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신을 흔들다 - SHAKESPERE SHAKES PERE
오순정 지음 / 매직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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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 1616)”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이자 극작가로 영국 비평가 겸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단언 -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했다는 설도 있다 - 했을 정도로 영국에서는 국보(國寶)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운 그런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4대 비극이라는 <햄릿>, <리어왕>, <오셀로>, <멕베스>, 그리고 서양 문학에서 가장 비극적인 로맨스라 일컬어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누구나 이름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너무나도 유명한 고전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역사상 최고의 작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수많은 억측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심지어 오늘날 수많은 셰익스피어 ‘전기’가 “5퍼센트의 사실과 95퍼센트의 억측”으로 이루어졌다는 평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그의 삶이 “미스터리” 바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셰익스피어 미스터리”, 즉 셰익스피어의 실존 여부와 그가 남겼다는 마지막 원고와 유언장, 그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수수께끼의 경고문 - '선량한 벗들이여 제발 부탁하노니 여기 묻힌 흙을 파내지 말지어다. 이 돌을 그대로 두는 자에게는 축복이, 내 뼈를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내려질 것이니.'- 들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이 출간되었고, 내가 읽어봤거나 제목을 들어본 책 만 해도 여러 권에 이를 정도로 이제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읽게 된 오순정의 <셰익스피어, 신을 흔들다(매직하우스/2011년 1월)>도 처음에는 그런 셰익스피어 미스터리를 다룬 팩션(faction) 소설이겠거니 하고 생각을 하고 시작하였는데, 페이지를 거듭할 수 록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에 참 당혹스러웠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내기가 참 힘들었던 그런 책이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신을 흔들다”를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영어 스펠링이 "창(Speare)을 흔드는(shake) 자"로 알려진 "Shakespeare"가 아니라 옥스퍼드 사전에는 '신(pere)을 흔드는(shake) 자', 즉 "Shakespere"로 나온다며 그 이름에서 따왔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신(神)”으로 해석하는 “Pere"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영어로는 성(姓)에 붙여 동명(同名)의 부자(父子)를 구별할 때 사용하는 말로 주로 쓰이고 (예를 들어 Jones pere 는 ”아버지 존스“를 의미한다고 한다 - 네이버 영어사전), 기독교 절대자(神)를 의미하는 “하느님, 성부(聖父)”라는 뜻은 엉뚱하게도 프랑스어 사전(père: 아버지, 조상, 하느님)에 나온다. 물론 프랑스어가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의 공식적인 외교어로 사용되었으니 셰익스피어가 살았다는 16세기 중세 영어에 영향을 끼쳤겠지만 과연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해석인지는 의문이 든다. 물론 영문학 전공자가 아닌 내가 확인해볼 길은 없지만.

본문에 들어서면 셰익스피어 문학 작품 속에 숨어있는 숨은 뜻에 대한 작가만의 독특한 해석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그저 남녀 간의 사랑이나 가족애를 다룬 순수문학이 아니라 그 당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의도적으로 비판하는 일종의 비평 의도된 작품이라고 해석한다. 그 예로 셰익스피어를 종종 악마숭배자나 비밀 결사 회원으로까지 여기게 만드는 앞에서 언급한 수수께끼의 묘비명 - 을 작가는  

예수를 따르는 순진한 친구들이여 
여기(교회)를 둘러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이 계명을 지키는 자는 축복받을 것이되 
내 말을 왜곡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라고 의역한다. 즉 기독교 본원의 가르침을 져버린 채 세속적인 욕심(우상)에만 탐닉하고 있는 당시의 교회, 특히 로마 교회를 자신의 묘비명을 통해서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해 놓고 보니 그동안 뭔가 거창한 수수께끼가 담겨 있을 거라 기대했던 묘비명이 일순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작품들인 <베니스의 상인>, <리어왕>, <햄릿>, <오셀로>, <멕베스> 들이 그저 서정성이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라 각각 그 당시의 시대적 모순들이라 할 수 있는 <돈>, <땅>, <섹스>, <명예>, <권력>의 우상에 대한 비판을 담아낸 작품이며, 각각 근대 기업과 근대 국가, 근대 인간을 상징한다고 역설한다. 여기에 근대 경험론의 선구자인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4대 우상론” - 학창시절 국민윤리나 세계사 시험에 꼭 나오던 문제로 “종족의 우상(맹목적인 습관, 감정, 신앙에서 오는 편견)”, “시장의 우상(인간의 접촉, 언어에 의하여 나타나는 편견)”, “동굴의 우상(개인적인 취미, 성격, 환경에서 오는 편견)”, “극장의 우상 (전통, 역사,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믿는 편견)”을 말한다.