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흐르는 강물이나 파도치는 바다를  같이 바라 보면서도 그 감상은 제각각이다. 물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물을 “슬픔”이나 “두려움”의 존재로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휴식처로, 즐거움으로, 낭만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물은 아무런 말도 없이 흘러가고 있을 뿐인데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저마다 다르게 물을 받아들이는 셈이다. 그렇다면 물이 피할 수 없는 숙명(宿命)인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바로 몸에 물고기의 “아가미”를 타고 난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구병모의 신작 <아가미(자음과 모음/2011년 3월)>은 바로 이런 숙명을 타고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책은 택시비가 모자라 한강 다리 중간에 내린 만취한 한 젊은 여성이 다리 철창 모양의 난간에 휴대폰을 떨어 뜨려 주우려다가 실수로 강물에 빠진 이야기로 시작한다. 점점 몸이 무거워져 물에 가라앉을 무렵 수십 마리의 물고기들이 그녀 주위에 모여들고 그 가운데서 한 남자 머리가 불쑥 솟아올라 그녀를 구해 반대편 강기슭으로 데려다 놓는다. 왜 도와줄 사람들이 있는 건너편이 아닌 반대편으로 데려다 줬냐는 물음에 건너편에는 사람이 많아서 라고 답변하고 다시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그녀는 놀랍게도 귀 뒤에 호 모양의 홈이 붉게 패여 살짝 벌어지며 물이 흘러내리는 “아가미”와 달빛을 받은 그의 목이 사람의 살결이라기보다는 섬세한 그물 무늬를 가진 비늘처럼 빛나는 것을 목격한다. 여성은 그녀를 건져준 사람이 있다는데 어디 갔느냐는 구급대원의 물음에 물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수색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실은 그가 벌써 어디론가 무사히 헤엄쳐서 사라졌다고, 그 부옇고 탁한 강물이나마 자기의 고향이거나 유일한 집이어서 거기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프롤로그가 끝나면 물속으로 사라졌던, 목에 아가미와 비늘을 가지고 있었던 남자의 과거가 펼쳐진다. 11개월 채 밀린 월급 증 1개월 치라도 줄 수 없겠냐고 사정하러 간 남자가 옆에 끼고 온 아이를 어디 앵벌이에게라도 팔아버리라는 사장의 말을 듣고 그만 백자로 머리를 쳐 살해하고야 만다. 도망쳐온 남자는 이내호라는 호수에 아이와 함께 몸을 던지지만 잠결에 그 소리를 듣고 호숫가를 살피러 온 노인과 외손자 “강하”에 의해 아이는 구조되게 된다. 물에 젖은 아이의 몸을 씻기던 노인과 손자는 아이의 뒷 목에서 길게 벌어진 상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번 사고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처럼 자연스러운, 마치 물고기 아가미처럼 물을 토해내며 호흡하는 모습을 보고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아이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아이는 노인에게 거두어져 “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노인의 손자로 강하의 동생으로 키워지게 된다. 강하의 “물고기 새끼”라는 구박에도 곤은 할아버지와 강하를 의지하며 청년이 되고, 곤의 등에는 아름다운 비닐이 자리 잡게 된다. 어느날 강하를 버렸던 어머니 “이녕”이 십 수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를 거부하는 강하 대신 그녀를 보살피던 곤은 마약에 찌든 그녀를 위해 약을 모두 버리게 되는데, 사고로 그만 그녀를 죽이게 되고 강하는 강도가 들었던 걸로 위장하고 곤을 떠나 보낸다. 몇 년 후 대학생들 MT촌으로 유명한 강원도 민박집에 머물고 있던 곤에게 낯선 여인이 찾아온다. 프롤로그에서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여성 “해류”는 곤에게 곤이 떠난 후 할아버지와 강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아가미와 비늘을 가진 상상 속에서나 볼 법한 물고기 인간이 등장하는 신비롭고 기묘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판타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한 인간이 겪는 처연한 슬픈 운명의 궤적을 쫓아 보는 성장소설로 볼 수 도 있을 것이며, 곤을 스스럼없이 가족으로 받아 들여 사랑으로 키워낸 할아버지, 겉으로는 “물고기 새끼”라며 구박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이 붙여준 곤(鯤) -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나중에 물고기 허물을 벗고 붕(鵬)으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오르는 물고기 “곤(鯤)”이다 - 이라는 이름처럼 언젠가는 삶의 멍에가 되어 버린 물고기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하늘로 멋지게 비상하기를 바라는 강하, 홍수로 죽어버린 할아버지와 강하를 대신하여 자신의 유학까지 포기하고 곤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싶어 하는 “해류”에게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물은 자신에 대한 이해와 애증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즐거움으로 때로는 치열한 생계의 터전으로 여기듯이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에 대한 감상도 독자들마다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도 곤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진실하면서도 애처로운 사랑과 곤이 결국 자신의 숙명인 “물”을 힘겨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면서도 작가가 곤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은 점 - 내 이해력 부족을 탓하는 게 맞을 것이다 - 은 다소 아쉬웠다.  

