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종의 요리책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김수진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아무리 맛보고 싶어도 절대 맛봐서는 안 되는 것이 뭐가 있을까? 마약(魔藥)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바로 사람 고기(人肉), 즉 “식인(食人)”일 것이다. 세계 각지의 풍습이나 문화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들을 보면 아직도 아프리카나 동남아 오지(奧地) 미개한 원주민들에게는 이런 식인풍습이 일부 남아있다고 하고, “사이코 패스(Psychopath) 연쇄살인범이 죽은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해놓고 먹어치웠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사례들을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을 보면 “식인”이 그저 먼 옛날 이야기나 꾸며낸 이야기로 치부해버릴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강력한 “금기(禁忌)”이다 보니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상상(想像)의 소재로는 꽤나 매력적인지 “식인”을 다룬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 영화 <한니발(리들리 스콧 감독/2001년작)>에서 주인공 “한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가 사람의 두개골을 열어 뇌를 요리해서 먹는 장면은 본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구토가 치밀어 오를 것 같은 역겹고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번에 만난 아르헨티나 작가 “카를로스 발마세다”의 <식인종의 요리책(원제 Manual Del Canibal / 비채 / 2011년 5월)>도 바로 이런 “식인”을 소재로 한 소설인지라 꽤나 망설이다 읽은 책이다. 역시나 첫 장면부터 끔찍한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이 부분만 무사히(?) 넘긴다면 그렇게 끔찍하지 않은, 오히려 독특하면서도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문제의 첫 시작은 이 책의 주인공인 “세사르 롬브르소”가 처음으로 인육 맛을 본 생후 7개월이었을 때를 이야기한다. 어머니의 젖을 빨다가 어머니의 왼쪽 젖꼭지를 잇몸으로 억세게 물어 통째로 뜯어 먹는 이 엽기적인 아기 때문에 어머니는 놀라서 심장마미로 숨지게 된다. 며칠을 어머니의 시체와 보낸 이 아이의 운명 -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일들이 그 며칠 사이에 일어난다 - 은 과연 어떻게 될까? 작가는 이처럼 충격적인 장면을 책 첫머리에 툭 던져 놓아 독자들을 놀라게 하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둥 시치미를 뚝 떼고는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레스토랑 “알마센 부에노스아이레스”, 일명 “알마센” 식당에 대한 역사를 늘어 놓는다. 19세기 말 이탈리아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쌍둥이 형제가 1911년 개업한 이 식당은 세워진 지 9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고색창연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리고 전설적인 명성을 꾸준히 이어온 유서 깊은 식당이다. 그러나 쌍둥이 중 형이 개업한지 1년 만에 페스트로 죽고 그 동생 또한 충격에 몇 주 만에 따라 죽게 되면서 쌍둥이 형제의 외삼촌 가족이 식당을 물려받게 되지만 수 차례 주인이 바뀌는 그런 상황을 겪게 된다.  이처럼 지루하기까지 한 알마센 유래가 책 중후반부까지 길게 이어지다가 드디어 “엽기”아기였던 “세사르 롬브르소”가 주방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랑스,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다양한 요리비법을 접목시켜 탄생시킨 전설의 레시피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를 해독하여 맛을 재현해낸 세사르 롬브르소는 알마센의 '스페셜 디너'에 비밀의 재료 -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 - 로 만들어진 요리를 선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번을 읽다가 멈췄다. 먼저는 앞에서도 언급한 끔찍한 책 첫 장면인데 읽고는 도저히 더 읽지 못할 것 같아 한동안 책을 덮어두었었다. 