- 과 비교하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우상의 현실을 베이컨보다 더 적나라하게 비판한다고 본다면 셰익스피어야말로 진정한 우상의 정복자라고 치켜세운다. 이러한 해석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흥미로운 점은 셰익스피어의 미스터리 중에 ‘프랜시스 베이컨 가설’, 즉 프랜시스 베이컨이 ‘진짜’ 셰익스피어였다는 꽤나 유명한 가설이 실제로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책에서 작가는 셰익스피어 작품 전반에 흐르는 우상비판이 동시대의 철학자 베이컨의 4대 우상론보다 더 적나라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베이컨과 비교를 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셰익스피어와 베이컨의 이름을 함께 만나게 되니 묘한 기분이 든다. 물론 작가가 미스터리를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쓰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아쉽게도 내가 이 책에 대해 소개할 수 있는 부분이 딱 여기까지다. 책 안에는 작품들의 각종 인용구와 작가의 해석이 잔뜩 담겨져 있는데, 사실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 중 <리어왕>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과연 그러한 해석이 맞는지, 너무 비약하는 것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해볼 능력이 없는지라 그저 글자 위주로 읽었을 뿐 작가의 해석을 올곧이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관심이 많아 원작 뿐만 아니라 각종 비평서들을 섭렵했다는 아내에게 읽어보라고 했더니 아내 또한 “셰익스피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신선한데 사실 억지스러운 주장이 많은 것 같다”라고 평하는 것을 보면 대중적인 지지를 받기는 어려운 소수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더 큰 것 같다. 그러나 비문학 전공자 - 작가의 직업이 문학과는 전혀 관계없을 “회계사”이다 - 로서 3년여의 각고의 노력 끝에 새로운 시각으로 셰익스피어를 해석해낸 점 - 동의 여부를 떠나서 - 만큼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그런 작가의 노력의 산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줍잖은 서평을 써서 올리는 내가 더 죄스러운 마음마저 느껴진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제대로 읽어보고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과연 다시 읽게 될 지 기약할 수 없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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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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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습관이 저녁 10시 너머 잠들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형식으로 바뀌면서 10시 타임의 드라마들을 챙겨 보기가 참 어려워졌다. 그런데 최근 본방 사수는 하지 못하지만 주말 재방송만큼은 꼭 챙겨 보는 드라마가 바로 박신양 주연의 드라마 <싸인(Sign)>이다. 최첨단 과학 수사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인기 “미드(미국 드라마)” <CSI>은 몇 편을 보고는 똑같은 패턴의 반복으로 느껴져 잘 챙겨 보지 않는데, <싸인>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다뤄지는 법의학 소재인데다 정치적 음모가 가미되어 매 편 이야기 전개가 흥미로워 꼬박 꼬박 챙겨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법의학 드라마와 영화의 모태가 된다는 책을 읽게 되었다.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잘 알려진 “퍼트리샤 콘웰”의 <법의관(원제 Postmortem/랜덤하우스 코리아/2010년 3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스카페타”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인 이 책은 발간 후 1년 안에 세계 유명 추리문학상을 휩쓴 대중소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데뷔작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책으로 그동안 명성만 익히 들어왔지만 아직 책으로는 접해보지 못했던 퍼트리샤 콘웰의 명성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버지니아 주 법의국 국장인 “케이 스카페타”에게 새벽녘에 여성 연쇄살인사건의 네 번째 피해자가 발생했으니 현장으로 급히 오라는 마리노 반장의 전화가 걸려온다. 급히 현장에 나가보니 30세의 로리 피터슨이라는 여인이 자신의 침대에서 발목과 팔목을 벨트와 전기선으로 묶인 채 심하게 얻어맞아 얼굴이 부어있는 시체로 발견된다. 그전 세 건의 성폭행 연쇄살인과 동일한 방식임을 느낀 스카페타는 사체를 부검하지만 피터슨의 몸에서 발견된 범인의 정액이 혈청학적으로 전체인구 20%미만의 비분비형이며, 레이저 반응에 반짝이는 형광물질이 묻어져 있고, 침실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달콤한 체취가 났다는 진술만을 얻어내는 데 그친다. 