 천천히 읽기를 권하는 추천사처럼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한 줄 한 줄 곱씹어가면서 읽으려고 했지만 신비롭고 애처로운 이야기의 흐름에 취해 금세 읽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곤은 지금도 어느 바다 속 깊은 곳을 유영(遊泳)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이 책에서처럼 홍수에 휩쓸려 버린 할아버지와 강하의 시신을 찾기 위함일 수 도 있겠지만 어쩌면 결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숙명의 굴레 때문에 해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을 잊기 위한 처연한 몸부림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곤이 애처롭기만 하다. 바다 속에서 그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차디차게 식어버린 사랑하는 이들의 주검일 테고 숙명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래저래 슬픈 결과만 예측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다"라는 강하의 바람처럼 나도 그가 어느 호수, 강, 바다에서든 살아 주길 바래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곳에서 슬픔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의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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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권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경찰소설 베테랑 작가라는 “사사키 조(佐佐木讓)”의 작품은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품인 <폐허에 바라다(북홀릭/2010년 11월)>에 이어 이번에 읽은 <폭설권(원제 暴雪圈/북홀릭/2011년 3월)>이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에서 절묘한 트릭이나 반전은 없지만 형사들의 기본 수사 방식인 현장조사와 탐문 수사 과정에 대한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는 묘사가 색다른 재미를 주었던 터라 이번 작품도 역시 전작 못지 않은 재미를 줄 거라는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난 후 느낌은 내 기대가 여실히 맞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책은 북일본을 공습하는 폭풍우인 “히간아레(彼岸荒れ)”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한다. 대개 3월 히간(彼岸; 책에는 “춘분과 추분을 중심으로 7일간”이라고 주(註)가 달려 있는데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춘분과 추분의 전후 3일을 포함한 총 7일간을 말하며 날짜로는 봄에는 3월 18일경, 가을에는 9월 20일경이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성묘하러 간다고 한다) 무렵에 찾아오는 폭풍설(暴風雪)은 종종 간선도로의 교통을 완전히 단절시키기도 해서 인구 1만 전후 규모의 마을일지라도 만 하루, 혹은 그 이상을 고립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훗카이도 작은 마을 시모베츠에 3월도 끝물이 다 돼서야 최대 순간 풍속이 32미터에 이르는 10년 만의 초대형 폭설이 엄습한다. 아침 순찰을 마치고 주재소에 막 들어선 카와쿠보 아츠시 순사부장에게 지역 농가에서 일하는 남자가 다리를 지나가는 길에 시체를 발견했다고 전화를 해온다. 카와쿠보는 이 시기에 불어 닥치는 눈보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려주는 1957년 초등학교 학생 여섯 명의 조난사건을 떠올리며 점점 거세지는 바람을 뚫고 현장에 출동한다.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여성 시신의 겉옷 주머니에서 지갑을 발견하여 시신의 신원을 파악한 카와쿠보는 악천우 속에서도 탐문 수사를 진행한다. 한편 히간아레 탓이었는지 작은 마을인 시모베츠에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난다. 지역 야쿠자 조장 집에 택배 기사로 위장한 2인조 강도가 들어 조장의 애인을 권총으로 살해하고는 수천만 엔의 돈을 강탈해가고, 남편 몰래 불륜을 저지르고 후회하던 여인은 마지막으로 한번만 만나자고는 하지만 돈을 뜯어낼 목적인 불륜남을 죽이기 위해 식칼을 숨겨 가지고 가고, 말기암 환자인 한 남자는 회사 금고에 있는 2천만 엔을 훔치게 되며, 새아버지의 성폭행에 시달린 소녀는 가출해서 지나가는 트럭을 잡아타고 엄마가 입원해 있는 타 지역 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점점 거세지는 푹풍설은 저마다 사연 으로 시모베츠를 벗어나려는 이들의 발을 묶어 세워 마을 펜션으로 모이게 한다. 날씨가 어떨지 보려고 틀어놓은 TV에서 야쿠자 조장 애인 살인사건 범인의 얼굴이 공개되자 펜션에 모인 사람들은 일순 침묵에 잠긴다. TV 속 범인이 바로 펜션 안에 같이 머물게 된 남자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고립된 펜션에는 악몽이 시작된다. 