망설임 끝에 다시 펼쳐든 책, 더는 끔찍한 장면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에 읽기 시작했는데, 첫 장면 이후로는 레스토랑 “알마센”의 역사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시점도 과거와 현재를 어지럽게 오고 가서 집중을 할 수 없었으며 각종 요리들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서양 요리에 상상력이 빈곤한 탓인지 머릿 속에 요리 이미지를 그려낼 수 없어 결국 다시 덮어버렸다. 그러다가 도대체 자기 어머니를 먹어버린 첫장의 엽기 꼬마는 언제 등장하는거야 하며 처음에는 끔찍해서 싫었지만 오히려 “세사르 롬브르소”의 등장을 기다리는 이율배반적인 마음으로 지루한 대목을 건너 뛰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드디어 후반부에 등장한 우리 주인공,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끔찍한 사건으로 시선을 붙들면서 비로소 중간의 지루함은 어느새 말끔히 잊어버리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처 읽게 만든다. 정리하자면 처음 놀라움(Shocking), 중간 지루함, 후반 다시 놀라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 소개글에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19세기 초 독립을 했지만 끊임없는 혼란과 내전으로 수많은 폭력과 피로 얼룩진 아르헨티나 근 현대사를 모티브로 했다고 하는데 책이 주는 이미지 - 주로 끔찍, 잔혹, 엽기로 요약할 수 있는 - 에 너무 경도(驚倒)된 나머지 그러한 작가의 역사적 인식에 공감할 수 있을 정도까지 깊이 있는 독서를 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쉽게 입에 붙지 않는 스페인식 이름과 지명, 머릿 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요리 이미지, 낯설기만 아르헨티나 역사 등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식인”이라는 섬뜩하고 강렬한 이미지가 다 읽고 나서도 쉽게 가시지 않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서 머릿 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바로 세사르가 선보인, 인육을 주재료로 한 “스페셜 디너”가 과연 어떤 맛일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금세 무슨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결코 쉽게 가시지 않는 그런 궁금증, 앞으로도 이 책을 보면 한번씩은 떠올리게 될,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그 만큼 더 강렬해지는 “그것”의 맛에 대한 궁금증, 결코 맛볼 수 도 맛봐서는 절대 안 되는 “금단(禁斷)”의 맛, 혹 하느님이 금지하신 “선악과(善惡果)”를 결국 따먹었던 “이브(EVE)"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며 책을 책꽂이에 꼽아 두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날개, 윙스 윙스 시리즈 1
에이프릴린 파이크 지음, 김지윤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언젠가 다른 “판타지 로맨스” 소설 서평에서 밝힌 것처럼 판타지 로맨스는 솔직히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여성 취향의 “할리퀸 로맨스(Harlequeen Romance)”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조각 같은 외모,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는 현대판 “왕자”가 “뱀파이어”로 대체된 것 말고는 그다지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트와일라잇(Twilight)>도 영 재미가 없어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에이프릴린 파이크”의 <잃어버린 날개, 윙스(원제 WINGS/북폴리오/2011년 5월)>도 처음 책을 받아들고는 “판타지 로맨스”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바로 읽지 못하고 책꽂이에 꼽아두었었다. 지루하기만 했던 책을 끝내고 가벼운 책을 읽자 하는 마음에 다시 꺼내든 이 책, 읽는 내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던, 지루했던 전의 책을 잊게 만드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인구 오백명의 작은 마을 “오릭”에서 아빠가 서점을 내면서 큰 도시 “크레센트”시로 이사 오게 된 열다섯 살 소녀 “로렐”은 10년간의 “홈스쿨링(집에서 부모에게 교과과정을 배우는 것)”을 청산하고 지역 학교에 다니게 되고, 그런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같은 반 남자애인 “데이빗”이 말을 걸어오면서 둘은 금세 친해지게 된다. 