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흐르는 강물이나 파도치는 바다를 같이 바라 보면서도 그 감상은 제각각이다. 물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물을 “슬픔”이나 “두려움”의 존재로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휴식처로, 즐거움으로, 낭만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물은 아무런 말도 없이 흘러가고 있을 뿐인데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저마다 다르게 물을 받아들이는 셈이다. 그렇다면 물이 피할 수 없는 숙명(宿命)인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바로 몸에 물고기의 “아가미”를 타고 난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구병모의 신작 <아가미(자음과 모음/2011년 3월)>은 바로 이런 숙명을 타고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책은 택시비가 모자라 한강 다리 중간에 내린 만취한 한 젊은 여성이 다리 철창 모양의 난간에 휴대폰을 떨어 뜨려 주우려다가 실수로 강물에 빠진 이야기로 시작한다. 점점 몸이 무거워져 물에 가라앉을 무렵 수십 마리의 물고기들이 그녀 주위에 모여들고 그 가운데서 한 남자 머리가 불쑥 솟아올라 그녀를 구해 반대편 강기슭으로 데려다 놓는다. 왜 도와줄 사람들이 있는 건너편이 아닌 반대편으로 데려다 줬냐는 물음에 건너편에는 사람이 많아서 라고 답변하고 다시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그녀는 놀랍게도 귀 뒤에 호 모양의 홈이 붉게 패여 살짝 벌어지며 물이 흘러내리는 “아가미”와 달빛을 받은 그의 목이 사람의 살결이라기보다는 섬세한 그물 무늬를 가진 비늘처럼 빛나는 것을 목격한다. 여성은 그녀를 건져준 사람이 있다는데 어디 갔느냐는 구급대원의 물음에 물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수색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실은 그가 벌써 어디론가 무사히 헤엄쳐서 사라졌다고, 그 부옇고 탁한 강물이나마 자기의 고향이거나 유일한 집이어서 거기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프롤로그가 끝나면 물속으로 사라졌던, 목에 아가미와 비늘을 가지고 있었던 남자의 과거가 펼쳐진다. 11개월 채 밀린 월급 증 1개월 치라도 줄 수 없겠냐고 사정하러 간 남자가 옆에 끼고 온 아이를 어디 앵벌이에게라도 팔아버리라는 사장의 말을 듣고 그만 백자로 머리를 쳐 살해하고야 만다. 도망쳐온 남자는 이내호라는 호수에 아이와 함께 몸을 던지지만 잠결에 그 소리를 듣고 호숫가를 살피러 온 노인과 외손자 “강하”에 의해 아이는 구조되게 된다. 물에 젖은 아이의 몸을 씻기던 노인과 손자는 아이의 뒷 목에서 길게 벌어진 상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번 사고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처럼 자연스러운, 마치 물고기 아가미처럼 물을 토해내며 호흡하는 모습을 보고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아이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아이는 노인에게 거두어져 “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노인의 손자로 강하의 동생으로 키워지게 된다. 강하의 “물고기 새끼”라는 구박에도 곤은 할아버지와 강하를 의지하며 청년이 되고, 곤의 등에는 아름다운 비닐이 자리 잡게 된다. 어느날 강하를 버렸던 어머니 “이녕”이 십 수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를 거부하는 강하 대신 그녀를 보살피던 곤은 마약에 찌든 그녀를 위해 약을 모두 버리게 되는데, 사고로 그만 그녀를 죽이게 되고 강하는 강도가 들었던 걸로 위장하고 곤을 떠나 보낸다. 몇 년 후 대학생들 MT촌으로 유명한 강원도 민박집에 머물고 있던 곤에게 낯선 여인이 찾아온다. 프롤로그에서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여성 “해류”는 곤에게 곤이 떠난 후 할아버지와 강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아가미와 비늘을 가진 상상 속에서나 볼 법한 물고기 인간이 등장하는 신비롭고 기묘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판타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한 인간이 겪는 처연한 슬픈 운명의 궤적을 쫓아 보는 성장소설로 볼 수 도 있을 것이며, 곤을 스스럼없이 가족으로 받아 들여 사랑으로 키워낸 할아버지, 겉으로는 “물고기 새끼”라며 구박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이 붙여준 곤(鯤) -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나중에 물고기 허물을 벗고 붕(鵬)으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오르는 물고기 “곤(鯤)”이다 - 이라는 이름처럼 언젠가는 삶의 멍에가 되어 버린 물고기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하늘로 멋지게 비상하기를 바라는 강하, 홍수로 죽어버린 할아버지와 강하를 대신하여 자신의 유학까지 포기하고 곤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싶어 하는 “해류”에게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물은 자신에 대한 이해와 애증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즐거움으로 때로는 치열한 생계의 터전으로 여기듯이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에 대한 감상도 독자들마다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도 곤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진실하면서도 애처로운 사랑과 곤이 결국 자신의 숙명인 “물”을 힘겨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면서도 작가가 곤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은 점 - 내 이해력 부족을 탓하는 게 맞을 것이다 - 은 다소 아쉬웠다.
천천히 읽기를 권하는 추천사처럼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한 줄 한 줄 곱씹어가면서 읽으려고 했지만 신비롭고 애처로운 이야기의 흐름에 취해 금세 읽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곤은 지금도 어느 바다 속 깊은 곳을 유영(遊泳)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이 책에서처럼 홍수에 휩쓸려 버린 할아버지와 강하의 시신을 찾기 위함일 수 도 있겠지만 어쩌면 결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숙명의 굴레 때문에 해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을 잊기 위한 처연한 몸부림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곤이 애처롭기만 하다. 바다 속에서 그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차디차게 식어버린 사랑하는 이들의 주검일 테고 숙명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래저래 슬픈 결과만 예측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다"라는 강하의 바람처럼 나도 그가 어느 호수, 강, 바다에서든 살아 주길 바래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곳에서 슬픔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의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