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1
초(정솔) 글.그림 / 북폴리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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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가정에서 키우는 개와 고양이, 새 등의 동물들을 “애완동물(愛玩動物)”이라고 불렀는데 요즈음은 사람의 장난감이 아니라는 뜻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반려동물(伴侶動物)”로 고쳐 부른다고 한다. 사람에게 짝이 되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에서의 “반려”라는 말, 참 어울리는 단어일 것이다. 그러나 한 해 길거리에 버려지는 유기 동물이 8만여 마리에 이르고 실제로 희생당하는 동물은 공식집계의 몇 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반려라는 의미가 무색해지고 만다. 그런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은 싫증나면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는 장난감 인형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매주 화요일, 토요일 네이버에 연재하는 웹툰 모음집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북폴리오/2011년 11월)>의 작가 “초(정솔)”는 반려동물들은 그렇게 홀대받고 쉽게 버려도 될 그런 존재들이 아니라 바로 “가족” 그 자체라고 이쁜 만화와 글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자신이 반려 동물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한없는 동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그리는 날도 있지만 주로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녀석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편이다 보니 자신의 그림을 보고 “마음이 짠해졌다”라거나, “많이 배우고 반성했다”라는 감상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되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하고, 오히려 독자들에게 행복에 겨운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권유나 강요한다거나,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느낀 것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공감을 넘어 동물에 대한 시각이 바뀌는 사람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쓴다고 말하고 있다. 

책에는 작가가 어렸을 때부터 15년을 같이 살아온, 털 색깔도 까만색에서 회색으로 변해 버리고 눈과 귀가 어두워진 늙은 개 “낭낙”이와 유기동물보호소에 맡겨진 동물들이 새 주인을 만나기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인 한 달이 지나면 안락사하고 말지만 가엾게 여겨 빼돌려 키우게 된 한 살 난 어린 고양이 “순대”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작가의 시점에서 그네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낭낙이와 순대가 자신들의 주인에 대한 사랑을 들려주기도 한다. 머리말에서도 말했듯이 재미있는 에피소드 - 옷을 헤집어 놓은 낭낙이 때문에 어머니께 낭낙이냐 나냐고 따져 묻자 전혀 거리낌 없이 “낭낙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대답에 킥킥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 도 있지만 이제는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한 낭낙이, 버려졌다가 다시 사람의 품에 돌아와 작가가 외출하려고 하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순대의 사연 등 애달프고 감동적인 사연들이 많이 소개된다. 여기에 사람에게 버려져 길거리를 헤매다가 그만 차에 치여 죽음을 당하는 유기 동물들의 애처로운 삶과 10년 동안 같이 살면서 이쁜이이자 복덩이였던 소를 구제역으로 잃고 “너무하오, 저마만큼 기특한 삶 또 어딨다고” 탄식하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눈물 흘리는 할아버지, “금방 올게”, “기다려”라는 말에 쓰레기장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결국 죽은 개의 사연들은 절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작가는 

세상에 모든 어린 것들은 행복해야 한다. 좁고 공장 같은 우리에서 물건처럼 태어나 마리당 3만원에 팔린다 하더라도 너희는 사랑받으며 살아야 한다. 지하주차장 구석에서 먼지와 함께 태어난다 하더라도 너희는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덜 가지고 모자라고 불편하고 작아도 세상 모든 새끼들은 태어난 것을 축복받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라고 말한다. 아마도 작가는 행복하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새끼들이 성장하고 난 후 에도 계속 우리들에게 가족으로서 사랑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족이라면 그렇게 쉽게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가족이라면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을까? 가족이 남보다 못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 하지만 그래도 반려동물들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만큼 거리에 버려지는 동물들은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다. 