로렐, 비건(Vegan, 달걀과 유제품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으로 과일과 채소, 물과 소다수만 먹고 샴푸를 쓰지 않고 물로만 머리를 감아도 전혀 거칠지가 않고 오히려 윤기가 흐르며, 15세가 되었는데도 아직 첫 생리를 시작하지 않고 여드름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조금 유별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런대로 여느 평범한 소녀들과 다름없이 학교와 집을 오가며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날, 로렐의 등에 작은 혹이 난다. 처음에는 여드름이겠거니 했던 혹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마치 날개처럼 꽃잎이 돋아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 아마추어 과학도인 친구 데이빗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식물의 꽃잎으로 밝혀지는데 사람의 몸에서 꽃이 돋아난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한다. 로렐은 부모님과 함께 어릴 적 자신이 살았던 집에 갔다가 숲에서 “타마니”라는 남자와 마주치게 되는데, 그는 로렐이 사람이 아니라 식물에서 진화한 “요정”이며 숲을 팔려고 하는 부모님을 말려달라고 부탁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에게 땅을 팔지 말라고 간청해보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위독해져 병원에 입원한 아빠 때문에 돈이 급히 필요한 엄마는 결국 병원까지 찾아온 부동산 중개인 “반스”에게 땅을 팔기로 결정한다. 반스라는 남자가 수상쩍어 뒤를 밟은 로렐과 데이빗은 그만 그 남자 일행에게 붙잡혀 강물에 돌을 매달고 수장(水葬)되는 처지에 처하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둘은 “타마니”를 찾아간다. 타마니에게 그 남자의 정체가 요정들과 적대관계인 “트롤”임을, 그리고 이 숲이 요정의 왕국 “아발론” - 아더왕의 전설에도 나오는 그 곳이다 -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 때문에 땅을 사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타마니”와 함께 그들을 막아서려 도시로 돌아온다. 과연 로렐은 그들을 막아내고 아빠를 구할 수 있을까? 결론은 스포일러라 생략한다^^ 

총 4부작으로 이루어진 “윙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이 책은 위에서 소개한 줄거리처럼 로렐이 “요정(妖精)”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과 요정의 왕국을 위협하는 “트롤” 무리들과의 첫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신비로운 존재를 주로 “남성”으로 설정하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소녀”를 그런 존재로 설정했다는 점과 식물이 진화한 “요정”이라는 설정이 참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데, 심장이 없어 당연히 심장박동이 들리지 않고,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면 바로 탈이 나버리며, 빨간 피 대신 나무 수액 같은 액체가 몸에 흐르고, 사람과는 거꾸로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내뱉는다는 설정이 꽤나 흥미롭다. 과연 그렇다면 이 요정들은 어떻게 종족번식을 할까? 인간처럼 섹스를 하긴 하지만 이건 종족번식과는 관계없는 단순히 “즐기기”이고 여타의 식물처럼 꽃가루로 열매를 맺는 수분(受粉) 번식 - 물론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들이 꽃가루를 옮기는 것이 아니고 직접 꽃가루를 뿌린단다 - 을 한다는 설정 또한 참 색다르다. 아직은 시리즈 도입부라 갈등관계가 본격화되지 않아 밋밋한 정도에 불과하지만 향후 요정들과 트롤의 숙명적인 대결이 본격화되면 좀 더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전개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그리고 아직은 어린 나이인 “데이빗”과 “로렐”이 나누는 풋풋한 사랑과 운명적인 존재와 “타나미”와의 사랑, 이 삼각관계가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을지도 또한 궁금해지며, 최근 판타지 로맨스 소설 영화화 붐에 발 맞춰 헐리우드에서 영화화한다는 소식도 들리는 데 로렐의 등을 덮고 있는 꽃을 얼마나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낼지 영화가 절로 기다려진다.  