마리노 반장은 피터슨의 배우자인 “맷 피터슨”을 범인으로 의심하고 그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고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하지만 뚜렷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법의국 컴퓨터에 해커가 침입하여 피터슨의 정보를 조회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에 대한 정보가 법의국에서 누설되었다고 의심을 받으면서 스카페타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러던 중 폭로성 기사를 써대는 유력 일간지 여기자의 동생이 살해되는 다섯 번째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스카페타는 살해당한 다섯 명의 여인들에 대한 연관성을 조사하던 중 다섯 명 모두 “911”에 전화를 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사건은 더욱 점입가경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의 첫 출간이 1990년, 즉 20 여 년 전 작품이라 그런지 지금은 쓰지 않는 전화 모뎀이 나 플로피 디스크가 등장하고 부검(剖檢)를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내는 장면도 지금 상영 중인 “CSI" 나 ”싸인“에 비하면 다소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이 법의관을 소재로 한 최초의 작품으로 법의관 소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의 전형(典型)을 만들어낸 점, 주인공인 스카페타와 마리노 반장 프로파일러 벤튼 웨슬리 등 주요 등장 인물들과 스카페타 주변 인물들에 대한 탁월한 인물 묘사와 관계 설정, 연쇄 살인사건 발생부터 수사 과정, 최종 해결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사건 전개와 구성 등은 이 책의 명성이 결코 허명(虛名)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몇몇 설정과 전개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점도 보이는데, 이 책에서 추리소설 특유의 장치로서 범인으로 의심될 만한 인물들을 계속 제시하여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설정 - 이 책이 출간된 1990년에는 신선한 면으로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저런 작가의 트릭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너무 많이 출간되어 있어 상투적인 설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결국 드러난 범인의 정체가 작가가 그동안 제공해온 힌트의 범주에서가 아닌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인물로 밝혀지는 설정은 일종의 독자에 대한 기만으로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 , 주인공인 스카페타 시점으로만 전개되어 사건 전체에 대한 정보를 한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 - 물론 스카페타의 심리 변화에 대한 독자의 감정이입을 더욱 깊게 하는 장점일 수 도 있겠지만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의혹들에 대한 해소가 결말에 이르러서야 모두 들어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다소 불만이다 -, 책 후반부까지 딱히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전개되다가 스카페타의 활약에 의해 사건이 급반전하고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의 최대 위기와 해결이라는 도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점, 스카페타가 여성으로서 남성들의 편견과 견제에 부딪혀 고초를 겪는 상황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점들은 그동안 여러 소설들에서 볼 수 있는 뻔한 설정이라서 다소 지루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결말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호흡을 놓치지 않고 계속 긴장하게 만드는 작가의 글솜씨만큼은 이 작품이 첫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몇몇 점에서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법의관”을 소재로 하는 이색 추리소설 - 물론 지금은 너무 흔한 소재가 되어 버렸지만 - 로서 충분한 재미를 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하겠다.시리즈가 거듭되면서 더욱 기묘하고 긴장감 넘치는 사건들로 더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하니 스카페타 시리즈를 계속 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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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크로스로드 SF컬렉션 4
이영수(듀나) 외 지음 / 사이언티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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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0년대 PC통신과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도서대여점이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무협, 판타지, 추리, 액션, 공포 등 다양한 장르 소설들이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대여점용 소설들이라 수준이 하향 평준화된 작품들이 많지만 그래도 몇몇 작가들은 문학적 성취가 상당해서 상업적 성공과 많은 팬들을 거느리는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찾아보기 힘든 장르가 바로 SF소설인 것 같다. 물론 눈에 띄는 작품들도 여럿 있어 왔고 어떤 작품들은 매니아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기도 했지만 앞에서 언급한 다른 장르들처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 - 내가 읽어 본 한국 SF 소설로는 기성작가인 김탁환의 <눈먼시계공>, 김상현의 <하이어드>, 그리고 듀나의 몇몇 작품들 정도만 떠오르는다 - 이다. 그래도 몇몇 전문 웹진이나 동아리 중심으로 SF 작가들의 활동은 꾸준히 이어져 오면서 여러 작가들의 단편들을 모은 모음집들은 몇 권 읽어봤는데 이번에 읽은 SF 전문 웹진 <크로스로드>의 컬렉션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사이언티카/2010년 12월)>도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번 작품이 벌써 네 번째 모음집이라고 하는데, 목록을 보니 첫 번째 작품집이었던 <얼터너티브 드림(2007)>은 읽은 기억이 난다. 책에 실린 10인의 작가중 “듀나” 외에는 생소한 작가들인데, 오히려 그런 생소함이 더 신선한 느낌을 맛볼 수 있었던 멋진 SF 단편들이었다. 