  

역시 이 책의 장점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었나 싶을 정도로 생생한 사실성과 현실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마을이나 저택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 대표적인 작품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들 수 있다 - 은 추리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설정인데 작가는 기존 소설이나 영화처럼 기막힌 트릭이나 반전, 또는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의 공간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일어난 모든 사건이 한 곳에서 만나 갈등을 해소하게 되는 장소로서만 활용하게 된다. 어쩌면 펜션을 장소로 설정한 것 자체가 깊은 산 속 길을 헤매다가 모이게 되는 오래된 산장이나 온갖 살인 장치가 갖춰진 별장과 같은 다른 소설이나 영화 속의 비현실적인 공간보다도 더욱 현실감이 느껴지는 그런 장소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책 도입부에 발견된 여성의 살해범을 수사해가는 과정, 폭풍 속에서 계속적으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들에 대한 설정과 묘사, 어쩔 수 없이 살인범과 함께 고립된 사람들의 심리나 행동 등을 과장하지 않고 실제 일어났을 법하게 묘사하고 있어 사실감을 더욱 살리고 있다. 팽팽한 긴장감과 스릴, 멋진 트릭과 반전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는 설정과 묘사에서 오히려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아쉽다면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카와쿠보 형사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딱히 차별화된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무난한 캐릭터로만 느껴져 이 책이 굳이 시리즈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즉 책 속에 등장하는 다른 경찰들 - 야쿠자 조장 주택 강도 사건을 수사했던, 책 도입부의 여성 살해범을 밝혀낸 형사들 - 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약하게 느껴졌다. 시리즈 전작인 <제복수사>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으로서 활약을 펼친다니 카와구보 형사에 대한 판단은 <제복수사>를 읽고 나서야 가능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폐허에 바란다>의 훗카이도 경찰본부 소속 형사인 센도 다카시가 더 존재감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두 권 모두 부담감 없이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고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여주는 추리소설이라 앞으로도 사사키 조의 작품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우연찮게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장르라 할 수 있는 서양 경찰 소설을 읽게 되었다. 바로 ‘플롯의 제왕’이라는 “피터 러브시”의 <마지막 형사>인데 캐릭터는 <마지막 형사>가 더 낫지만 리얼리티와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는 <폭설권>이 더 나은 것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런 비교를 두 작가는 무척 기분 나빠할 수 도 있겠지만 책에 대한 감상과 비교는 독자만의 자유이니 양해를 해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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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형사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1
피터 러브시 지음,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머리카락 한 올로 범인의 신체적· 유전적 특징이 모두 밝혀지고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가 하루 동안의 모든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요즘 이제 더 이상 회색 뇌세포를 자랑했던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의 추리 솜씨나 범인의 정곡을 찌르는 “형사 콜롬보”의 활약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최첨단 수사 기법이 갈수록 발전하는 데도 미제(未濟)사건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 - 지난 2009년 대검찰청 자료에 의하면 2009년 8월 기준으로 미제 사건이 5만 건이 넘었으며 전체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전년(2008년)보다 세 배 가까이 증가한 3.4%에 이른다고 한다(인터넷 법률신문, 2009.10.08. 