이 책 한 권으로 “판타지 로맨스”에 대한 선입견을 올곧이 날려버렸다고는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한 장르 소설이란 것을 알게 된 점이 큰 수확이라 할 것이다. 우선 계속 출간된 이 “윙스” 시리즈부터 챙겨 읽어보고 탄력이 붙는다면 읽다가 포기한 <트와일라잇>이나 다른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다만 “로맨스”만 강조한 소설들에게는 앞으로도 손이 선뜻 가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시대 1 - 봄.여름
로버트 매캐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검은숲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를 돌이켜 보면 아이들이 잘 믿는 것들을 잘 믿지 않았던 “애어른”이었다. 시기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바로 “부모님”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우리 때 한참 인기를 끌었던 외화 <타잔>을 시청하고 아이들과 타잔 놀이를 하다가도 지금도 아프리카에 타잔이 살고 있다는 말에 저건 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얘기했다가 발끈(?)한 애들과 주먹질하며 싸워 코피를 흘리기도 했고,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며 동물들에게 말을 걸고 그걸 번역(?)하는 애들 행동에 코웃음 쳤으며, 학교에 있는 유관순 누나 동상이 밤만 되면 걸어 다니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우기는 애들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무시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딱히 합리적 또는 과학적 사고 - 그 당시에는 이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을 테지만 - 을 타고 난 것은 아니었을 텐 데 그렇게 냉소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다른 아이들보다 조숙(早熟) - 또는 영악(靈惡)했었을 지도 모를 - 해서 그렇겠거니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로버트 매커먼”의 <소년시대 1,2(원제 Boy's Life / 검은숲 / 2011년 5월)>을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걸렸을 “마법(魔法)”이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사라져 버렸고, 나도 마법에 걸렸었던 적이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1964년 봄 미국 작은 도시 “제퍼”, 이제 열 두 살이 된 코리 메켄슨에게 “제퍼”는 강물 속에는 괴물이 헤엄치고, 달빛 속을 거니는 유령들과 백여섯 살이나 된 흑인 여왕, OK 목장에서 전설적인 총잡이 “와이어트 어프”의 목숨을 구해준 이도 있는, 한마디로 “마법의 왕국”과 같은 곳이다. 그 곳에서 순수하고 정직하신 부모님의 보살핌과 따뜻한 이웃들, 그리고 친구들과 만나고 어울리며 무럭무럭 커나가는 코리는 어느 날 아침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고 만다. 아빠의 우유 배달을 돕던 코리는 갑작스레 튀어나와 호수로 추락하는 자동차를 목격하게 되고, 사람을 구하러 들어간 아빠는 차 속에서 두 손이 수갑으로 핸들에 묶여 발가벗져진 채로 얼굴이 망가져 있는 끔찍한 시신(屍身)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아 밤마다 악몽까지 꾸며 갈수록 야위어간다. 결국 사망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고, 코리의 12살 봄과 여름은 <화성의 침략자들>이란 영화를 보고는 밤에 떨어지는 혜성을 보며 실제로 화성의 침략자들이 지구로 쳐들어오지 않았을까 괜한 걱정을 하고, 부활절 날 강에 사는 괴물 “올드 모세”에게 바치는 제사와 예배 중 나타난 말벌 소동, 동네 악동들과의 싸움, 여름방학캠프 등을 겪게 된다. 가을에 접어들자 코리에게 더욱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글짓기 대회에서 생애 처음으로 상을 받기도 하지만 기르던 애완견의 사고와 친한 친구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실직 등 힘들고 슬픈 일들을 하나하나 겪어나간다. 그리고 미궁 속으로 빠져 버렸던 호수 살인사건 시신의 정체와 사건의 유일한 증거물이었던 시신 주변의 초록 깃털의 정체가 마침내 드러나면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그렇게 성년의례와 같은 통과의식을 거치면서 코리의 12살 1년이 지나버리고, 훗날 어른이 되어 그 당시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코리는 “마법”이 자신을 올곧이 지배했던 12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1,2권 합쳐 9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분량 임에도 작가가 선보이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마법에 꼼짝없이 걸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단숨에 읽어내고야 말았다. 미국 작은 도시에 사는 소년 코리가 12살의 “봄, 여름(1권)”, “가을, 겨울(2권)” 4계절을 보내며 겪은 일들을 들려주는 이 책은 성장소설의 전형(典刑)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즉 소년기를 거쳐 성인의 세계로 입문하는 과정과 정신적 성장,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각성 과정을 형상화한 소설로서 대체로 지적ㆍ도덕적ㆍ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에 있는 어린 아이, 혹은 소년의 갈등이 중심을 이루며, 그가 자아의 미숙함을 딛고 일어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치와 세계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을 끝을 맺는 형식(네이버 지식 in 발췌)이라는 성장소설 법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형식에 판타지, 모험, 추리 소설적 요소들을 적절하게 결합하여 성장소설로서의 감동 뿐만 아니라 장르소설로서의 재미 또한 한껏 살려 마지막 페이지까지 지루함 없이 단숨에 읽게 만든다. 처음 출판사 홍보글에서 출간 당시 출간 당시 환상문학계의 최고상이라 할 수 있는 “브램 스토커상”과 “월드 판타지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일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에서 선정한 ‘20년 동안의 서양 미스터리 10선’에 올랐다는 문구를 읽고는 분명 성장소설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판타지, 미스터리 장르에서 수상을 할 수 있을까 의아해했었는데 다 읽고 나니 모든 장르적 요소가 전혀 이질감없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또는 독자들의 감흥에 따라 성장소설로도 판타지, 모험, 추리소설로도 달리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는 사실에 절로 공감하게 되었다. 