책에는 웹진《크로스로드》(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발행)에 실렸던 10편의 SF 단편들을 모은 것으로, 최근 읽은 <브로콜린 평원의 전투>의 저자이자 척박한 국내 SF계에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펼쳐온 인기 작가인 듀나와 각종 웹진, 단편집 등을 통해 명성을 알려온 김창규, 박성환, 정보라, 설인효, 김현중 - 사실 나에게는 생소하기만 하다 - 등 기성과 신진 SF 작가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따라서 한편 한편이 서로 다른 색깔의 재미를 선보이고 있다. SF소설이라고는 “아이작 아시모프”나 “로저 젤라즈니”, “아서 C.클라크” 작품 몇 편 정도 - 외국 작가의 작품들은 사실 좀 어렵다 - 만 읽어봤었고 가장 재밌게 읽은 작품이라고는 SF 팬들에게는 아류(亞流)로 취급받고 있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인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 정도이니 SF 팬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내 수준으로서는 우리 글과 정서를 담고 있는 이번 작품이 오히려 내 취향에 제격인 그런 작품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웹진 <크로스로드>의 편집위원인 박상준 교수가 쓴 서문인 “우리 안의 미래를 통해 보는 현재의 파노라마”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우리 주변의 공간 속에서, 시간여행이나 외계인과의 조우, 지구 종말, 인공지능 등 SF를 구성하는 다양한 하위 장르들의 서사를 읽는 것은, 막연한 우주 공간이나 대체우주를 상정한 전통적인 서양 SF를 읽을 때와는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되는,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라는 말에 절로 십분 공감하게 된다.  

10편의 작품 하나하나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고른 재미를 주고 있지만 그중 인상깊은 작품들을 꼽아본다면 먼저 표제작이기도 한 조나단의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를 꼽고 싶다. 21세기 어느 날 출근길에 반복해서 북쪽 하늘에서 나타나 남쪽하늘로 사라지는 비행물체를 본 한 남자가 UFO 임을 직감하고 비싼 디지털 카메라까지 구입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사진을 찍는데 성공하고 영국에 있는 한 타블로이드 신문사에까지 보내지만 정밀 사진 감정 결과 비행체에 “ㄸ”과 “ㅇ"이라는 한국어의 자음이 보인다는, 즉 비행체가 한국 내 모기업이나 환경단체에서 대기상태 측정을 위해 띄운 인공 비행체라는 회신을 받고 실망하게 된다. 22세기 마지막 해, 뉴욕에 살고 있던 수미는 이집트에서 열리는 82차 세계 기호학 심포지엄에 참석하려고 하지만 그만 비행기를 놓쳐 발을 동동 구르던 차에 웜홀을 통한 장거리 여행 기술을 개발했다는 한 남자가 여행을 제의해온다. 의심은 들지만 급한 마음에 이용하기로 맘 먹은 수미는 웜홀 여행용 비행체인 에이로플레인에 탑승하고 불과 몇 초 만에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 동쪽 외곽에 위치한 골동품 시장에서 오래된 신문에서 ”특종! 서울 상공을 가로지른 UFO"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게 되는데, 그 사진 속 UFO가 바로 자신이 타고 온 “에이로플레인”임을 알게 된다. 즉 21세기 한 남자의 사진 속에 담긴 UFO가 바로 22세기 신 이동 수단인 에이로플레인이 웜홀을 통과하면서 서로 다른 시공간을 거쳐 가는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즉 UFO는 바로 미래의 이동 수단이었던 셈이다. 이 외에도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해 대속(代贖)의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젊은 청년의 이야기인 김린의 <우주와 그녀와 나>, 파충류 외계인의 침략으로 멸망 위기에 빠진 인류가 타임머신을 만들어 과거로 특공대를 파견하지만 시간 여행으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결성된 관리국 공무원들에게 제제를 당하는 허무한 상황을 그린 백상준의 <시공간-항(港)>, 전혀 동기가 없는 연쇄 살인 사건에서 묘한 연결 고리를 발견한 아마추어 추리소설 작가가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설인효의 <전화 살인>, 시간관광이 일반화된 어느 미래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와 함께 기원전 480년경 석가모니의 입적 순간으로의 여행을 그린 박성환의 <관광지에서> 등이 인상깊었다. 

