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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권 ㅣ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경찰소설 베테랑 작가라는 “사사키 조(佐佐木讓)”의 작품은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품인 <폐허에 바라다(북홀릭/2010년 11월)>에 이어 이번에 읽은 <폭설권(원제 暴雪圈/북홀릭/2011년 3월)>이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에서 절묘한 트릭이나 반전은 없지만 형사들의 기본 수사 방식인 현장조사와 탐문 수사 과정에 대한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는 묘사가 색다른 재미를 주었던 터라 이번 작품도 역시 전작 못지 않은 재미를 줄 거라는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난 후 느낌은 내 기대가 여실히 맞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책은 북일본을 공습하는 폭풍우인 “히간아레(彼岸荒れ)”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한다. 대개 3월 히간(彼岸; 책에는 “춘분과 추분을 중심으로 7일간”이라고 주(註)가 달려 있는데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춘분과 추분의 전후 3일을 포함한 총 7일간을 말하며 날짜로는 봄에는 3월 18일경, 가을에는 9월 20일경이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성묘하러 간다고 한다) 무렵에 찾아오는 폭풍설(暴風雪)은 종종 간선도로의 교통을 완전히 단절시키기도 해서 인구 1만 전후 규모의 마을일지라도 만 하루, 혹은 그 이상을 고립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훗카이도 작은 마을 시모베츠에 3월도 끝물이 다 돼서야 최대 순간 풍속이 32미터에 이르는 10년 만의 초대형 폭설이 엄습한다. 아침 순찰을 마치고 주재소에 막 들어선 카와쿠보 아츠시 순사부장에게 지역 농가에서 일하는 남자가 다리를 지나가는 길에 시체를 발견했다고 전화를 해온다. 카와쿠보는 이 시기에 불어 닥치는 눈보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려주는 1957년 초등학교 학생 여섯 명의 조난사건을 떠올리며 점점 거세지는 바람을 뚫고 현장에 출동한다.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여성 시신의 겉옷 주머니에서 지갑을 발견하여 시신의 신원을 파악한 카와쿠보는 악천우 속에서도 탐문 수사를 진행한다. 한편 히간아레 탓이었는지 작은 마을인 시모베츠에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난다. 지역 야쿠자 조장 집에 택배 기사로 위장한 2인조 강도가 들어 조장의 애인을 권총으로 살해하고는 수천만 엔의 돈을 강탈해가고, 남편 몰래 불륜을 저지르고 후회하던 여인은 마지막으로 한번만 만나자고는 하지만 돈을 뜯어낼 목적인 불륜남을 죽이기 위해 식칼을 숨겨 가지고 가고, 말기암 환자인 한 남자는 회사 금고에 있는 2천만 엔을 훔치게 되며, 새아버지의 성폭행에 시달린 소녀는 가출해서 지나가는 트럭을 잡아타고 엄마가 입원해 있는 타 지역 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점점 거세지는 푹풍설은 저마다 사연 으로 시모베츠를 벗어나려는 이들의 발을 묶어 세워 마을 펜션으로 모이게 한다. 날씨가 어떨지 보려고 틀어놓은 TV에서 야쿠자 조장 애인 살인사건 범인의 얼굴이 공개되자 펜션에 모인 사람들은 일순 침묵에 잠긴다. TV 속 범인이 바로 펜션 안에 같이 머물게 된 남자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고립된 펜션에는 악몽이 시작된다.
역시 이 책의 장점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었나 싶을 정도로 생생한 사실성과 현실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마을이나 저택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 대표적인 작품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들 수 있다 - 은 추리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설정인데 작가는 기존 소설이나 영화처럼 기막힌 트릭이나 반전, 또는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의 공간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일어난 모든 사건이 한 곳에서 만나 갈등을 해소하게 되는 장소로서만 활용하게 된다. 어쩌면 펜션을 장소로 설정한 것 자체가 깊은 산 속 길을 헤매다가 모이게 되는 오래된 산장이나 온갖 살인 장치가 갖춰진 별장과 같은 다른 소설이나 영화 속의 비현실적인 공간보다도 더욱 현실감이 느껴지는 그런 장소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책 도입부에 발견된 여성의 살해범을 수사해가는 과정, 폭풍 속에서 계속적으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들에 대한 설정과 묘사, 어쩔 수 없이 살인범과 함께 고립된 사람들의 심리나 행동 등을 과장하지 않고 실제 일어났을 법하게 묘사하고 있어 사실감을 더욱 살리고 있다. 팽팽한 긴장감과 스릴, 멋진 트릭과 반전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는 설정과 묘사에서 오히려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아쉽다면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카와쿠보 형사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딱히 차별화된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무난한 캐릭터로만 느껴져 이 책이 굳이 시리즈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즉 책 속에 등장하는 다른 경찰들 - 야쿠자 조장 주택 강도 사건을 수사했던, 책 도입부의 여성 살해범을 밝혀낸 형사들 - 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약하게 느껴졌다. 시리즈 전작인 <제복수사>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으로서 활약을 펼친다니 카와구보 형사에 대한 판단은 <제복수사>를 읽고 나서야 가능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폐허에 바란다>의 훗카이도 경찰본부 소속 형사인 센도 다카시가 더 존재감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두 권 모두 부담감 없이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고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여주는 추리소설이라 앞으로도 사사키 조의 작품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우연찮게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장르라 할 수 있는 서양 경찰 소설을 읽게 되었다. 바로 ‘플롯의 제왕’이라는 “피터 러브시”의 <마지막 형사>인데 캐릭터는 <마지막 형사>가 더 낫지만 리얼리티와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는 <폭설권>이 더 나은 것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런 비교를 두 작가는 무척 기분 나빠할 수 도 있겠지만 책에 대한 감상과 비교는 독자만의 자유이니 양해를 해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