작가는 12살 소년 코리로 대변되는 우리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다 마법에 지배되었던 경험이 있었으며 그 마법 때문에 우리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아련함과 함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작가는 그 마법이 멀리 떠나고 나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으며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아주 잠깐 스칠 수는 있어 어느 순간 깨닫거나 어느 순간 기억나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까닭은 그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마법의 금빛 연못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주 잠깐이기 때문에 눈물이 나왔다가도 이내 이성과 논리라는 뜨거운 햇볕에 말라버리고, 왜인지는 모른 채 가슴에 알싸한 아픔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마법은 어느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이 들면서, 즉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본질에서 멀어지는, 삶 자체부터가 우리에게서 마법의 추억을 빼앗아 가려고 갖은 애를 쓴다고 말한다. 그렇게 빼앗기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드는데 정확히 뭘 잃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는 때가, 마치 예쁜 여자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 여자가 당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상황이 오며, 그냥 어쩌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작가는 아이들은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정말로 어른이 되면 다시 아이가 되고 싶어하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어른처럼 보이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건 가면이야. 그냥 시간의 흙이 덧씌워진 것뿐이야. 그 사람들도 아직 마음 깊은 데서는 아직 어린아이란다. 뛰고 구르고 놀고 싶어 하지만, 덮어쓴 흙이 너무 무거워서 그러지 못하는 거야. 세상이 몸에 감아놓은 모든 사슬을 떨쳐버리고 싶어 하지. 시계며 목걸이며 구두를 벗어던지고, 단 하루라도 벌거벗은 채 강물에서 멱 감고 놀아봤으면 하지. 마음 편하게 있고 싶어 해. 집에 가면 이것저것 다 챙겨주시고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사랑해주는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 세상에서 가장 못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얼굴 뒤에는 겁에 질린 작은 아이가 있게 마련이란다. 다치지 않으려고 한없이 구석에 틀어박히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아이의 눈에는 크고 강하게만 보이는 어른들이지만 그 이면에는 갈수록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 때문에 갈수록 어깨가 쳐져가고 발걸음조차 내딛기 버거우며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마치 겁에 질린 작은 아이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결코 감추려만 들지 말고 오히려 똑바로 바라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온 세상이 신비롭고 아름답기만 보이던 어린 시절의 마법을 떠올려보라고, 선생님이고 친구고 엄격한 스승인 소중한 비밀의 문인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일깨워주라고 이야기하는 지도 모르겠다.  