한편 한편 고른 성취와 재미를 한껏 담고 있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전혀 지루함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책 만으로 한국 SF 소설의 성취를 논하기에는 너무 섣부른 판단일 수 도 있겠지만 벌써 이런 컬렉션 시리즈가 네 편에 이르렀고, 이 책의 작가들이 저마다의 상상력과 감성으로 인터넷에서, 출판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니 조만간에 우리 SF 소설들도 더 풍성해질 것으로 보여 그 가능성만큼은 충분히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문에서  

일반적인 SF의 상상력에 더하여 한국적 작품세계가 주는 친숙함이 가미되어 읽는 즐거움이 한층 강화되었으니, 그 외의 사정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P.9 

라는 말처럼 좀 더 친숙한 우리 세계관이 가미된 멋진 우리 SF 소설들이 지금보다 더욱 많아지기를, 그래서 SF 소설 본연의 재미를 만끽해볼 수 있기를 장르소설의 팬으로서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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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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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트런드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지성이라는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배운 서양 철학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철학자 들 중에 하나라는, 그리고 1923년에 저술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통해 종교의 극단주의와 해악을 철저히 비판한 덕분에 니체 이후 가장 확고한 무신론자로 명성을 날렸으며, 기독교 반대론자들이 그의 저술이나 어록을 즐겨 인용한다는 정도였다. 어쩌면 생소하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삶과 철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로지 코믹스;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원제 Logicomix /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외 / 랜덤하우스 코리아/2011년 2월)> 덕분이었다. 러셀의 삶과 사상을 만화 형식으로 풀어 쓴 이 책 덕분에 그저 철학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그가 사실은 수학자이자 논리학자로 더 유명한 사람이었으며, 그가 저술했다는 <수학원리>가 수리 철학 및 기호 논리학 뿐만 아니라 컴퓨터의 탄생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사실 또한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책 안에 담겨 있는 수학과 논리학, 철학적 텍스트 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내용들이었지만 말이다.

