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대 1 - 봄.여름
로버트 매캐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검은숲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를 돌이켜 보면 아이들이 잘 믿는 것들을 잘 믿지 않았던 “애어른”이었다. 시기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바로 “부모님”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우리 때 한참 인기를 끌었던 외화 <타잔>을 시청하고 아이들과 타잔 놀이를 하다가도 지금도 아프리카에 타잔이 살고 있다는 말에 저건 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얘기했다가 발끈(?)한 애들과 주먹질하며 싸워 코피를 흘리기도 했고,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며 동물들에게 말을 걸고 그걸 번역(?)하는 애들 행동에 코웃음 쳤으며, 학교에 있는 유관순 누나 동상이 밤만 되면 걸어 다니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우기는 애들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무시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딱히 합리적 또는 과학적 사고 - 그 당시에는 이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을 테지만 - 을 타고 난 것은 아니었을 텐 데 그렇게 냉소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다른 아이들보다 조숙(早熟) - 또는 영악(靈惡)했었을 지도 모를 - 해서 그렇겠거니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로버트 매커먼”의 <소년시대 1,2(원제 Boy's Life / 검은숲 / 2011년 5월)>을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걸렸을 “마법(魔法)”이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사라져 버렸고, 나도 마법에 걸렸었던 적이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1964년 봄 미국 작은 도시 “제퍼”, 이제 열 두 살이 된 코리 메켄슨에게 “제퍼”는 강물 속에는 괴물이 헤엄치고, 달빛 속을 거니는 유령들과 백여섯 살이나 된 흑인 여왕, OK 목장에서 전설적인 총잡이 “와이어트 어프”의 목숨을 구해준 이도 있는, 한마디로 “마법의 왕국”과 같은 곳이다. 그 곳에서 순수하고 정직하신 부모님의 보살핌과 따뜻한 이웃들, 그리고 친구들과 만나고 어울리며 무럭무럭 커나가는 코리는 어느 날 아침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고 만다. 아빠의 우유 배달을 돕던 코리는 갑작스레 튀어나와 호수로 추락하는 자동차를 목격하게 되고, 사람을 구하러 들어간 아빠는 차 속에서 두 손이 수갑으로 핸들에 묶여 발가벗져진 채로 얼굴이 망가져 있는 끔찍한 시신(屍身)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아 밤마다 악몽까지 꾸며 갈수록 야위어간다. 결국 사망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고, 코리의 12살 봄과 여름은 <화성의 침략자들>이란 영화를 보고는 밤에 떨어지는 혜성을 보며 실제로 화성의 침략자들이 지구로 쳐들어오지 않았을까 괜한 걱정을 하고, 부활절 날 강에 사는 괴물 “올드 모세”에게 바치는 제사와 예배 중 나타난 말벌 소동, 동네 악동들과의 싸움, 여름방학캠프 등을 겪게 된다. 가을에 접어들자 코리에게 더욱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글짓기 대회에서 생애 처음으로 상을 받기도 하지만 기르던 애완견의 사고와 친한 친구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실직 등 힘들고 슬픈 일들을 하나하나 겪어나간다. 그리고 미궁 속으로 빠져 버렸던 호수 살인사건 시신의 정체와 사건의 유일한 증거물이었던 시신 주변의 초록 깃털의 정체가 마침내 드러나면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그렇게 성년의례와 같은 통과의식을 거치면서 코리의 12살 1년이 지나버리고, 훗날 어른이 되어 그 당시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코리는 “마법”이 자신을 올곧이 지배했던 12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1,2권 합쳐 9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분량 임에도 작가가 선보이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마법에 꼼짝없이 걸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단숨에 읽어내고야 말았다. 미국 작은 도시에 사는 소년 코리가 12살의 “봄, 여름(1권)”, “가을, 겨울(2권)” 4계절을 보내며 겪은 일들을 들려주는 이 책은 성장소설의 전형(典刑)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즉 소년기를 거쳐 성인의 세계로 입문하는 과정과 정신적 성장,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각성 과정을 형상화한 소설로서 대체로 지적ㆍ도덕적ㆍ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에 있는 어린 아이, 혹은 소년의 갈등이 중심을 이루며, 그가 자아의 미숙함을 딛고 일어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치와 세계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을 끝을 맺는 형식(네이버 지식 in 발췌)이라는 성장소설 법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형식에 판타지, 모험, 추리 소설적 요소들을 적절하게 결합하여 성장소설로서의 감동 뿐만 아니라 장르소설로서의 재미 또한 한껏 살려 마지막 페이지까지 지루함 없이 단숨에 읽게 만든다. 처음 출판사 홍보글에서 출간 당시 출간 당시 환상문학계의 최고상이라 할 수 있는 “브램 스토커상”과 “월드 판타지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일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에서 선정한 ‘20년 동안의 서양 미스터리 10선’에 올랐다는 문구를 읽고는 분명 성장소설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판타지, 미스터리 장르에서 수상을 할 수 있을까 의아해했었는데 다 읽고 나니 모든 장르적 요소가 전혀 이질감없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또는 독자들의 감흥에 따라 성장소설로도 판타지, 모험, 추리소설로도 달리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는 사실에 절로 공감하게 되었다. 