기사 발췌) - 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수사 풍토가 휴대 전화 발신지 추적이나 DNA 분석 등 과학 수사에 의존하다 보니 과거처럼 현장을 이잡듯 뒤지는 발품수사와 정통 사건 형사를 키우는데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들려진다. ‘플롯의 제왕’으로 불리우는 “피터 러브시(Peter Lovesey)”의 <마지막 형사(원제 The Last Detective/시공사/2011년 3월)>의 주인공 “피터 다이아몬드” 형사도 첨단 기술에 의존하는 현 수사 형태를 비웃으며 직접 발로 뛰며 수사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구시대적 형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목욕’이라는 영어 단어 “bath"의 어원이 된 곳으로 2000 년 전 로마가 만든 목욕탕 유적이 남아 있는 도시인 영국 “바스(Bath)"의 호수에서 벌거벗은 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이 사건을 배정받은 에이번 서머싯 지역 수사과장 “피터 다이아몬드” 경정은 현대의 과학수사시스템을 영 못마땅하게 여기는, 수사란 상식과 탐문 수사만 있으면 되는, 그렇게 발로 뛰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아날로그”형 형사다. 즉 경찰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학위나 받고 졸업한 신참들과 달리 발로 뛰며 잔뼈가 굵은 “진짜 수사관”인 셈이다. 피터는 여자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몽타주를 방송에 공개하고 전통적인 수사 방식인 탐문 수사를 벌인다. 결국 여자의 신원이 인기 TV 시리즈 배우인 “제럴딘 잭맨”으로 밝혀지고 피터는 남편인 “그레고리 잭맨”을 심문하지만 오히려 아내가 자신을 죽이려 했었다는 뜻밖의 증언을 듣고는 풀어주게 된다. 피터가 주목한 또 다른 용의자는 바로 잭맨이 익사 직전 구해준 아이 “매튜”의 어머니이자 잭맨의 내연녀로 의심되는 싱글맘 다나 디드릭스였다. 그러나 잭맨과의 불륜관계를 완강히 부인하는 다나도 딱히 결정적인 물증을 잡아내지 못하고 사건은 난항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다나를 찾아갔다가 그녀의 아들인 매튜를 밀쳤다는 이유로 경찰직을 사직하게 되고 사건은 다나의 차 트렁크에서 시신을 옮긴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면서 다나가 전격 구속되면서 살인사건은 일단락되어 버린다. 그런데 실직자가 된 피터에게 잭맨이 다나를 도와주길 요청해오면서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과연 다나는 제럴딘을 살해했을까? 그녀가 아니라면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결말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이 책의 사건은 줄거리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유명 TV 여배우의 죽음, 항상 용의자 1순위로 오를 수 밖에 없는 남편에 대한 심문, 용의자 2순위인 내연녀에 대한 심문이라는 참 단순한 구조이다. 어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이 구조에 작가는 부부의 과거와 현재 상황, 남편과 내연녀와의 사연, 그리고 “바스”에 잠시 살았다는 유명 작가 “제인 오스틴”의 편지 분실 사건을 덧붙어 이야기를 확대해나가는데 사건과 관련이 없는 듯 하면서도 마지막에 그 연관성이 드러나는 여러 이야기들이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 후반부에 이를 때까지도 도대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사건이 피터가 경찰서에서 쫓겨나고, 다나가 유력한 범인으로 법정 구속되면서 허무하게 결말을 맺나 싶더니 책 말미에 이르러서는 전혀 의외의 전개가 속도감 있게 펼쳐져 마지막 장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처럼 그저 사실을 시간대 순으로 나열하는 “스토리(Story)"와는 달리 용의자인 잭맨과 다나 시점에서의 증언, 전혀 별개의 사건인 것 같으면서도 결국 서사 구조의 큰 축을 이루는 여러 사건들을 배치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치밀하게 계산된 플롯이 바로 “플롯의 제왕”이라는 작가의 명성이 결코 허명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다만 독자가 범인을 추리해볼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 - 내가 꼼꼼히 읽지 않아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 도 있겠지만 - 과 마지막에 피터가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장면에서 추리 과정이 생략되어 뜬금없게 느껴진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고집불통에 안하무인에 까칠하기까지 한 구식 형사 피터 다이아몬드, 포와로처럼 천재적인 두뇌와 콜롬보의 허를 찌르는 절묘한 심문 솜씨 - 물론 베테랑 형사로서의 노련함은 엿보이지만 - 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어찌 보면 흔히 만나볼 수 있는 평범한 캐릭터인데 오히려 그런 점들이 더 현실감 있고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 주인공이다. 