책의 첫 장면은 저자인 아포스 톨로스와 크리스토스가 이 책의 집필 동기를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나치의 폴란드 침공 3일 후인 1939년 9월 4일 버트런드 러셀이 미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인간사에서 논리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러셀의 강연장 앞에는 미국이 유렵에서의 전쟁에 참전할 가능성을 경고하는 “고립주의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고, 그들은 강연장에 들어서는 러셀에게 강연을 관두고 시위에 동참하라고 강요한다. 러셀은 그들을 강연장으로 이끌고 들어가 자신이 걸어온 삶과 철학적 여정에 대해 설명하며 이 책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 완고한 할머니 밑에서 자란 러셀은 수학 가정교사에게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우게 되면서 그가 평생을 함께 하게 되는 마법과도 같은 “수학”의 길에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


유클리드와의 첫 만남에 견줄 만한 일은 내 평생에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신앙에서 헛되이 찾으려던 것을 유클리드의 작품에서 발견했지요! 기하학은 실재에 접근하는 유일한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이성을 말입니다. 나는 논리학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완전히 확실하게 아는 즐거움을 경험했어요. 그리하여 내게 증명은 진리에 이르는 왕도가 되었습니다.-P.61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도서관의 책들과 연극, 여행을 통해 자신의 유년시절을 옭죄어 온 정신적인 어두운 유산들을 말끔히 털어내는 계기를 얻게 되지만, 온통 싸구려 계산 기술에 불과하게 느껴지는 수학 강의 때문에 몹시 실망하게 된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대학의 팰로우로 임명되면서 새로운 길을 추구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바로 “철학”이었다. 과학의 여왕이라는 수학의 기반이 사실은 거북이 위에 있는 코끼리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는인도 신화의 우주론과 결코 다를 바 없다는, 즉 그 기반이 무척 위태롭다는 것을 자각한 러셀가 그의 스승인 “엘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교수와 만나게 되면서 수학, 논리학, 철학으로의 “마법여행”이 시작된다. 그는 그당시 유명했던 수학자, 논리학자들인 “프레게(Gottlob Frege, 1848~1925)”,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을 차례로 만난 그는 1900년 파리 세계 박람회이자 세계 최대의 수학자 모임인 국제 수학자 대회 - 작년에 읽었던 소설 <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이 바로 이 모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에서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1943)의 “수학은 의심할 수 없는 체계로 만들기 위해 산술을 철두철미하게 확실한 기반 위에 올려야 한다”는 강의를 듣고서 자신이 추구해야 할 원대하고 소중한 목표를 발견한다.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화이트헤드 교수와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고 그가 발표한 “러셀의 역설” 덕분에 하루아침에 국제 수학계의 유명인 된다. 수학자, 논리학자, 철학자로서 반전운동가로서 그의 여정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20세기 대표적인 지성들인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ph Johann Wittgenstein, 1889~1951),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1903~1957), 괴델(Kurt Gödel, 1906~ 1978),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1954) 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의 철학을 완성해 나간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참 어렵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라고 작가들이 집필동기를 밝히고 있음에도, 딱딱한 텍스트가 아닌 총천연색의 만화 - 사실 글로만 구성된 책이었다면 더 지루하고 난해했을 것이다 - 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내용들이다. 중반까지는 생소한 용어들과 인물들 때문에 수차례 인터넷 검색하면서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러셀의 철학적 여정이 본격화되는 중반 이후, 특히 “1+1=2”라는, 꼬마들도 다 아는 것을 증명하는 데 362 쪽이 걸렸다는 대목에서 “정말 확실하게 증명하려면 그렇게 많이 필요하단다”라는 러셀의 답변을 이해할 수 없는 나로서는 더 이상 이해를 포기하고 이야기 중심으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올곧이 책 내용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지만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러셀이라는 인물의 삶과 지적 여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20세기 대표적 철학자들의 치열한 지적 탐구욕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은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셀이 그렇게 온 평생을 바쳐서 수학과 논리학에 정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책 말미 그의 강연에서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진리에 이르는 왕도는 없다!" 이 교훈을 곱씹으십시오. 확실성의 모범인 논리학과 수학에서도 완벽한 이성적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다면, 하물며 복잡하고 어지러운 인간사에서는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막론하고 인간사에서 완벽한 이성적 확실성에 도달하기는 정녕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그의 삶은 논리학과 수학에서 완벽한 이성적 확실성을 구축하기 위한 여정이었으며 그가 말년에 앞장섰다는 반전운동도, 기독교의 비이성적 행태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도 그런 이성적 확실성을 인간사에까지 확대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물론 그가 실패한 책이라고 규정하는 그의 명저 <수학 원리>처럼 첫 결혼의 실패, 계속되는 결혼과 이혼의 반복이라는 삶 자체는 완벽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철학과 수학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지만 20세기 지성사에 대한 입문서로서는 큰 가치가 있는 책이라 평가하고 싶다. 진리를 향한 러셀과 수많은 철학자들의 끊임없는 열정만큼은 세상과 타협하면서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이 갈수록 줄어드는 나에게 아직 열정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자극이 되어주었다. 기회가 된다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20세기 철학 사조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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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대한민국 기업흥망사 - 실패의 역사에서 배우는 100년 기업의 조건
공병호 지음 / 해냄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대우그룹, 쌍방울 그룹, 진로그룹, 쌍용그룹, 해태그룹, 신동아 그룹.....

