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생활습관이 저녁 10시 너머 잠들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형식으로 바뀌면서 10시 타임의 드라마들을 챙겨 보기가 참 어려워졌다. 그런데 최근 본방 사수는 하지 못하지만 주말 재방송만큼은 꼭 챙겨 보는 드라마가 바로 박신양 주연의 드라마 <싸인(Sign)>이다. 최첨단 과학 수사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인기 “미드(미국 드라마)” <CSI>은 몇 편을 보고는 똑같은 패턴의 반복으로 느껴져 잘 챙겨 보지 않는데, <싸인>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다뤄지는 법의학 소재인데다 정치적 음모가 가미되어 매 편 이야기 전개가 흥미로워 꼬박 꼬박 챙겨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법의학 드라마와 영화의 모태가 된다는 책을 읽게 되었다.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잘 알려진 “퍼트리샤 콘웰”의 <법의관(원제 Postmortem/랜덤하우스 코리아/2010년 3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스카페타”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인 이 책은 발간 후 1년 안에 세계 유명 추리문학상을 휩쓴 대중소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데뷔작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책으로 그동안 명성만 익히 들어왔지만 아직 책으로는 접해보지 못했던 퍼트리샤 콘웰의 명성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버지니아 주 법의국 국장인 “케이 스카페타”에게 새벽녘에 여성 연쇄살인사건의 네 번째 피해자가 발생했으니 현장으로 급히 오라는 마리노 반장의 전화가 걸려온다. 급히 현장에 나가보니 30세의 로리 피터슨이라는 여인이 자신의 침대에서 발목과 팔목을 벨트와 전기선으로 묶인 채 심하게 얻어맞아 얼굴이 부어있는 시체로 발견된다. 그전 세 건의 성폭행 연쇄살인과 동일한 방식임을 느낀 스카페타는 사체를 부검하지만 피터슨의 몸에서 발견된 범인의 정액이 혈청학적으로 전체인구 20%미만의 비분비형이며, 레이저 반응에 반짝이는 형광물질이 묻어져 있고, 침실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달콤한 체취가 났다는 진술만을 얻어내는 데 그친다. 마리노 반장은 피터슨의 배우자인 “맷 피터슨”을 범인으로 의심하고 그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고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하지만 뚜렷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법의국 컴퓨터에 해커가 침입하여 피터슨의 정보를 조회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에 대한 정보가 법의국에서 누설되었다고 의심을 받으면서 스카페타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러던 중 폭로성 기사를 써대는 유력 일간지 여기자의 동생이 살해되는 다섯 번째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스카페타는 살해당한 다섯 명의 여인들에 대한 연관성을 조사하던 중 다섯 명 모두 “911”에 전화를 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사건은 더욱 점입가경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의 첫 출간이 1990년, 즉 20 여 년 전 작품이라 그런지 지금은 쓰지 않는 전화 모뎀이 나 플로피 디스크가 등장하고 부검(剖檢)를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내는 장면도 지금 상영 중인 “CSI" 나 ”싸인“에 비하면 다소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이 법의관을 소재로 한 최초의 작품으로 법의관 소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의 전형(典型)을 만들어낸 점, 주인공인 스카페타와 마리노 반장 프로파일러 벤튼 웨슬리 등 주요 등장 인물들과 스카페타 주변 인물들에 대한 탁월한 인물 묘사와 관계 설정, 연쇄 살인사건 발생부터 수사 과정, 최종 해결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사건 전개와 구성 등은 이 책의 명성이 결코 허명(虛名)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몇몇 설정과 전개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점도 보이는데, 이 책에서 추리소설 특유의 장치로서 범인으로 의심될 만한 인물들을 계속 제시하여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설정 - 이 책이 출간된 1990년에는 신선한 면으로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저런 작가의 트릭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너무 많이 출간되어 있어 상투적인 설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결국 드러난 범인의 정체가 작가가 그동안 제공해온 힌트의 범주에서가 아닌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인물로 밝혀지는 설정은 일종의 독자에 대한 기만으로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 , 주인공인 스카페타 시점으로만 전개되어 사건 전체에 대한 정보를 한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 - 물론 스카페타의 심리 변화에 대한 독자의 감정이입을 더욱 깊게 하는 장점일 수 도 있겠지만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의혹들에 대한 해소가 결말에 이르러서야 모두 들어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다소 불만이다 -, 책 후반부까지 딱히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전개되다가 스카페타의 활약에 의해 사건이 급반전하고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의 최대 위기와 해결이라는 도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점, 스카페타가 여성으로서 남성들의 편견과 견제에 부딪혀 고초를 겪는 상황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점들은 그동안 여러 소설들에서 볼 수 있는 뻔한 설정이라서 다소 지루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결말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호흡을 놓치지 않고 계속 긴장하게 만드는 작가의 글솜씨만큼은 이 작품이 첫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몇몇 점에서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법의관”을 소재로 하는 이색 추리소설 - 물론 지금은 너무 흔한 소재가 되어 버렸지만 - 로서 충분한 재미를 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하겠다.시리즈가 거듭되면서 더욱 기묘하고 긴장감 넘치는 사건들로 더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하니 스카페타 시리즈를 계속 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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