그런데 피터 다이아몬드의 수사 방식이 앞으로도 계속 통할 수 있을까?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가 이 책을 시작으로 총 10권에 이른다니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경찰에서 쫓겨나 백수 신세가 된 피터 다이아몬드가 다른 책에서는 어떤 활약을 펼칠지 시리즈 후속권들이 절로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피터 다이아몬드, 자주 만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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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신 역사스페셜 우리 역사, 세계와 通하다 KBS 新역사스페셜 1
KBS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음 / 가디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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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 이야기를 참 좋아해서 역사를 소재로 한 책과 드라마, 교양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이다. 특히 매주 토요일 저녁 8시에 방영했던 “KBS 역사 스페셜” - 이번 정권 문화부장관을 역임했던 모씨가 진행을 맡았던. 방송 보면서 참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쩝 - 은 꼬박 꼬박 챙겨보던 프로그램으로 본방시간을 혹시나 놓치면 인터넷 다시 보기나 다운로드를 해서라도 빠짐없이 챙겨봤고, 효형출판사에서 출간했던 책인 <역사스페셜 1~7권>도 세트로 구입해서 읽었을 정도로 애청하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역사스페셜>에 열광했던 것일까? 아마도 박물관이나 책 속 삽화로나 볼 수 있는 유물과 유적들을 이해하기 쉬운 해설과 함께 영상으로 생생하게 접해볼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즉 언제나 가볼 수 있을지 전혀 기약할 수 없는 양만춘의 안시성(安市城)터나 지금은 유리벽에 갖혀 있다는 광개토대왕릉비도, 통일이 되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을 평양성과 단군릉, 묘향산 보현사와 동명왕릉도 바로 이 방송을 통해서는 생생한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읽은 <KBS 신 역사스페셜 01 - 우리역사, 세계와 통하다(KBS역사스페셜 제작팀/가디언/2011년 4월)>은 최근 방송 시간을 목요일 밤 10시로 옮겨 새롭게 방송하는 <역사스페셜> 방송분을 활자와 삽화로 엮어낸 책으로 시간대가 평일로 변경되면서 자주 챙겨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는 그런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작가라 할 수 있는 역사스페셜 책임프로듀서는 <프롤로그>에서 먼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역사를 이용해서 얻은 해악으로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이나 이스라엘의 영토분쟁, 유고슬라비아 내전, 그리고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 우기는 일본이나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 말하는 중국, 그리고 잃어버린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자는 일부 민족주의자들을 예로 들면서 역사의 용도는 과거의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즉 거울처럼 비춰보고 자신을 경계하는 “감계(鑑戒)” 기능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역사 스페셜의 방송 역사를 소개하면서 역사는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기도 하고 엄청난 이야기들로 가득 찬 스토리텔링의 보고이자 공동체가 함께 공유해야 할 기억이기도 하며 집단의 정체성을 공급해주는 원천이라고 역사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이번 책에서는 이민족들과의 대립과 투쟁이 아닌 이해와 소통의 사건, 즉 “소통”이 주제이며 소통만이 문화를 충성하게 만들고 공동체의 다양성을 유지하게 하는 비법이자 아(我)와 비아(非我)가 투쟁이 아닌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공존의 기술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본문에 들어가면 <섞임과 교류가 역사를 만든다>, <동북아 문화의 용광로, 한반도>, <패자의 또 다른 행보, 메신저가 되다> 등 3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총 11가지의 소통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먼저 방송 당시 논란을 일으켰던 <신라 왕족은 흉노의 후예인가(2009.7.18.