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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ㅣ 크로스로드 SF컬렉션 4
이영수(듀나) 외 지음 / 사이언티카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90년대 PC통신과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도서대여점이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무협, 판타지, 추리, 액션, 공포 등 다양한 장르 소설들이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대여점용 소설들이라 수준이 하향 평준화된 작품들이 많지만 그래도 몇몇 작가들은 문학적 성취가 상당해서 상업적 성공과 많은 팬들을 거느리는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찾아보기 힘든 장르가 바로 SF소설인 것 같다. 물론 눈에 띄는 작품들도 여럿 있어 왔고 어떤 작품들은 매니아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기도 했지만 앞에서 언급한 다른 장르들처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 - 내가 읽어 본 한국 SF 소설로는 기성작가인 김탁환의 <눈먼시계공>, 김상현의 <하이어드>, 그리고 듀나의 몇몇 작품들 정도만 떠오르는다 - 이다. 그래도 몇몇 전문 웹진이나 동아리 중심으로 SF 작가들의 활동은 꾸준히 이어져 오면서 여러 작가들의 단편들을 모은 모음집들은 몇 권 읽어봤는데 이번에 읽은 SF 전문 웹진 <크로스로드>의 컬렉션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사이언티카/2010년 12월)>도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번 작품이 벌써 네 번째 모음집이라고 하는데, 목록을 보니 첫 번째 작품집이었던 <얼터너티브 드림(2007)>은 읽은 기억이 난다. 책에 실린 10인의 작가중 “듀나” 외에는 생소한 작가들인데, 오히려 그런 생소함이 더 신선한 느낌을 맛볼 수 있었던 멋진 SF 단편들이었다.
책에는 웹진《크로스로드》(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발행)에 실렸던 10편의 SF 단편들을 모은 것으로, 최근 읽은 <브로콜린 평원의 전투>의 저자이자 척박한 국내 SF계에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펼쳐온 인기 작가인 듀나와 각종 웹진, 단편집 등을 통해 명성을 알려온 김창규, 박성환, 정보라, 설인효, 김현중 - 사실 나에게는 생소하기만 하다 - 등 기성과 신진 SF 작가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따라서 한편 한편이 서로 다른 색깔의 재미를 선보이고 있다. SF소설이라고는 “아이작 아시모프”나 “로저 젤라즈니”, “아서 C.클라크” 작품 몇 편 정도 - 외국 작가의 작품들은 사실 좀 어렵다 - 만 읽어봤었고 가장 재밌게 읽은 작품이라고는 SF 팬들에게는 아류(亞流)로 취급받고 있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인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 정도이니 SF 팬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내 수준으로서는 우리 글과 정서를 담고 있는 이번 작품이 오히려 내 취향에 제격인 그런 작품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웹진 <크로스로드>의 편집위원인 박상준 교수가 쓴 서문인 “우리 안의 미래를 통해 보는 현재의 파노라마”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우리 주변의 공간 속에서, 시간여행이나 외계인과의 조우, 지구 종말, 인공지능 등 SF를 구성하는 다양한 하위 장르들의 서사를 읽는 것은, 막연한 우주 공간이나 대체우주를 상정한 전통적인 서양 SF를 읽을 때와는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되는,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라는 말에 절로 십분 공감하게 된다.
10편의 작품 하나하나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고른 재미를 주고 있지만 그중 인상깊은 작품들을 꼽아본다면 먼저 표제작이기도 한 조나단의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를 꼽고 싶다. 21세기 어느 날 출근길에 반복해서 북쪽 하늘에서 나타나 남쪽하늘로 사라지는 비행물체를 본 한 남자가 UFO 임을 직감하고 비싼 디지털 카메라까지 구입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사진을 찍는데 성공하고 영국에 있는 한 타블로이드 신문사에까지 보내지만 정밀 사진 감정 결과 비행체에 “ㄸ”과 “ㅇ"이라는 한국어의 자음이 보인다는, 즉 비행체가 한국 내 모기업이나 환경단체에서 대기상태 측정을 위해 띄운 인공 비행체라는 회신을 받고 실망하게 된다. 22세기 마지막 해, 뉴욕에 살고 있던 수미는 이집트에서 열리는 82차 세계 기호학 심포지엄에 참석하려고 하지만 그만 비행기를 놓쳐 발을 동동 구르던 차에 웜홀을 통한 장거리 여행 기술을 개발했다는 한 남자가 여행을 제의해온다. 의심은 들지만 급한 마음에 이용하기로 맘 먹은 수미는 웜홀 여행용 비행체인 에이로플레인에 탑승하고 불과 몇 초 만에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 동쪽 외곽에 위치한 골동품 시장에서 오래된 신문에서 ”특종! 서울 상공을 가로지른 UFO"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게 되는데, 그 사진 속 UFO가 바로 자신이 타고 온 “에이로플레인”임을 알게 된다. 즉 21세기 한 남자의 사진 속에 담긴 UFO가 바로 22세기 신 이동 수단인 에이로플레인이 웜홀을 통과하면서 서로 다른 시공간을 거쳐 가는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즉 UFO는 바로 미래의 이동 수단이었던 셈이다. 이 외에도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해 대속(代贖)의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젊은 청년의 이야기인 김린의 <우주와 그녀와 나>, 파충류 외계인의 침략으로 멸망 위기에 빠진 인류가 타임머신을 만들어 과거로 특공대를 파견하지만 시간 여행으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결성된 관리국 공무원들에게 제제를 당하는 허무한 상황을 그린 백상준의 <시공간-항(港)>, 전혀 동기가 없는 연쇄 살인 사건에서 묘한 연결 고리를 발견한 아마추어 추리소설 작가가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설인효의 <전화 살인>, 시간관광이 일반화된 어느 미래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와 함께 기원전 480년경 석가모니의 입적 순간으로의 여행을 그린 박성환의 <관광지에서> 등이 인상깊었다.
한편 한편 고른 성취와 재미를 한껏 담고 있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전혀 지루함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책 만으로 한국 SF 소설의 성취를 논하기에는 너무 섣부른 판단일 수 도 있겠지만 벌써 이런 컬렉션 시리즈가 네 편에 이르렀고, 이 책의 작가들이 저마다의 상상력과 감성으로 인터넷에서, 출판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니 조만간에 우리 SF 소설들도 더 풍성해질 것으로 보여 그 가능성만큼은 충분히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문에서
일반적인 SF의 상상력에 더하여 한국적 작품세계가 주는 친숙함이 가미되어 읽는 즐거움이 한층 강화되었으니, 그 외의 사정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P.9
라는 말처럼 좀 더 친숙한 우리 세계관이 가미된 멋진 우리 SF 소설들이 지금보다 더욱 많아지기를, 그래서 SF 소설 본연의 재미를 만끽해볼 수 있기를 장르소설의 팬으로서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