가슴 따뜻해지는 감동과 장르적 재미를 함께 맛볼 수 있었던, 오랜만에 내 어린 시절을 다시금 떠올려 보게 만드는 멋진 책을 만났다. 책을 읽고 나니 “영악”한 줄만 알았던 내 어린 시절에도 겉으로야 안 믿는 척 하면서도 아이들의 말에 홀려 “모험”에 따라 나섰던 기억이, 즉 절대 나에게는 없었을 것 같았던 마법의 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에게는 “보물”같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아오지 않는 다리
배상열 지음 / 황금책방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실제 역사가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정 하에 그 뒤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소설인 “대체역사소설(代替歷史小說)”은 개인적으로 “추리”, “판타지”들과  함께 꽤나 즐겨 읽는 장르 소설이다. 외국에서는 SF 소설의 하위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멀리로는 고전 소설인 <박씨전(朴氏傳)>과 <임진록(壬辰錄)>에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복거일”의 <비명(碑銘)을 찾아서(1987)>가 시초라고 한다. 장르 소설로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PC통신, 인터넷 소설이 붐을 이룬 2000년 대 이후라고 할 수 있는데, 대체역사소설 초기 걸작으로 꼽히는 “윤민혁”의 <한제국건국사(2000)>가 인기를 끌면서 그 이후로 많은 소설들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야기 전개는 대체적으로 역사 속의 어느 사건이 실제와는 다른 결말을 낳게 되면서 역사가 바뀌는 형식(->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역사가 바뀐다는 <비명을 찾아서>가 대표적인 예다)과 미래의 인물이나 군대가 과거로 넘어가 역사를 바꾼다는 “타임 슬립”, 두 가지가 주를 이룬다(이상 위키디피아 백과사전에서 발췌). 한 때 도서대여점의 서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던 대체역사소설이 지금은 시들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대체역사소설의 재미는 아쉽기만 한 과거 역사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바꾼다는 가정(假定)이 결코 허황되지만은 않은, 실현 가능할 법한 “개연성(蓋然性)”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앞서 언급한 <한제국건국사> 등 인정받는 몇 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극단적인 국수주의나 제국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으며 세계 정복, 심지어 우주 정복과 같은 허황된 먼치킨(Munchkin) - 판타지 소설과 만화, 게임 등에서 터무니없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나 그러한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 - 류가 많아 몇 편 만 보면 비슷비슷한 설정과 내용들이 대부분인지라 결국 지지를 받지 못하고 지금은 소수 마니아 대상 장르소설로 그 명맥을 겨우 잇고 있는 실정이다. 대체역사소설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지금부터 소개할 배상열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황금책방/2011년 5월)>도 인터넷 서점에서는 “일반 소설(한국장편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과거로 시간 이동한 군대가 역사를 바꿔 나간다는 설정이 바로 전형적인 “대체역사소설” 방식이기 때문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당선된 정권이 나라를 제대로 말아 먹어 버리고, 대선 직전 야당 후보의 비리가 터지면서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고 여당에서 다시 대통령을 배출해낸 불과 몇 년 후의 미래, 대한민국은 대내적으로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공권력을 이미 상실해 조직폭력배, 극우, 극좌 무력 집단이 백주 대낮에 활개를 펼치는, 위아래 할 것 없이 썩은 내가 진동하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고, 대외적으로는 2011년 관서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국가적 재앙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오히려 더 국력이 상승한 일본이 다시 한번 한반도 진출을 모색하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 북한의 무력 충돌을 유도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진다. 전국을 일통(一統)한 조직 폭력배 두목이자 극우단체 “단심회(丹心會)”를 이끌고 있는 “박정도”는 철거민,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사회 불의에 맞서 정의로운 주먹을 휘두르는 “협객(俠客)”으로 대중적인 큰 인기를 얻으면서 주위 동료들과 대중들에게 “대선(大選)”에 출마하라는 강력한 권유를 받지만 자신은 깡패에 불과하다며 거부한다. 그러던 중 선배이자 극좌 무력 집단의 행동 대장이었던 “빅토르”가 죽으면서 박정도에게 꼭 대통령이 되어 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박정도는 천재 과학자 - 책에서는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잘 알려진 ‘이휘소’박사에 못지 않은 그런 천재로 설정하고 있다 - 이자 단심회 고문인 “시리우스”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게 된다. 