방송> 편을 간략히 소개해보자.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대표적인 유목 민족이자 중국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흉노(匈奴)족이 신라 왕족의 조상이었다? 아마도 발끈하는 사람들이 여럿일 수 밖에 없는 이 가설을 책에서는 문무왕릉 비문(卑門)에 투후(秺侯) 김일제(金日磾)가 신라 김씨 왕조의 조상이었다는 기록에서부터 시작한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 문제가 부산외대 권덕영 교수가 중국 탁본을 조사하던 중 김일제가 김씨의 조상이라는 사실과 그가 신라 사람이었다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대당 고 김씨 부인 묘명(大唐故金氏婦人墓銘)’을 발견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렇다면 김일제란 누구일까? 김일제는 흉노의 번왕(藩王)이었던 휴도왕의 아들로 휴도왕이 한나라에 투항하려다 살해되자 그만 말 기르는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곧 한무제의 눈에 띄어 한나라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고 “투후”라는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이 김일제의 후손들이 많이 살았던 낙랑군(樂浪郡)이 고구려에 의해 313년 멸망하자 그 유민들이 남쪽으로 쫓겨 내려와 신라에 정착했고 그의 후손 중의 하나인 내물왕(奈勿王)이 356년 즉위하면서 본격적으로 김일제의 후손들이 신라 왕위를 계승하였다고 추측한다. 이처럼 신라 왕족이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흉노족의 후예라는 가능성이 분명한 만큼 야만족으로 부당한 평가를 받아왔던 이들(흉노족)의 자취를 복원하는 일은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의 뿌리를 되찾는 작업이라고 이야기한다. 

또 다른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금나라 황족의 성(姓) 애신각라(愛新覺羅)는 신라에서 유래되었나(2009.9.5.방송)> 편에서는 신라 왕족이 흉노족의 후예라는 것과는 반대인, 즉 중국에 이민족 국가인 “금(金)”과 “청(淸)”을 세웠던 여진족이 바로 신라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1100년 경 만주는 거란이 세운 “요(遼)” 나라가 자리잡고 있었고 만주 북부에는 여진족(女眞族)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송화강 동쪽에 거주하면서 거란의 간접 통치를 받던 “생여진(生女眞)”이 세를 일으켜 결국 요를 멸망시키고 “금(金)”나라를 건국했다고 한다. 이 “금”의 태조가 바로 ‘완안 아골타’인데 완안씨의 한자 표기를 “金”으로 한다고 하는데 <금사(金史)>에 보면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이며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완안 아골타의 8대 선조인 ”김함보“는 과연 누구일까? 누군지는 확실치 않으나 여러 사료들을 들어 그는 김씨 성의 신라 광복군으로 추정되며 그가 여진에 들어가 금나라의 선조가 되었다고 추측한다. 청 황실의 성인 “아이쉰줘러”는 한자로 “애신각라(愛新覺羅)”로 쓰는데 <만주실록>에는 “애신(愛新)”의 원래 뜻은 “금(金)”이라 하며, 각라는 만주어 줘러를 차음 표기한 것인데 성, 씨족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아이쉰줘러”는 번역하면 “금부족, 김씨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때 재야사학자들이 이 “애신각라”를 신라[新羅]를 사랑(愛新)하고, 신라를 생각(覺羅)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다. 물론 이 책(방송) 목적이 금과 청이 우리 조상의 국가였으니 고토(故土)를 회복하자와 같은 국수적인 시각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한때 악비(岳飛)를 민족적 영웅이라고 여겼다가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시작되면서 더 이상 악비가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고 발표한 중국 역사 정책의 허구를 꼬집는 게 목적이라고 하지만 아직 역사학계에서는 정설(定說)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론으로 좀 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최근 다문화 가정이 크게 늘면서 단일민족신화(單一民族神話)는 이제 무색해졌지만 책에서는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적극적으로 타민족을 수용해왔던 나라이며 그 예로 우리 역사 최초의 국제결혼이라 할 수 있는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비인 “허황옥(許黃玉)”, 베트남의 사라진 왕조인 “리 왕조”가 고려로 망명해 와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된 일화, 임진왜란 당시 귀순한 일본 장수로 사성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된 “김충선(金忠善)” 등을 예로 들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당선에 중국 허난성 판(潘)씨 집성촌이 기쁨의 도가니였던 이유도 반기문 총장의 본관인 “거제 반씨”가 바로 중국에서 유래된 성씨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의 말처럼 “순수 단일민족은 없다”은 없으며 우리 역사는 다른 나라보다 오히려 더 개방적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피가 섞여 있다고 볼 수 있고, 결국 단일민족이란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정신적 요소에서의 단일화, 일체화와 동질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외에도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굴된 로마식 황금보검의 비밀, 동인도회사에서 코리아 호를 건조한 이유, 일본의 신(神)이 된 연오랑과 세오녀, 일본으로 도피한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 약광에 의해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기마전투술 등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몇 몇 편들은 직접 방송을 시청했지만 못 챙겨본 내용들이 더 많아 책으로라도 이렇게 접해 볼 수 있었던 즐거운 책읽기였다. 아쉽다면 전편인 <역사스페셜>과 마찬가지로 방송화면을 캡춰한 삽화들인데, 유물 유적 사진들은 비교적 선명하지만 역사 지도 부분은 사진이 작고 선명하지가 않아 글씨를 알아보기가 힘들어 책을 위한 도판을 새로 구성해서 삽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각종 역사 이야기들이 역사학계에서는 실제로 인정받는 학설에 바탕을 둔 것인 지는 역사 비전공자로서는 알 수 가 없지만 적어도 이 방송의 취지인 “역사 대중화”의 기치를 되살리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역사 방송과 책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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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엄마 - 자살을 결심한 엄마와 그 시간을 함께한 세 딸이 전하는 이야기
조 피츠제럴드 카터 지음, 정경옥 옮김 / 뜰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에 방송인 겸 카피라이터이자 “행복전도사”로 널리 알려졌던 분께서 갑작스레 자살을 해서 크게 이슈화가 된 적이 있었다. ‘행복’에 대한 많은 강연을 하고 다니며 언제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줬던 분이어서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분일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분의 자살 소식은 많은 분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일부는 “배신감”을 느꼈다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루푸스’라는 자가(自家)면역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병이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 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라는 유언장에 남긴 말과 같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지옥(地獄)”과 같다는 극심한 고통의 병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동정 여론이 일기도 했다. 나또한 그 분의 자살을 보면서 처음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었고 냉소적인 생각도 들었었지만 그분의 병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게 되면서, 그리고 진보 논객으로 유명한 “김규항”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행복전도사를 자처한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걸 두고 냉소하진 말자. 그로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병고 속에서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으니. 지지하진 않더라도 존중하는 게 옳다. - GYUHANG.NET 2010.10.08.  

말대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지지할 수 는 없지만 존중하는 게 옳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조 피치제럴드 카터의 <엄마 엄마 엄마 ; 자살을 결심한 엄마와 그 시간을 함께한 세 딸이 전하는 이야기(원제 Imperfect Endings / 뜰 / 2011년 3월)>도 앞에서 언급한 행복 전도사처럼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려온 엄마가 자살을 결심하고 그런 그녀의 죽음을 지켜봐야했던 세 딸의 이야기였다.  