딱히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을 직접 느껴보진 못했지만 책 속 그림과 글 만으로도 가족인 “낭낙”이와 “순대”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길에 버려져 애처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유기동물들에 대한 안타까워하는 작가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었다. 작가의 늙은 개인 낭낙이가 좀 더 오래 작가의 곁에 머무르며 행복하기를, 그리고 어린 고양이 순대가 작가의 사랑 속에서 어릴 적 상처를 잊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작가 말대로 이 책으로 아직도 반려동물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어떤 사람들의 동물에 대한 시각이 바뀌기를, 그래서 모든 반려동물들이 진실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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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고양이는 없다 - 어쩌다 고양이를 만나 여기까지 왔다 안녕 고양이 시리즈 3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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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험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길고양이들에 대한 “애묘가(愛猫歌)” 또는 “헌사(獻辭)”인 “이용한” 작가의 “안녕 고양이” 시리즈를 지난 3월 <명랑하라 고양이>에 이어 8개월 만에 <나쁜 고양이는 없다(북폴리오/2011년 11월)>로 다시 만났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이 책에서도 전편처럼 가을에서 이듬해 여름까지 작가가 거주하고 있는 시골 마을 길고양이들의 1년 동안의 사연을 사진과 함께 담아내고 있다. 전편과 시기적으로 이어지는 작품이라 전편에서 만났던 고양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겠다는 반가운 마음에 받자마자 읽기 시작한 이 책, 다 읽고 나니 전편과 불과 1년도 채 흐르지 않았는데 많은 고양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 고양이별로 떠나가 버려 가슴 먹먹해지는 안타까움과 슬픔에 책을 쉽게 덮지 못하고 계속 앞 페이지들을 열어볼 수 밖에 없었다. 

여행가로 15년을 떠돌았고, 그중 4년은 고양이와 함께 길 위에서 보냈다는 작가는 <머리말>에서 고양이의 연대기와도 같은 묘생(猫生)의 기록, 그들의 갈구와 절망과 슬픔, 때때로 그들의 맑음과 갸륵함까지 담백하게 들려주고 싶었고, 다행히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첫 번째 고양이 책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중국과 대만, 일본에 번역, 출간되었으며, 1권과 2권 <명랑하라 고양이>를 원작으로 한 독립영화도 제작되어 전국 개봉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시즌 3인 이번 권까지 이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그야말로 분초를 쪼개가며 막판까지 고투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은 책 제작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양이에 대한 천대와 멸시 때문에 종종 쥐약을 놓거나 줄을 매 고양이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라고 토로한다. 그럴 때 마다 절망감으로 일손을 놓곤 했지만 수많은 작은 사람들이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거려 주고 자신의 책 때문에 어느덧 자신도 사료를 들고 길거리에 나가게 되었다는 소녀의 편지 덕분에 힘을 내게 된 작가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내 이웃을 위한 안내서이자 고양이를 좋아하는 수많은 작은 사람들에게 길고양이가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를 들려주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고 말한다. 차라리 고양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훨씬 속 편한 여행가로 살았겠지만 그러나 알고는 차마 ‘이곳’, 즉 길고양이들과의 삶을 떠나지 못하겠다고 털어놓으며 <머리말>을 끝낸 작가는 “고양이 영역지도”와 “등장 고양이”를 소개한 후 에 작가의 진심이 담긴 애묘가(愛猫歌)는 가을(“제1부 가을, 마지막 숨박꼭질”)로부터 시작하여 겨울(제2부 겨울: 죽지마 얼지마 봄이 올거야), 봄(제3부 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을 거쳐 여름(제4부 여름: 고양이가 보내온 SOS)까지 이어진다. 