광주 거리 유세 중 그를 제거하려는 정치인의 사주를 받은 지역 깡패 조직들의 대대적인 습격을 받지만 조직원들과 경호원들, 그리고 광주 시민들의 도움에 힘입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수 백 여명이 죽고 다치는 대형 유혈 참사를 빚게 된다. 결국 이 사건으로 현직 대통령이 하야(下野)하게 되고, 박정도는 국민들의 추대에 힘입어 대통령직에 오르게 된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공직자들은 재산을 전원 몰수하고 노동형에 처하는 가 하면, 군필자(軍必者)가 아니면 사실상 경제활동을 못하게 하고, 세금을 내지 않는 대형 교회들에게 세금을 강제 징수케 하는 등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써서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는 박정도에게 카이스트 총장으로 재임하며 비밀 연구에 매진하던 시리우스가 찾아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인 즉슨 “활성에너지”라는 정체불명의 에너지가 존재하는데, 이 에너지가 활성화되면 초대형급 지진과 화산폭발, 쓰나미와 같은 대재앙을 불러오며 독도 아래 매장되어 있는 활성에너지가 100 m 가 넘는 쓰나미를 일으키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이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시공간에 일시적인 균열이 생겨 “타임슬립”-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일어나는 비행기, 선박 실종이 바로 이 활성에너지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 이 가능해져 이 기회에 시간이동으로 역사를 바꾸자는 시리우스의 제안에 고민하던 박정도는 마침내 이지스함인 “이순신함”과 “독도함”에 각종 무기와 군인, 과학자들을 실어 과거로 보내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 작전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디데이, 해상 훈련을 가장하여 독도 인근에 작전 군함들을 보내지만 작전을 알아차린 미국이 작전중단과 시리우스의 사살을 요구하지만 박정도는 작전을 강행하라고 지시하고 “돌아오지 않은 다리” 프로젝트 팀은 마침내 열린 시공간의 틈을 통해 1905년 러일 해전 시점으로 시간이동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공상 소설의 하위 장르인 대체역사소설이라지만 허황된 설정과 현실성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결국 헛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타임 슬립이야 어차피 대체역사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라 눈감아 줄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을 쇄신하기 위한 박정도의 개혁 정책들은 악(惡)의 뿌리가 너무 깊어 극단적인 처방이 아니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해도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영 공감하기 힘든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이런 논리성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면면들을 그저 소설적 허구로 눈감아 줄 수 만 있다면 이야기 자체로는 꽤나 흥미진진하고 통쾌 - 지금 정권에 대한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비난이 자주 등장하는 데 그 대목들이 꽤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든다 - 하기까지 하다. 즉 읽는 독자들의 취향에 따라 어이없어 읽다가 책을 집어던질 수 도, 마지막 장까지 눈을 때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다고 느낄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의도한 바일 테인, 즉 우리나라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울분이나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워졌다느니 하는 감상은 전혀 느껴볼 수 없었지만 작품성을 떠나 시간 보내기(Killing Time)용으로는 제격인, 머리 비우고 눈에 힘 뺀 후 편안한 자세로 누워 읽어볼 만한 재미있는 책으로 평가 하고 싶다. 대체역사소설의 전형인 “역사 바꾸기”는 아무래도 2 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은데, 1권이야 현실 이야기를 소재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억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면 과연 2권에서는 어떻게 역사를 바꿔나갈지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타이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문타이거