울형성 심부전증, 천식, 만성 폐질환, 골다공증, 관절염, 저혈압, 그리고 이십 년 넘도록 시달려온 파킨슨 병, 일흔다섯의 마거릿은 이런 병마에 지쳐 죽음을 결심하고 세 딸에게 자신의 결심을 통보한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는 - 어느 누가 자살하겠다는 엄마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 딸들은 오랜 병으로 심약해진 엄마가 자신의 품을 떠난 장성한 자식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려는 일종의 어리광으로 여기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막내딸이자 이 책의 저자인 카터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린 시절 언니들과의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그런 엄마가 영 안쓰러워 그저 투정으로만 여기며 아내의 잦은 부재(不在)를 못마땅하는 남편과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딸들이 눈에 밟혀도 멀리 떨어진 엄마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그녀의 결심을 꺾어보려고 하지만 엄마는 이미 치사량이 될 만큼의 수면제 60알과 모르핀을 준비해놓고 자신의 자살을 도울 자원봉사단체인 “햄록협회” -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한 채로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주장하는 단체로 오리건 주에서 안락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 사람까지 집으로 불러들이는 등 그 결심이 확고하다. 몇 번이나 사망일 결정과 연기가 반복되면서 가족들은 지쳐만 가는데 드디어 엄마는 자살을 실행에 옮긴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단식과 고통을 없애기 위한 모르핀의 처방이었고 결국 엄마는 12일 후에 소원대로 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해서 몇 번을 책을 놓았다가 다시 들었는지 모르겠다. 죽음을 결심하는 엄마, 그런 그녀를 강하게 말리지 못하고 지켜보는 딸들 - 물론 책에서 엄마를 수없이 설득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 이 못내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수십년간 병마에 시달려온 엄마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아파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딸들의 심적 고통도 말할 수 없이 컸겠지만 그렇다고 과연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엄마의 결정을 왜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했을까? 막내딸인 작가가 그런 엄마의 결정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엄마가 자신의 곁을 떠나는 과정을 감정적이지 않고 차분하게 그려내 감동을 자아냈으며, 이 책이 출간된 미국에서는 반스앤노블 올해의 작가상, 샌프란시스코 작가협회상, 내셔널협회 논픽션 부문, 노스웨스트 작가협회상 등을 수상했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과정을 읽어가면서 가슴 한 켠이 아련해지는 슬픔을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와 딸들의 선택만큼은 지지할 수 없어서 그런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슬픔과 함께 불편함이 영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작가는 어머니의 결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살듯이 죽는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대단한 몸짓은 절대 엄마의 방식이 아니다. 일상적인 오후에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엄마의 방식이다.... 지난 몇 달 동안 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잘못된 시작과 온갖 실패를 겪은 나의 자랑스럽고 용감한 엄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품위와 자존심을 온전히 지키며 하늘로 떠났다.” - P.323 

결국 작가도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엄마의 선택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존중했기에 자살을 막지 못하고 그저 엄마 곁에서 고통스런 작별을 감내해 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 마음은 알겠지만 못내 인정할 수 없었음을 밝혀둬야겠다. 

이 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언젠가 TV에서 암에 걸린 남편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은 물론 집까지 처분해서 병원 치료에 매달렸지만 결국 남편은 하늘나라로 떠나고 남은 건 빚과 어린 자식 뿐이었다는 사연을 보면서 아내와 우리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할까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아내는 남은 사람을 위해 조용히 떠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러고 나는 그 결과가 빤히 보이더라도 저 방송의 아내처럼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내는 그런 최선이 결국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일 뿐이며 혹시 그런 최선이 먼저 떠난 남편(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그저 심적 위안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야박한 소리를 해왔고 나는 순간 말문을 막혔었다. 정색을 하고 당신도 그럼 병들어 죽어가는 나를 버릴 수 있겠냐고 물으니 머리로는 그렇게 할 수 있어도 가슴으로는 절대 그럴 수 없겠지 라는 멋진 말로 감동을 느끼게 해줬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느 것이 최선일지 금세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마도 방송에서 본 아내도 남편의 죽음을 머리로만 이해하려 했으면 결코 저렇게까지 집을 팔아가면서 병 수발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남는 자의 고통은 언제고 치유될 수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감만큼은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아픔이었기에 그렇게 남편에게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에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심적 위안을 얻고자 그런 것이 아니었냐는 물음은 지극히 불필요한 그런 오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작가도 엄마의 죽음을 눈과 머리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바라봤기에 엄마를 떠나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좀 더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결국 서평이랍시고 책에 대한 감상보다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은 이야기 때문에 책에 대해 오해가 있을까봐 말해두지만 이 책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인 책이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을 해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가슴 깊이 사무치는 슬픔과 감동을 느껴볼 수 있는 그런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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