책에는 고양이계의 소녀시대라고 “소냥시대”라고 이름 붙인 장난꾸러기에 나무타기의 달묘들인 다섯 고양이(네 마리는 수컷이고 한 마리만 암컷인데 소냥시대라니 맞는 표현은 아니겠지만 사진을 보면 그 귀여움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길고양이들을 사랑하는 전원 주택 주인 할머니 덕분에 20 여 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 살아가고 있는 전원고양이들(“전원 주택의 고양이들”을 일컫는 말로 소냥시대도 이 주택 마당에서 살고 있다), 자신의 딸 고양이가 고양이별로 떠나자 홀로 남은 손자 고양이 “꼬미”를 데려다 키운 할머니 고양이인 “대모”, 전원 고양이 일원으로 임신을 해서 전원주택으로 돌아왔지만 두 번이나 모두 사산을 하는 바람에 우울증에 걸린 불쌍한 고양이 “고래”, 마을 주민의 성화에 철장에 갇혀 봄과 여름 장마철을 보내다가 병이 들어서야 풀려난 “덩달이” 등 때로는 귀엽고 앙증맞지만 길고양이 특유의 고난한 삶을 살고 있는 많은 고양이들의 사연이 소개되고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리고 안타까움과 슬픔을 맛보게 한 고양이는 2편에서도 등장했던 바로 “달타냥” 이었다. 

동네 파란 대문집 마당 고양이인 “달타냥”은 주인인 홀로 사는 할머니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지만 달 빛에 담 타는 모습이 멋져 작가가 “달타냥”이라고 이름 붙인 이 고양이 - “삼총사”의 “달타냥”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작가는 여러 번 밝히고 있다 - 이다. 할머니가 마실 나갈 때 마다 마치 호위하듯 따라 걷기도 하고 문 앞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고 하는 등 기특한 구석이 많은 그런 고양이로 작가가 볼 때마다 먹이를 줬더니 어느새 작가가 지나가면 따라 붙어 뒷동산을 같이 산책하기도 해서 “궁극의 산책 고양이”라고 지칭하는 이 고양이는 2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고양이이자 3편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고양이였다. 2편에 등장했던 많은 고양이들이 밭작물을 헤집어 놓는다는 이유로 놓은 쥐약 버무린 밥들을 먹고 그만 무지개다리를 건너 버리고 말아 참 아쉬웠는데, 이 녀석 만큼은 이번 3권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해서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녀석, 고양이들에게 그렇게 힘들다는 겨울도 무사히 잘 넘기고 따뜻한 햇살이 반가운 봄 어느날 그만 고양이별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고양이를 묶어 놓으라는 이웃사람들의 성화에 할머니가 임시로 묶어 놓은 줄에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 치다가 그만 목이 졸려 숨지고 만 것이다. 아.... 이렇게 허망할 수가. 산책 고양이로 불릴 정도로 자유롭게 마을을 돌아다니고 마실 가시는 할머니 걸음에 맞춰 뒤를 따르던 이 녀석, 가느다란 줄에 묶여 그 좋아하던 산책을 하지 못해 얼마나 답답했으면 자기의 목이 졸릴 정도로 몸부리쳤을까 절로 가슴 아파졌다. 주인 할머니도, 작가도, 작가의 아내도 눈물짓게 만든 그 녀석의 죽음에 작가처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라는 말을 되내일 수 밖에 없었다. 책 제목처럼 세상에는 미운 고양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나쁜 고양이는 없을 것이다. 비록 주인 없이 길거리를 떠도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지만 그네들의 목숨이 그네들이 파놓은 배추 한포기, 무 한 개 보다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심코 차를 몰다 도로를 건너는 고양이를 차에 치여 죽이기도 하고, 밭을 헤집어 놓는다고 약을 탄 밥을 놓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작가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이웃 할머니들 성화에 밤마다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들이 울기라도 할라치면 할머니들 깨지 않게 울지 말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밤에 몰래 그 약을 탄 밥을 없애버리기도 하며, 떠나버린 고양이들이 제발 못된 약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기를 빌어보기도 하지만 책 속 많은 고양이들이 불과 2년 반도 채 살지 못하고 고양이별로 떠나버리고 만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많은 길고양이들, 혹시 있을 지 모르는 다음 권 - 물론 작가는 이 책이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 에는 대부분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책을 다 읽고도 쉽게 덮지 못하고 다시금 펼쳐 고양이 사진들을 하나하나 다시 찾아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책,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고양이들에 대한 “애묘가((愛猫歌)” 이자 오늘도 어느 길 모퉁이에서 쓸쓸하게 죽어가고 있을 슬픈 고양이들에 대한 “애묘가(哀猫歌)”이기도 하다. “안녕 고양이” 시리즈는 이번 권이 마지막이겠지만 고양이의 애잔한 삶을 알게 된 작가는 앞으로도 내내 이곳, 즉 길고양이들 곁에 남아 그들을 돌보고 있을 것이다. 