페넬로피 라이블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1987년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이라는 “부커상(Booker Prize)" 수상 작품인 “페닐로피 라이블리”의 <문 타이거(원제 Moon Tiger/솔출판사/2011년 4월)>을 받아 들고서 먼저 제목인 “문타이거(Moon Tiger)”가 우리가 여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동그랗게 나사모양으로 말린 모기향을 일컫는다고 하길래 인터넷 사전(辭典)부터 검색해봤다. 그런데 “모기향”의 영어식 표현은 “mosquito repellent incense(네이버 사전)”으로 나올 뿐 “Moon Tiger"는 검색되지 않았다. 영국식 속어(俗語)인지 아니면 작가가 만들어낸 신조어(新造語)인지 모르겠지만 “모기향”을 “달 호랑이” - 전혀 매칭은 되지 않지만 - 라고 표현하다니 꽤나 운치있구나 하는 생각하며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낭만이나 운치가 아니라 종잡을 수 없는 시점변화와 두서없는 이야기 전개로 마치 모기향의 동그란 나사모양을 오래 쳐다보면 마치 회전하는 것처럼 보여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

런던 병원에서 임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대중 역사서 작가 “클라우디아 햄프턴”은 자신의 전공인 세계의 역사를 자신의 삶과 맥락 속에서 써내려가기로 마음먹는다. 선형(線形)의 역사, 즉 연대기적인 서술을 싫어하고 유리관이 흔들어 뭐가 나오나 들여다보는 만화경 같은 시각에 흥미를 갖고 있었던 그녀는 우선 한 살 터울의 친오빠이자 천재 경제학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고든 햄프턴”과의 열한 살 때의 유년 시절과 함께 “역사에서 은퇴하신” 어머니, “역사가 비교적 사적인 방식으로 죽인”- 전쟁터에서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이렇게 하고 있다 -아버지 이야기를 독백으로 들려준다. 그리고 시간을 더듬어 올라가며 자신의 첫 남편인 “제스퍼”와의 결혼 생활, 자신의 딸 “리사”, 오빠의 아내 “리사”, 종군 기자로 활약하던 2차 대전 당시 이집트 모래사막에 만나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었던 “톰 고든”과의 추억들을 털어놓는다.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의 격변기를 자신과 주변인물과의 에피소드로 재구성하는, 철저히 개인적인 시각과 경험으로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 책에서 제목인 여기서 “문 타이거”는 점점 타들어가 그 중심에 이르러서는 하얀 재만 남기고 꺼져 버리는 모기향처럼 이미 예비된 삶의 끝(죽음)을 향해 서서히 사그러져가는 클라우디아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클라우디아 햄프턴”이라는 여인이 자신의 삶과 가족, 그리고 자신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의 이야기, 즉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서 자신의 살아왔던 시대사를 구현해낸 이 책은 일종의 “회고록(回顧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인 이 여인은 결국 자신의 마지막 작품마저도 자신의 고집대로 쓴 셈이다. 그런데 이 책, 참 난감한 책이다. 우선 종잡을 수 없는 시점 전환을 들 수 있겠다. 클라우디아가 독백(獨白)형식으로 이야기 하다가 갑작스레 에피소드 속의 타인의 시점으로 전환하는가 하면,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다가 다시 독백으로 전환되는 등 도대체 화자(話者)가 누구인지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아 앞 페이지를 다시 읽어보게 만든다. 뒤에 실려 있는 옮긴이 후기에서 이런 시점 변화를 “이 소설을 매력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어디까지가 클라우디아의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이지만 이런 의문에 답을 구하지 말고 “운명이라는 다른 이름을 지닌 역사 속에서 본의 아니게 사람과, 사람과, 또 사람이 얽히고야 마는 그 관계, 그 관계 속에서 불가피하게 쌓이는 정, 애착, 아니 그 깊고 깊은 쓸쓸함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하는데, 중반 이후 이런 시점 변화에 다소 익숙해지면서 나름 신선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혼란스럽기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클라우디아의 생각의 흐름에 따라 시간을 무시하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이야기들이 “연대기”를 싫어하는, 만화경에서 튀어나오는 파편과 같은 의외성의 재미를 느껴볼 수 있겠지만 명확한 서사(敍事) 구조를 선호 - 개인적으로 사건의 전말(顚末)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 순으로 구성되는 이야기와 과거 회상 장면은 명확하게 구분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는 나에게는 “시점 변화” 만큼이나 영 익숙하지 않았다. 이렇게 혼란스럽다 보니 이야기에 쉽게 몰입이 되지 않고 공감하기도 어려운, 결국 텍스트만 읽어내는 수준 정도로 책 읽기를 끝낼 수 밖에 없었다. 

자유로운 시점 변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라는 미시적 관점에서 거시적인 세계사를 이끌어내는 독특한 이야기 방식 등 분명 흥미롭고 색다른 구석이 있고, 세계 3대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감동적이다”,“최고다”라는 언론의 수많은 찬사를 받은, “문학성”이 검증된 소설임에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혼란스럽기만 느낀 것은 책 자체가 아니라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 이런 책을 충분히 이해해내지 못한 나의 “과문(寡聞)”함을 탓해야 할 것이다. 서둘러 읽고 책꽂이에 모셔둔 이 책, 다시 읽을 수 있을 지 장담을 할 수는 없겠지만 다음에 읽을 때는 좀 더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