작가는 12살 소년 코리로 대변되는 우리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다 마법에 지배되었던 경험이 있었으며 그 마법 때문에 우리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아련함과 함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작가는 그 마법이 멀리 떠나고 나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으며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아주 잠깐 스칠 수는 있어 어느 순간 깨닫거나 어느 순간 기억나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까닭은 그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마법의 금빛 연못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주 잠깐이기 때문에 눈물이 나왔다가도 이내 이성과 논리라는 뜨거운 햇볕에 말라버리고, 왜인지는 모른 채 가슴에 알싸한 아픔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마법은 어느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이 들면서, 즉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본질에서 멀어지는, 삶 자체부터가 우리에게서 마법의 추억을 빼앗아 가려고 갖은 애를 쓴다고 말한다. 그렇게 빼앗기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드는데 정확히 뭘 잃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는 때가, 마치 예쁜 여자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 여자가 당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상황이 오며, 그냥 어쩌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작가는 아이들은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정말로 어른이 되면 다시 아이가 되고 싶어하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어른처럼 보이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건 가면이야. 그냥 시간의 흙이 덧씌워진 것뿐이야. 그 사람들도 아직 마음 깊은 데서는 아직 어린아이란다. 뛰고 구르고 놀고 싶어 하지만, 덮어쓴 흙이 너무 무거워서 그러지 못하는 거야. 세상이 몸에 감아놓은 모든 사슬을 떨쳐버리고 싶어 하지. 시계며 목걸이며 구두를 벗어던지고, 단 하루라도 벌거벗은 채 강물에서 멱 감고 놀아봤으면 하지. 마음 편하게 있고 싶어 해. 집에 가면 이것저것 다 챙겨주시고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사랑해주는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 세상에서 가장 못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얼굴 뒤에는 겁에 질린 작은 아이가 있게 마련이란다. 다치지 않으려고 한없이 구석에 틀어박히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아이의 눈에는 크고 강하게만 보이는 어른들이지만 그 이면에는 갈수록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 때문에 갈수록 어깨가 쳐져가고 발걸음조차 내딛기 버거우며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마치 겁에 질린 작은 아이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결코 감추려만 들지 말고 오히려 똑바로 바라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온 세상이 신비롭고 아름답기만 보이던 어린 시절의 마법을 떠올려보라고, 선생님이고 친구고 엄격한 스승인 소중한 비밀의 문인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일깨워주라고 이야기하는 지도 모르겠다.  

가슴 따뜻해지는 감동과 장르적 재미를 함께 맛볼 수 있었던, 오랜만에 내 어린 시절을 다시금 떠올려 보게 만드는 멋진 책을 만났다. 책을 읽고 나니 “영악”한 줄만 알았던 내 어린 시절에도 겉으로야 안 믿는 척 하면서도 아이들의 말에 홀려 “모험”에 따라 나섰던 기억이, 즉 절대 나에게는 없었을 것 같았던 마법의 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에게는 “보물”같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