그가 펴낸 이 세 권의 책이, 그리고 곧 개봉될 영화가 작가의 바램대로 수많은 작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기를, 그래서 2권의 제목처럼 길고양이들의 삶이 더 이상 비참하고 고통스럽지 않고 온전히 “명랑”해지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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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남자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손선영 지음 / 청어람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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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쫓기게 된다는 설정은 지금 언뜻 생각나는 작품만 해도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 “스티븐 킹”의 <쇼생크 탈출>.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도망자>등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지만 실제로 나에게 일어난다면 어떨까?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명석한 두뇌와 자신의 무고(誣告)를 밝혀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없는 평범한 나로서는 십중팔구 도망치다 지쳐 자수(自首)하거나 또는 그 절망감에 끔찍한 선택을 하고 말 것 같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최근 우리나라 신구 세대 추리 소설 작가들의 단편을 수록한 <목련이 피었다>에서 불륜 아내의 일기장 속 남자들을 살해하는 남편 이야기인 <그녀는 알고 있다>로 꽤나 인상 깊었던 신예 작가 “손선영”의 신작인 <죽어야 사는 남자(황금펜/2011년 10월)>은 이처럼 살인 누명과 추격이라는 설정을 우리 사회 상황으로 새롭게 구성하고 창조하여 신선하고 충격적인 재미를 주는 멋진 추리소설이었다.

10년 만에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애인과 새로운 삶에 살아가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이지훈은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리려 주민 센터를 찾아간다. 드디어 새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날, 다시 찾은 주민센터에서 지훈에게 건넨 것은 주민등록증이 아니라 형사의 “살인자 이대형”이라는 청천 벽력같은 외침과 거친 추격이었다. 새로운 삶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숨어버린 지훈은 희미한 과거를 아무리 떠올려 봐도 자신은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으며 이대형이란 이름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자신을 신고했던 주민 센터 여직원의 집을 찾아간 지훈은 자신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또 다른 “이지훈”의 존재를 알아내고 그를 찾아간다. 그런 그를 주민센터에서 추격해온 “백용준” 형사와 10년 전 이대형 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황재현” 형사가 그 뒤를 쫓기 시작하고, 여기에 의문의 잔혹한 킬러 “똥개”와 흥신소 “양상사”까지 저마다의 사연으로 가담하면서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마침내 “가짜” 이지훈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총을 꺼내들고 서로에게 총을 쏘기 시작한다. 여러 발의 총성(銃聲)이 울린 끝에 “진짜”와 “가짜” 이지훈과 양상사, 그리고 이 사건과 연관이 있던 고위급 형사가 그 자리에서 죽고, 킬러 똥개와 백용준 형사는 심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호송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고야 만다. “진짜” 이지훈의 진실은 이대로 묻혀져 버리고 마는 걸까. 아니다.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위에 잠깐 소개한 줄거리가 첫 단락인 “이 남자가 사는 법”이고 이어서 가짜 이지훈의 아내였던 조영미의 이야기인 “이 여자가 사는 법”, 병원에서 탈출한 킬러 똥개의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그 남자가 사는 법”, 모든 사건이 완결되는 “사는 법” 이렇게 네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책을 처음 읽으면서는 주인공 “이지훈”이 자신의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앞서 언급했던 소설과 영화들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전개되겠거니 하고 미리 짐작하고 읽었는데 첫 단락에서 총격전 끝에 죽어 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에 “누명 벗기기”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내용으로 반 이상 남은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하나, 혹시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리는 것 아냐 하는 당황한 마음까지 들었다. 