. 긴다이치와 경찰들에 의해 구출된 둘은 사건의 전말과 함께 이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의 정체를 알게 되고, 이 모든 참극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삼수탑도 화재에 의해 무너져 내린다.  

거액의 유산 상속, 하나 같이 비밀스럽고 음흉하기만 한 “이상한” 상속자들, 아름다운 상속녀와 정체불명의 “나쁜” - 그녀를 강제로 범하고 온갖 음모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 남자와의 거친 로맨스,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질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계속되는 살인 등 3류 잡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통속(通俗)적이고 자극적인 소재가 가득한 이 책은 유산 상속인이자 여주인공인 “오토네”가 자신이 겪은 일들을 기록해 놓은 일종의 “일기” 또는 “회고록”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주인공 오토네가 직접 경험하거나 또는 주변에서 들은 정보로만 구성되어 있어 구체적인 살인 방법이나 기발하고 절묘한 트릭 은 다소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 긴다이치의 단골 멘트라는 “사실 전 처음부터 범인을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와 만화 김전일에서 익히 봐왔던, 결말에서 탐정이 손가락으로 범인을 지목하는 “쇼”를 볼 수 있겠지 하고 기대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아쉽게도 등장하지 않는다 -. 대신 사건에 본격적으로 휘말리게 된 그녀의 심리적 동요와 불안감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까지 긴장을 절대 늦추지 못하게 만드는 몰입감과 재미는 뛰어나며, 추리소설의 장점인 마지막 반전 또한 꽤나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이 책으로 긴다이치를 처음 만나본 나로서는 이러한 전개와 반전이 나름 재미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의 전작들을 읽어본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지 실망스럽다고까지 평하는 것을 보면 읽는 사람마다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하게 나뉠 것 같다.  

비록 평소에 가지고 있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어 결코 실망스럽지는 않은 이 작품 덕분에 그의 천재적인 추리 솜씨가 빛을 발휘한다는 다른 작품들에 대한 궁금증이 오히려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 시리즈에 대한 추천 여부는 아무래도 몇몇 작품들을 더 읽어본 후로 유보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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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 더 레코드 - 카메라 불이 꺼지면 시작되는 진짜 방송가 이야기
강승희 지음 / 북폴리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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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인터넷 유머에서 자신이 얼마나 나이 들었는지를 당시 유명했던 아이돌 그룹 멤버를 이름으로 구별해낼 수 있느냐로 판단하는 항목이 있었다. 난 어렵지 않게 구분해 냈는데 - 그당시 질문이 핑클과 SES 구분이었으니^^ 그런데 나도 인기 남성 아이돌 그룹이었던 H.O.T., 젝스 키스, 신화는 영 헷갈렸었다 - 직장 상사는 영 헷갈려서 죄 틀리고는 나이가 들었구나 하고 한탄(?)했더랬다. 그런데 내가 이제 그 나이가 되었는지 요새 대세(大勢)라는 걸(Girl) 그룹들은 팀 이름은 고사하고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해낼 수 가 없다. 리모컨을 누르면 공중파, 케이블 TV 가릴 것 없이 걸 그룹 멤버들이 무리(!)지어 나오는 터라 얼굴은 낯이 익은 친구들이 몇몇 되는데, 저 친구 이름이 뭔지, 속해있는 그룹이 어디인지 영 연결이 되지 않는다. 요즘 중년 남성들이 아이돌 그룹 콘서트에 자주 보인다던데 나도 나이 든 티를 내지 않으려면 그래야 하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각종 오락 예능 프로그램들의 단골손님들인 걸 그룹들, 화면에서는 방긋방긋 잘도 웃어대서 보는 남심(男心)들을 흔들어버리는 - 그래서 종종 아내들의 눈총을 사는 - 그녀들이 방송 저 뒤편에서는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들이 올라오는 인터넷 연예 뉴스 기사들의 홍수 속에서 그녀들의 진짜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공중파 및 케이블 TV 현역 방송 작가로 활약 중인 강승희 작가의 <오프 더 레코드(북폴리오/2010년 12월)>는 이처럼 방송 예능 프로그램 속에 감춰진 속살을 풀어내면서도 비밀스럽거나 음흉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재치있고 재미있게 풀어낸 재기발랄한 방송 비화(秘話)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은 범상치(?) 않은 이름의 올해 29살 노처녀 방송 작가 “도라희”의 좌충우돌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한때는 최고 시청률을 자랑했지만 이제는 바닥을 기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방송작가인 도라희는 싸가지를 밥 말아먹은 아이돌 걸 그룹이자 메인 MC “트리플” 때문에 여간 속이 터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분노가 폭발한 라희는 “트리플” 멤버 중 가장 안하무인이던 “마리”의 빰을 때리는 사고를 저질러 궁지에 몰리지만 트리플 소속사 사장과의 묘한 사건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지만 결국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케이블 TV 연예 가십 뉴스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마리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라희의 옥탑방에 어디 의지할 데 하나 없던 마리가 들이닥치고, 하수구에 빠진 어린 고양이를 구하다가 그만 손이 끼여 119를 부르는 해프닝을 벌인 라희를 신문 기사로 올려 난처하게 만든 신문기자이자 같은 건물 반지하방에 사는 “최장호”, 트리플 전직 경호원이자 완도 고아원에서 마리와 같이 자란 남자를 알게 되면서 일은 자꾸만 꼬여간다. 결국 굴지의 연예 기획사 성 접대와 비리 사건으로 비화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일파만파로 커져 버리게 된다.  