한때는 대한민국 국가 경제를 선도하던 재벌 그룹이었지만 1997년 국가 환란(患亂)이라고까지 부르는 “IMF사태” 이후 이제는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룹들이다. 그곳에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자신의 청춘을 바쳐 일하던 직장인들은 다른 회사에 흡수 합병되는 설움을 삼켜야 했고 어떤 이들은 “명예퇴직”에 “강제 해고”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거리를 방황하게 되었다. 그 무렵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났고 그 후 가까스로 정상화되었던 3년여 동안 급여가 반 가까이 삭감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참 어려웠던 기억이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록새록하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 일컬어질 정도로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던 굴지의 대기업들은 도대체 왜 망하고 만 것일까? 공병호 교수의 <대한민국 기업 흥망사; 실패의 역사에서 배우는 100년 기업의 조건(해냄/2011년 1월)>은 그 실패 이유를 우리에게 조목조목 들려준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패자의 자리에 설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후회와 회한 그리고 실수를 분석하고 다룬 글들은 흔하지 않는데 실용적인 관점에서는 ‘실패학’이 더 의미가 있는데 그이유가 그곳에는 인간이나 조직 그리고 국가가 언제든지 저지를 수 있는 실책이나 실수들이 적나라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20개 재벌들의 흥망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실패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의 가치가 있다면 바로 한때 영원히 성장할 것처럼 보였던 기업들이 어떤 실수를 범하게 되는지를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며 독자들이 그들의 입장에 선다면 어떻게 하였을까를 고민하면서 읽어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따라서 패자의 기록을 통해서 바라본 미래의 교훈이 바로 이 책의 집필 의도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읽은 자기계발서에서 “잘나가고 싶다면 쫓겨나는 시나리오를 써라”, 즉 실패 시나리오를 작성해보라는 대목에 꽤나 인상깊었었는데, 그 이유가 “실패”라는 기회비용을 수반하는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대안으로써 유비무환의 마음으로 실패 리스트를 구체적이고 철저하게 작성해볼 것을 권하고 있는 것과 어쩌면 같은 맥락으로 보여진다. 즉 실패한 기업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실패를 미리 대비해두면 그만큼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그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뜻인 셈이다.  

책에서는 먼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기업들의 흥망사를 주요 통계를 들어 짚어보며 작가는 기업을 몰락으로 이끄는 결정적 요인을 “전략의 실책(社)”, “사람의 과오(人)”, “운명의 함정(運)” 세 가지를 들며 이 3가지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결국 기업을 몰락으로 빠뜨리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2부에서는 이러한 주요 몰락 요인들의 실제 사례라 할 한국 재벌기업의 몰락과정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작가는 1장에서 언급한 세 가지 실패 요인을 2부에서는 좀 더 세분화하여 재벌기업 몰락 사례를 6가지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즉 “무리한 사업다각화(진로/쌍방울/우성건설)”, “조직관리의 패착(대우/뉴코아/새한)”, “사업구조 쇄신의 실패(대농/한일/갑을)”, “시장을 읽어내는 통찰력 부재(쌍용/삼미/나산)”, “오너의 자질과 경영 능력 부족(해태/한보/고합)”, “급격한 환경변화 속 준비되지 않은 불운(극동건설/거평/신호)”, “정치권력과의 불협화음(동아/신동아)”로 나누어 소개한다. 제목과 기업 이름만 들어봐도 IMF이후 지난 10여년 동안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유명 그룹들은 총망라한 것을 알 수 있다. 하나하나 기업들의 실패 사례들을 읽어보니 꼭 바둑의 복기(復棋)를 보는 것 같아 흥미로운 데 그중 결코 재미나 흥미로만 읽을 수 없는, 가슴 절절히 느껴지는 사례가 바로 서두에서 잠시 언급했던 나의 첫 직장이자 회사 부도의 여파를 온몸으로 겪었던 바로 “진로그룹” 사례였다. 그룹 공채로 입사한 나는 그룹의 계열사인 전선 제조 회사 - 책에서는 “진로인터스트리즈”로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정확한 명칭은 “진로인더스트리즈”다. 96년 전선제조회사인 연합전선과 무역회사인 JRI가 합병하면서 명칭을 바꿨다 - 에 배치 받아 첫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당시 진로그룹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소주(燒酒)”를 제조, 판매하는 (주)진로를 모기업으로 하여 맥주, 위스키 등 주류 회사들과 건설, 식품, 유통, 제조, 방송, 백화점 등을 거느린 재계 순위 19위를 자랑했던 그룹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진로그룹 위기설이 돈 것은 IMF 전인 2007년 3월부터였다. 