연이어 조미영의 이야기 또한 뜬금없어 - 물론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이야기니 완전 뜬금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첫 번째 단락에서 기껏 전개해온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맥락의 이야기다 - 갈수록 점입가경이구나 싶었는데, 세 번째 단락에 들어서자 드디어 이야기의 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앞서 말한 소설과 영화에서의 “살인 누명 벗기기”라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를 답습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런 흔한 이야기를 연출해낸 이 사회 구조의 모순과 부조리를 꼬집는, 작가가 “작가후기”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사회파” 추리 소설이었던 것이다. 즉 이지훈의 이야기는 에피소드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지훈이 겪었을 고통과 험난한 누명 극복에만 초점을 맞추는, 즉 에피소드에 집중했던 나머지 주인공 - 엄밀히는 주인공으로 오해한 - 의 죽음에 당황한 셈이다. 사회파에 초점이다 보니 3번째 단락에서는 이지훈 사건 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것으로 짐작되는 스물 네 구의 시체를 만들어낸 세력들의 “꼬리 자르기” 연쇄 살인과 이를 막으려는 형사들의 분투가 펼쳐지지만 그럼에도 사건의 모든 의문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단락은 마무리가 된다.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으며, 이 엄청난 사건 - 책에는 참 많은 시체들이 등장한다 - 을 저지른 세력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바로 4번째 단락으로 넘어가서 마침내 모든 비밀이 밝혀질 때 까지 숨 돌릴 겨를 없이 내처 읽게 만든다. 단순할 것 같은 에피소드에서 사회 전체에 얽혀 있는 범죄라는 거대한 이야기로의 전환을 작가는 단락 단락을 통해서 전혀 억지스럽거나 지루함 없이 점진적으로 이야기를 확대해내가 페이지가 거듭할 수 록 더 몰입하게 만들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의 시선을 붙들어 놓게 만든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이 책의 가장 큰 재미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주요 설정이라 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 해킹과 위변조, 그리고 신분 세탁 등 우리 사회 현실에 바탕을 둔 설정과 트릭이라 더 공감이 될 수 있었던 점도 책의 재미를 한껏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언론에서도 심심찮게 오르내리듯이 노숙자들의 명의를 도용해서 금융사기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고, 심지어 신분을 바꿔버리는 사례 또한 적지 않다고 해도 이 책의 설정을 순전히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라고만 보기에는 그 현실감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독자들이라면 가슴 철렁할 그런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우리처럼 지문날인과 주민등록증 체제가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 단초는 책에서도 등장한다. 바로 일본 추리소설의 아이콘이라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이라는 <용의자 X의 헌신>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열광하는 독자들 대부분이 <용의자 ~>에서 시작했을 텐데 사실 난 그 책을 읽으면서 꽤나 실망을 했었다.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 치안국가인 일본에서 얼굴과 지문을 훼손했다고 피해자의 신원을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아 일본 경찰 시스템에 대한 히가시노식의 조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일본의 주민등록증이라 할 수 있는 “주민기본대장카드”는 우리처럼 지문을 날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범죄자에게만 지문 날인을 하는 일본 시스템으로는 범죄 기록이 없는 일반 시민이라면 지문으로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이다. 즉 일본 상황에는 적절한 설정이었던 셈인 것이다. 아마도 이 책에서 주민등록증을 이용한 신분 세탁 방법도 우리들이야 쉽게 공감하겠지만 우리와 다른 신분 확인 제도를 가진 국가라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거나 또는 “비인권적”, “비민주적” 제도라고 비난할 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외국인의 관점에서 말이다^^
 