  책의 가장 큰 재미 요소를 꼽아보자면 현역 방송 작가라는 경력답게 생생한 방송 뒷얘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곤두박질치는 시청률 때문에 유명 아이돌 여가수들을 기용하지만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그녀들 때문에 스탭들 - 특히 방송작가-들이 고생하는 장면은 종종 연예 기사들에서 “톱스타 K, 알고 보니 안하무인”이라는 가십 기사들로 종종 보아온 내용들인데, 직접 이렇게 작가가 털어놓으니 꽤나 생동감있고 현실성이 느껴진다. 특히 무한반복해서 지겹기만 한 케이블 TV 연예 뉴스들이 만들어지는 과정 - 작가가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또는 들은 풍문을 조합하여 “믿거나 말거나” 형식으로 추려내는 각종 추문들로 방송이 이뤄지는 장면 - 은 왜 연예 뉴스들이 천편일률적인지를 잘 설명 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비록 방송국 영문 이니셜을 바꾸고 프로그램 제목을 꼬아놓지만 현실의 어느 방송국 어느 프로그램, 어느 연예인인지 짐작 가능케 하는 내용들은 혹시 실제 상황이 아닐까 하는 묘한 상상의 재미까지 느껴지게 만든다.  

   다만 책 중반 이후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핵심 사건인 연예기획사 노예 계약, 성 접대, 소속사 사장과 여가수의 추문(醜聞) 등 민감한 주제들, 거대 권력인 기획사와의 법적 및 외적- 주로 폭력이 수반되는 법 외적인 방법들 -인 갈등, 성 상납 대상이었던 정치인들의 외압 등 결코 해결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 사건들이 전 연예 매니저의 증언, 갑작스레 심경 변화를 일으킨 멤버들의 인터뷰들로 두루뭉수리 해결되고야 마는 너무 쉽게 해피엔딩으로 결말이 나는 부분은 그냥 수박 겉핥기식인 것 같아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현역 방송작가로서는 깊게 다루기에는 부담될 수 밖에 없어 언론 등을 통해서 잘 알려진 사안들에만 한정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십분 이해가 되긴 하지만 이왕 언급한 사건이라면 조금은 무거워지더라도 제대로 한번 다루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말은 아쉽지만 그래도 책은 그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가 흥미로워서 금세 읽히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최근 들어 이런 연예계를 다룬 소설 - 역시 현직 라디오 PD, 신문사 연예 담당 기자의 작품 - 을 여러 권 만났는데 모두 재미있었던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런 “연예” 관련 소재는 나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소재로 받아들여지나 보다. 어쩌면 나와 전혀 다른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경이 나에게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인터넷에 수없이 올라오는 연예인 기사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지만 그래도 유명 연예인스캔들이나 결혼 소식에는 어느새 마우스를 눌러대고, 술자리에서 “카더라” 통신을 안주삼아 떠들어 대는 어쩔 수 없는 “속물(俗物)” 근성 말이다. 그것도 나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 하나라면 솔직히 인정하고 그냥 나 자신에 솔직해져 보는 것은 어떨까? 차라리 그게 덜 음흉스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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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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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스웰 쿳시(John Maxwell Coetzee) - 어디서는 이름을 쿠체로 표기하기도 한다. -  신간 <나라의 심장부에서(원제: In the Heart of the Country/문학동네/2010년 11월)>을 받아들고서 낯선 작가 이름에 당황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유명 작가라고 한다. 원래 유명 문학상 수상작이나 작가를 챙겨 읽는 편이 아닌지라 꽤나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다. 거기에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로 유명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라니...... 