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형사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1
피터 러브시 지음,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머리카락 한 올로 범인의 신체적· 유전적 특징이 모두 밝혀지고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가 하루 동안의 모든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요즘 이제 더 이상 회색 뇌세포를 자랑했던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의 추리 솜씨나 범인의 정곡을 찌르는 “형사 콜롬보”의 활약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최첨단 수사 기법이 갈수록 발전하는 데도 미제(未濟)사건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 - 지난 2009년 대검찰청 자료에 의하면 2009년 8월 기준으로 미제 사건이 5만 건이 넘었으며 전체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전년(2008년)보다 세 배 가까이 증가한 3.4%에 이른다고 한다(인터넷 법률신문, 2009.10.08. 기사 발췌) - 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수사 풍토가 휴대 전화 발신지 추적이나 DNA 분석 등 과학 수사에 의존하다 보니 과거처럼 현장을 이잡듯 뒤지는 발품수사와 정통 사건 형사를 키우는데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들려진다. ‘플롯의 제왕’으로 불리우는 “피터 러브시(Peter Lovesey)”의 <마지막 형사(원제 The Last Detective/시공사/2011년 3월)>의 주인공 “피터 다이아몬드” 형사도 첨단 기술에 의존하는 현 수사 형태를 비웃으며 직접 발로 뛰며 수사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구시대적 형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목욕’이라는 영어 단어 “bath"의 어원이 된 곳으로 2000 년 전 로마가 만든 목욕탕 유적이 남아 있는 도시인 영국 “바스(Bath)"의 호수에서 벌거벗은 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이 사건을 배정받은 에이번 서머싯 지역 수사과장 “피터 다이아몬드” 경정은 현대의 과학수사시스템을 영 못마땅하게 여기는, 수사란 상식과 탐문 수사만 있으면 되는, 그렇게 발로 뛰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아날로그”형 형사다. 즉 경찰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학위나 받고 졸업한 신참들과 달리 발로 뛰며 잔뼈가 굵은 “진짜 수사관”인 셈이다. 피터는 여자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몽타주를 방송에 공개하고 전통적인 수사 방식인 탐문 수사를 벌인다. 결국 여자의 신원이 인기 TV 시리즈 배우인 “제럴딘 잭맨”으로 밝혀지고 피터는 남편인 “그레고리 잭맨”을 심문하지만 오히려 아내가 자신을 죽이려 했었다는 뜻밖의 증언을 듣고는 풀어주게 된다. 피터가 주목한 또 다른 용의자는 바로 잭맨이 익사 직전 구해준 아이 “매튜”의 어머니이자 잭맨의 내연녀로 의심되는 싱글맘 다나 디드릭스였다. 그러나 잭맨과의 불륜관계를 완강히 부인하는 다나도 딱히 결정적인 물증을 잡아내지 못하고 사건은 난항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다나를 찾아갔다가 그녀의 아들인 매튜를 밀쳤다는 이유로 경찰직을 사직하게 되고 사건은 다나의 차 트렁크에서 시신을 옮긴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면서 다나가 전격 구속되면서 살인사건은 일단락되어 버린다. 그런데 실직자가 된 피터에게 잭맨이 다나를 도와주길 요청해오면서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과연 다나는 제럴딘을 살해했을까? 그녀가 아니라면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결말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이 책의 사건은 줄거리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유명 TV 여배우의 죽음, 항상 용의자 1순위로 오를 수 밖에 없는 남편에 대한 심문, 용의자 2순위인 내연녀에 대한 심문이라는 참 단순한 구조이다. 어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이 구조에 작가는 부부의 과거와 현재 상황, 남편과 내연녀와의 사연, 그리고 “바스”에 잠시 살았다는 유명 작가 “제인 오스틴”의 편지 분실 사건을 덧붙어 이야기를 확대해나가는데 사건과 관련이 없는 듯 하면서도 마지막에 그 연관성이 드러나는 여러 이야기들이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 후반부에 이를 때까지도 도대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사건이 피터가 경찰서에서 쫓겨나고, 다나가 유력한 범인으로 법정 구속되면서 허무하게 결말을 맺나 싶더니 책 말미에 이르러서는 전혀 의외의 전개가 속도감 있게 펼쳐져 마지막 장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처럼 그저 사실을 시간대 순으로 나열하는 “스토리(Story)"와는 달리 용의자인 잭맨과 다나 시점에서의 증언, 전혀 별개의 사건인 것 같으면서도 결국 서사 구조의 큰 축을 이루는 여러 사건들을 배치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치밀하게 계산된 플롯이 바로 “플롯의 제왕”이라는 작가의 명성이 결코 허명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다만 독자가 범인을 추리해볼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 - 내가 꼼꼼히 읽지 않아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 도 있겠지만 - 과 마지막에 피터가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장면에서 추리 과정이 생략되어 뜬금없게 느껴진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고집불통에 안하무인에 까칠하기까지 한 구식 형사 피터 다이아몬드, 포와로처럼 천재적인 두뇌와 콜롬보의 허를 찌르는 절묘한 심문 솜씨 - 물론 베테랑 형사로서의 노련함은 엿보이지만 - 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어찌 보면 흔히 만나볼 수 있는 평범한 캐릭터인데 오히려 그런 점들이 더 현실감 있고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 주인공이다. 그런데 피터 다이아몬드의 수사 방식이 앞으로도 계속 통할 수 있을까?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가 이 책을 시작으로 총 10권에 이른다니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경찰에서 쫓겨나 백수 신세가 된 피터 다이아몬드가 다른 책에서는 어떤 활약을 펼칠지 시리즈 후속권들이 절로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피터 다이아몬드, 자주 만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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