물론 이 책에도 몇 몇 아쉬운 점이 보인다. 우선 많은 인물들의 등장하다 보니 인물들의 개성이나 구별이 분명치 않고 몇몇 인물들은 그저 배경처럼 그려지는 캐릭터 설정이 다소 미흡한 점을 들고 싶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백용준 형사나 황재현 형사는 그다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 비슷비슷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고, 지훈의 애인과 지훈의 정체를 백용준 형사에게 알린 주민센터 여직원 - 백용준과 로맨스를 연출하는 또다른 역할도 하지만 - 은 그저 단역에 불과할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한 두 번째 단락의 “조영미”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는 꽤나 재미있고 충격적이지만 전체 맥락에서는 아무래도 뜬금없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였다. 다만 작가가 미처 다 하지 못한 등장인물들은 다른 이야기로 이어가겠다는 뉘앙스를 보여주고 있으니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복선(複線)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작가가 공들여 쓴 글을 어쭙잖게 평가하려니 영 계면쩍고 부끄럽기까지 하지만 이 책,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요즘 봇물처럼 출간되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 추리 소설들을 몇 권 읽었는데, 하나 같이 기대 이상의 재미를 맛 볼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우리 추리 소설도 결코 암울하지만은 아닌, 오히려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몇 권에 지나지 않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꿋꿋이 우리 추리 소설계를 지켜 나가고 있는 손선영 작가와 여러 작가들의 노력과 수고가 계속 이어진다면 희망은 그저 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현실로 이뤄질 것이라고 굳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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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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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인 IQ 178(비공식은 무려 190)의 천재 작가이자 일본 3대 SF 작가라는 “쓰쓰이 야스타카(筒井 康隆)”의 작품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최악의 외계인>, <인구조절구역> 등 세 권을 읽어봤다. 세 책 모두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라도 하듯이 여느 작품들에서 접하기 어려운 독특하고 기발한, 심지어 괴이하기까지 한 작품들로 그나마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가장 무난(?)한데 정작 작가 본인은 가벼운 마음으로 평소와는 다른 ‘달달한’ 청소년용 단편을 쓴 것이었단다. 이런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쓴 게 이 정도면 작정하고 쓰면 어느 정도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작정을 하고 쓰면 더 “괴이”해지니 머리에 힘 좀 빼고 글쓰기를 당부하고 싶은 그런 작가라 하겠다. SF 뿐 아니라 호러, 순문학, 사소설(私小說. 자신의 경험을 허구화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써나가는 소설. 일본 특유의 소설 형식이라고 한다), 시나리오, 희곡, 에세이, 심지어 라이트노벨까지 전 장르를 망라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추리소설로 그를 다시 만났다. 바로 <부호형사(원제 富豪刑事 / 검은숲 / 2011년 10월)>가 그 책이다.

특별수사본부에는 별난 형사가 한 명 있다. 대재벌 “간베 기쿠에몬”회장의 아들 “간베 다이스케”가 바로 그이다. 대부호의 아들답게 쿠바 수도 아바나(La Habana)에서 공수(空輸)해온 개비당 8,500엔(이 책이 출간된 게 1978년이니 그 당시 환율은 어떤지 모르지만 지금 환율로는 무려 12 만원이 넘는다) 짜리 시가를 지금 막 불을 붙였음에도 아까워하는 기색도 없이 반으로 접어 버리는가 하면, 캐딜락을 타고 출근을 하지 않나, 영국제 수제 양복을 입고 빗속을 태연히 걷기도 하고, 초호화 주택에서 벌이는 파티에는 외국 유명 연예인들과 유명 교향악단까지 초빙하는 등 상상을 초월한 씀씀이를 보여준다. 주변 인물들도 범상치 않다. 우선 아버지 “간베 기쿠에몬”은 젊은 시절 온갖 흉악한 짓을 통해서 부(富)를 쌓아 왔지만 이제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형사인 아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쓴다고 말하면 오히려 기뻐서 울음을 터뜨리다가 숨까지 넘어간다. 오래전 기쿠에몬 때문에 가족을 잃었지만 어찌 보면 원수 곁에서 비서 노릇을 하고 있는 미녀 비서 “스즈에”는 다이스케의 수사에 적극 동참하는, 그리고 한 켠으로는 연정(戀情)을 품고 있는 그런 여인이다. 이처럼 금전 관념이 대책 없는 다이스케 형사는 공소 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5억 엔 강탈 사건 범인 체포(->“부호형사의 미끼”)에, 밀실에서 벌어진 중소기업 사장 살인 사건(->“밀실의 부호 형사”)에, 어린이 유괴 사건 해결(->“부호 형사의 함정”)에, 그리고 야쿠자 조직 회합(會合) 중 벌어진 밀실 살인 사건(->“호텔의 부호 형사”)에 자신의 돈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멋지게 해결한다. 말 그대로 돈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셈이다.

