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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다리
배상열 지음 / 황금책방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실제 역사가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정 하에 그 뒤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소설인 “대체역사소설(代替歷史小說)”은 개인적으로 “추리”, “판타지”들과 함께 꽤나 즐겨 읽는 장르 소설이다. 외국에서는 SF 소설의 하위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멀리로는 고전 소설인 <박씨전(朴氏傳)>과 <임진록(壬辰錄)>에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복거일”의 <비명(碑銘)을 찾아서(1987)>가 시초라고 한다. 장르 소설로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PC통신, 인터넷 소설이 붐을 이룬 2000년 대 이후라고 할 수 있는데, 대체역사소설 초기 걸작으로 꼽히는 “윤민혁”의 <한제국건국사(2000)>가 인기를 끌면서 그 이후로 많은 소설들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야기 전개는 대체적으로 역사 속의 어느 사건이 실제와는 다른 결말을 낳게 되면서 역사가 바뀌는 형식(->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역사가 바뀐다는 <비명을 찾아서>가 대표적인 예다)과 미래의 인물이나 군대가 과거로 넘어가 역사를 바꾼다는 “타임 슬립”, 두 가지가 주를 이룬다(이상 위키디피아 백과사전에서 발췌). 한 때 도서대여점의 서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던 대체역사소설이 지금은 시들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대체역사소설의 재미는 아쉽기만 한 과거 역사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바꾼다는 가정(假定)이 결코 허황되지만은 않은, 실현 가능할 법한 “개연성(蓋然性)”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앞서 언급한 <한제국건국사> 등 인정받는 몇 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극단적인 국수주의나 제국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으며 세계 정복, 심지어 우주 정복과 같은 허황된 먼치킨(Munchkin) - 판타지 소설과 만화, 게임 등에서 터무니없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나 그러한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 - 류가 많아 몇 편 만 보면 비슷비슷한 설정과 내용들이 대부분인지라 결국 지지를 받지 못하고 지금은 소수 마니아 대상 장르소설로 그 명맥을 겨우 잇고 있는 실정이다. 대체역사소설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지금부터 소개할 배상열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황금책방/2011년 5월)>도 인터넷 서점에서는 “일반 소설(한국장편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과거로 시간 이동한 군대가 역사를 바꿔 나간다는 설정이 바로 전형적인 “대체역사소설” 방식이기 때문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당선된 정권이 나라를 제대로 말아 먹어 버리고, 대선 직전 야당 후보의 비리가 터지면서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고 여당에서 다시 대통령을 배출해낸 불과 몇 년 후의 미래, 대한민국은 대내적으로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공권력을 이미 상실해 조직폭력배, 극우, 극좌 무력 집단이 백주 대낮에 활개를 펼치는, 위아래 할 것 없이 썩은 내가 진동하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고, 대외적으로는 2011년 관서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국가적 재앙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오히려 더 국력이 상승한 일본이 다시 한번 한반도 진출을 모색하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 북한의 무력 충돌을 유도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진다. 전국을 일통(一統)한 조직 폭력배 두목이자 극우단체 “단심회(丹心會)”를 이끌고 있는 “박정도”는 철거민,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사회 불의에 맞서 정의로운 주먹을 휘두르는 “협객(俠客)”으로 대중적인 큰 인기를 얻으면서 주위 동료들과 대중들에게 “대선(大選)”에 출마하라는 강력한 권유를 받지만 자신은 깡패에 불과하다며 거부한다. 그러던 중 선배이자 극좌 무력 집단의 행동 대장이었던 “빅토르”가 죽으면서 박정도에게 꼭 대통령이 되어 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박정도는 천재 과학자 - 책에서는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잘 알려진 ‘이휘소’박사에 못지 않은 그런 천재로 설정하고 있다 - 이자 단심회 고문인 “시리우스”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게 된다. 광주 거리 유세 중 그를 제거하려는 정치인의 사주를 받은 지역 깡패 조직들의 대대적인 습격을 받지만 조직원들과 경호원들, 그리고 광주 시민들의 도움에 힘입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수 백 여명이 죽고 다치는 대형 유혈 참사를 빚게 된다. 결국 이 사건으로 현직 대통령이 하야(下野)하게 되고, 박정도는 국민들의 추대에 힘입어 대통령직에 오르게 된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공직자들은 재산을 전원 몰수하고 노동형에 처하는 가 하면, 군필자(軍必者)가 아니면 사실상 경제활동을 못하게 하고, 세금을 내지 않는 대형 교회들에게 세금을 강제 징수케 하는 등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써서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는 박정도에게 카이스트 총장으로 재임하며 비밀 연구에 매진하던 시리우스가 찾아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인 즉슨 “활성에너지”라는 정체불명의 에너지가 존재하는데, 이 에너지가 활성화되면 초대형급 지진과 화산폭발, 쓰나미와 같은 대재앙을 불러오며 독도 아래 매장되어 있는 활성에너지가 100 m 가 넘는 쓰나미를 일으키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이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시공간에 일시적인 균열이 생겨 “타임슬립”-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일어나는 비행기, 선박 실종이 바로 이 활성에너지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 이 가능해져 이 기회에 시간이동으로 역사를 바꾸자는 시리우스의 제안에 고민하던 박정도는 마침내 이지스함인 “이순신함”과 “독도함”에 각종 무기와 군인, 과학자들을 실어 과거로 보내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 작전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디데이, 해상 훈련을 가장하여 독도 인근에 작전 군함들을 보내지만 작전을 알아차린 미국이 작전중단과 시리우스의 사살을 요구하지만 박정도는 작전을 강행하라고 지시하고 “돌아오지 않은 다리” 프로젝트 팀은 마침내 열린 시공간의 틈을 통해 1905년 러일 해전 시점으로 시간이동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공상 소설의 하위 장르인 대체역사소설이라지만 허황된 설정과 현실성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결국 헛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타임 슬립이야 어차피 대체역사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라 눈감아 줄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을 쇄신하기 위한 박정도의 개혁 정책들은 악(惡)의 뿌리가 너무 깊어 극단적인 처방이 아니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해도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영 공감하기 힘든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이런 논리성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면면들을 그저 소설적 허구로 눈감아 줄 수 만 있다면 이야기 자체로는 꽤나 흥미진진하고 통쾌 - 지금 정권에 대한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비난이 자주 등장하는 데 그 대목들이 꽤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든다 - 하기까지 하다. 즉 읽는 독자들의 취향에 따라 어이없어 읽다가 책을 집어던질 수 도, 마지막 장까지 눈을 때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다고 느낄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의도한 바일 테인, 즉 우리나라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울분이나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워졌다느니 하는 감상은 전혀 느껴볼 수 없었지만 작품성을 떠나 시간 보내기(Killing Time)용으로는 제격인, 머리 비우고 눈에 힘 뺀 후 편안한 자세로 누워 읽어볼 만한 재미있는 책으로 평가 하고 싶다. 대체역사소설의 전형인 “역사 바꾸기”는 아무래도 2 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은데, 1권이야 현실 이야기를 소재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억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면 과연 2권에서는 어떻게 역사를 바꿔나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