2006년 말과 2007년 초반 이미 “한보그룹”, “삼미그룹”, “기아자동차”가 부도가 났었고 3월에 들어서면서 증권가에 다음 주자가 바로 진로그룹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루머라고 강력 부인한 그룹은 각 계열사 관리 직원들을 서울 곳곳의 증권사 객장에 보내 한달 여를 루머를 수집해오라고 지시를 내렸고 그당시 평사원이었던 나는 업무를 작폐하고 일주일에 서너번씩 서울 시내 증권 객장을 돌아다니면서 그룹 관련하여 어떤 루머가 도는지 조사해서 보고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일 없다고 결국 4월에 공식 부도가 나게 된다. 대기업들의 줄도산을 우려한 정부(政府)가 “부도 유예 협약”이라는 보도 듯도 못한 정책을 들고 나와 그 첫 주자로 진로그룹을 선택하면서 그룹은 “화의(和議)제도”- 기업이 파산위험에 직면할 때 법원의 중재감독 하에 채권자들과 채무변제협정(화의조건)을 체결, 파산을 피하는 제도 - 의 첫 대상이 되어 경영권 박탈은 면하게 되지만 직원들은 혹독한 구조조정과 급여 삭감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편법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룹은 공중 분해되었고, 각 계열사들은 다른 회사들에게 줄줄이 매각되었고, 몇몇 회사들은 결국 문을 닫고야 말았다. 나또한 2000년에 그 회사를 나와서 여러 회사를 옮겨 다녔지만 아직도 첫 직장이었던 그때 회사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이 쉽게 잊혀지지 않아 진로그룹을 설명하는 대목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느껴졌다. 그 당시야 신입사원이어서 그룹이 각종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것이 발전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이 책에서처럼 무리한 사업다각화로는 느껴지지가 않았었다. 결국 그룹의 외형 성장에 너무 욕심을 낸 나머지 알짜였던 모기업인 (주)진로까지 잃어버리는 패착을 저지르고 만 셈이다. 

이 책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3부에서는 “100년 기업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먼저 작가는 과도한 자신감과 독주를 경계하라고 말하고,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며, 핵심 사업을 확실히 구축하라고 충고한다. 또한 “업(業)”의 방향을 분명히 결정하고, 인재의 두뇌력을 충분히 활용해야 하며, 시장에 대한 통찰력과 비전을 가지고, 더욱더 윤리적이 되야 하며 마지막으로 기업의 승계 과정을 확실히 하라고 충고한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과욕(過慾), 과신(過信), 과속(過速)” , 즉 자신의 실력이나 분수를 정확히 알고 지나친 욕심과 확신, 속도를 경계할 수 있다면 몰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면서 “지나침”이라는 한 단어에 몰락의 핵심 코드가 담겨있다고 충고하며 이 책을 끝을 맺는다. 

나처럼 책에서 언급한 기업에 다니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결코 마음 편히 읽을 수 없을 이 책은 오늘도 아침 눈뜨자마자 회사로 출근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에게도 한번쯤은 읽어봐도 좋을 책이겠지만 특히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회사를 결코 실패에 이르게 하고 싶지 않은 사장들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그런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책을 읽고서 회사의 몰락이 자신의 소유권을 잃게 된다는 것만을 깨닫지 말고 바로 그 회사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의 삶 또한 같이 허물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주길 바란다. 즉 회사의 주인은 바로 사장인 당신만이 아니라 그 회사에 몸담고 있는 전 직원이라는 것을,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모든 직원들의 생사여탈을 결정할 수 있다는 책임감을 다시 한번 깨달아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걸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경영권 불법승계며 횡령이며 탈세 등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오늘날 굴지의 대기업 오너들이 앞으로 10년 후 이 책의 속편에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회사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통렬히 깨달아주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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