책에 실려 있는 네 개의 단편의 줄거리가 아닌 그저 캐릭터 설정 소개만 간단히 했지만 이 소개글만 봐도 얼마나 기발(?)할지 지레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번뜩이는 두뇌 회전이나 예리한 관찰력이 아닌 돈으로 상황을 설정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이런 기발한 설정들, 거기에 첫 편인 “부호 형사의 미끼”에서는 정색을 하고 점잖게 이야기를 풀어가더니 뒷 편으로 갈수록 형식을 파괴 - 사건 시간대를 임의로 뒤섞어 버리고, 작가가 자신은 추리소설 처음 쓰는 지라 어렵다고 투덜대질 않나, 주인공이 뜬금없이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사건의 과정을 확 생략해버리는- 하는 기괴한 형식 파괴 실험 또한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최근에야 서술 트릭이니 뭐니 하면서 추리소설 형식과 규칙 파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책이 출간된 년도인 1978년을 감안한다면 그 당시에는 가히 파격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기발한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 전개로 읽는 내내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미스터리 면만 본다면 밋밋한 수준이어서 그다지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유머와 미스터리 면에서 유머가 훨씬 뛰어난, 그 뛰어나고 기발한 유머가 미스터리의 밋밋함을 충분히 커버해주는 그런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 책과 유사한 설정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의 작가 “히가시가와 도쿠야”가 “유머 미스터리”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는 데 그 기원(起源)을 “쓰쓰이 야스타카”로 보는 게 맞을 듯 싶다. 아뭏튼 이 책, 구구절절 소개글보다 한번 읽어보는 것이 그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묵직한 미스터리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읽지 마시기를. 그저 웃고 즐길만한 가벼운 읽을 꺼리를 원하시는 독자들에게는 안성맞춤일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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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유머 미스터리”의 창시자라고 평가받는 작가라는 “히가시가와 도쿠야(東川篤哉)”는 2011년 일본 서점 대상 1위를 차지하고 150만부를 돌파할 정도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로 몇 개월 전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 서점 대상 1위에 150만 명이 사 볼 정도로 멋진 추리소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꺼리로써는 제격이었던 소설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으로 <수수께끼 ~>의 “호쇼 레이코”와 “가게야마” 콤비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만나고 싶었는데, 그의 데뷔작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원제 密室の鍵貸します/지식여행/2011년 10월)>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만화풍의 표지와 “치밀하고 대담한 트릭, 유머 본격 미스터리의 정수!”라는 표지 문구가 이 책 또한 <수수께끼~> 못지않은 유머 추리소설임을 짐작하게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이 책, 역시나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트릭(Trick)만큼은 문구대로 꽤나 치밀하고 진지한, <수수께끼~> 보다 한결 추리소설 다운 작품이었다.