남아공을 배경으로 한 책은 럭비월드컵을 소재로 한 <인빅터스> 밖에 읽어보지 못했고, 알고 있는 상식이라고는 인종차별주의와 넬슨 만델라 정도, 우리나라와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거리만큼이나 아는 것이 없는 그런 국가인 곳이다. 이 책도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그런 책이겠거니, 불편할 수 도 있는 그런 이야기겠거니 하고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였다. 다 읽고 나니 책은 내 예상과는 달리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었다. 그런데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짜증까지 일게 만드는 그런 불편하기 그지없었던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도 전체 이야기가 명징하게 정리되지 않아 꽤 당혹스러운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어지러운 시점, 독백과 이야기가 반복되는 전개에 무슨 이야기를 읽고 있는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영 감이 안 잡혀 애를 먹었다. 그래서 내가 그나마 이해하고 있는 줄거리라고는 배경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어느 시골 마을 농가라는 점, 주인공인 마그다는 백인 아버지와 흑인 하인들과 살아가는 처녀로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하녀와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 아버지와 새 어머니를 도끼로 죽이는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아버지는 전혀 그런 일이라고는 없었던 듯 살아있다는 점 - 마그다의 상상 속의 일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이해했다 -, 새로 들어온 흑인 하인 헨드릭의 아내 안나가 아버지와 깊은 관계를 맺자 분노로 아버지를 죽이고 헨드릭과 공모해 아버지의 시체를 처리하지만 마그다 역시 헨드릭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에게 의존하지만 헨드릭과 안나는 달아나버리고 마그다는 텅빈 집에 홀로 남아 늙어간다고 결론 - 끝부분에 비행선이 등장하고 마그다가 그들과 연락해 보려고 돌을 쌓는 장면이 나오는데 솔직히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 맺는 정도였다. 솔직히 이야기를 시간대 순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깨어진 거울 조각처럼 단편 단편으로만 받아들이다 보니 마그다의 의식 흐름에 따라 등장하는 은유와 상징들을 이해하고 형상화하는 데는 결국 실패하고야 말았고, 서둘러 읽고는 책장을 덮고야 말았다.

  오래된 TV가 드디어 수명이 다 되서 노이즈가 심해서 화면이 여러 겹 겹쳐 보일 정도로 초점이 잡히지 않고, 소리조차 지지직거리는 소리에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드라마를 다 보고나서도 도대체 뭘 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서구 제국주의가 식민지 땅 아프리카에 저질러온 폭력과 억압의 역사라는 주제의식과 그에 대한 쿳시 특유의 깊은 철학적 통찰력과 정교하고 예리한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출판사 소개글을 당최 이해할 수 가 없었고, 어떤 재미나 감동조차 느껴볼 수 가 없었다. 고백하건데 읽으면서 참 여러번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역자 후기를 읽어봤음에도 난 이 책을 올곧이 읽어내는 데 실패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의 서평들을 보면 이 책의 주제를 제대로 이해한 호의적인 평들도 여럿 보이고 이 책이 쿳시의 문학세계를 아우르는 문제작으로 꼽힌다고 한다니 책 자체를 탓하기 보다는 명쾌한 서사(敍事)구조를 좋아하는 내 독서 경향이 이 책과는 어울리지 않는, 또는 아직 내 독서 소양이 이 책 이해해낼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탓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다른 느낌일까? 이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쿳시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본 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 쿳시 문학의 정체를 파악하고 나서야 그의 문학의 시원이라는 이 작품이 제대로 읽혀질 것 같다. 그때가 언제쯤일지는 기약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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