일본 지바 현 동쪽, 가나가와 현 서쪽 정도에 위치한 도시 “이카가와 시” - 가상(假想)의 도시로 이 도시를 배경으로 “이카가와 시”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다고 한다 - 시립대 영화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남자 “도무라 류헤이”는 애인인 “곤노 유키”에게 이별을 당하고는 괴로워하다가 술김에 길거리에서 지나가던 샐러리맨과 주먹 다짐을 하다가 거의 일방적으로 얻어맞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 기분 전환 겸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선배 “모로 고사쿠”의 집에 비디오를 보러 가게 되고, 비디오 가게 점원이었던 친구가 재미없다고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빌려 온 비디오를 의외로(!) 재미있게 시청한다. 술을 사러 나갔던 고사쿠는 오는 길에 자신의 아파트 단지에서 한 젊은 여성이 투신 자살해서 그걸 구경하고 왔다고 말하고, 류헤이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던 전 애인 유키를 떠올리지만 애써 무시하고 선배와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신 후 목욕탕에 샤워하러 들어간 선배는 나올 줄을 모르고 이상하게 여긴 류헤이는 욕실에 들어가는데 욕실 바닥에 칼을 맞아 죽어 있는 선배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기절하고 만다. 다음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류헤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고, 선배 집을 서둘러 나온다. 그런 그에게 어제 죽은 여성이 바로 전애인인 유키이며 단순 투신자살이 아니라 몸에 칼을 맞아 죽었고, 경찰들이 자신을 조사하러 왔었다는 소식을 친구에게 전해 듣고 난감해한다. 연이어 일어난 애인과 선배의 죽음 - 창문과 대문이 안으로 잠겨져 있는 완벽한 밀실에서의 죽음 - 으로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어 버린 류헤이는 누나의 전 남편이자 사립탐정 “우카이 모리오”에게 도움을 청한다. 류헤이와 모리오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 행세를 하며 탐문에 나서고, 현직 경찰인 “스나가와” 경부와 “시키” 형사도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 과연 둘을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완벽한 밀실이었던 고사쿠 집에는 어떤 트릭이 숨겨져 있을까?

“오징어강”이라는 뜻인 “이카가와”가 “음탕하다, 수상하다”라는 뜻이기도 하다니 도시 이름에서부터 작가의 “말장난”이 느껴지는 이 책, 연쇄살인과 밀실 살인이라는 정통 추리소설적 소재 임에도 이야기는 꽤나 경쾌하고 유머스럽게 전개하고 있어 작가의 본령인 “유머 미스터리”의 진수를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 캐릭터들 설정이 꽤나 재미있는데, 하루 아침에 용의자로 몰려 우왕좌왕하다가 기껏 찾아간 곳이 전 매형이자 전혀 믿음이 안가는 3류 탐정을 찾아가는 류헤이나 밀실의 수수께끼를 단번(?)에 맞춰 버리고 으스대는 모리오 콤비가 펼치는 활약도 꽤나 재미있지만 폐수가 흐르는 강에 떠 있는 해파리 개수나 세면서 날씨를 맞출 정도로 하릴없는 스나가와 경부나 운전 중에 유력한 용의자인 류헤이를 하마터면 치일 뻔 했던 대책 없는 시키 형사도 믿음이 안가는 개그 콤비임에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콤비들이라면 결국 류헤이는 자신의 누명도 벗지 못하고 범인으로 체포되어 감방살이 신세를 못 면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 텐데, 사건의 해결은 스나가와 경부의 번뜩이는 추리 실력에 의해 해결되고야 만다. 단서는? 누구나 다 재미없다는 비디오를 주인공인 류헤이는 의외로 재미있게 봤다는 것이다. 정말 의외로 말이다 - 무엇이 의외인지는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기를^^ -. 이 말이 실마리가 되어 유키와 고사쿠의 연쇄 살인과 불가능할 것 같은 밀실 살인의 트릭이 드디어 밝혀지게 되고, 마지막에는 살인 사건의 의도 또한 반전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들은 꽤나 유머스럽지만 추리소설로서의 트릭만큼은 여느 소설 못지 않게 정교하고 치밀하게 그려져 있는 셈이다. 다만 트릭이 기발하고 치밀하기까지 하지만 사실 너무 수고스러운 준비가 필요 - 트릭을 이해하는 데 꽤나 복잡했다 -하고, 거기에 정말 우연과 같은 상황인 정전(停電)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실패했었을 그런 트릭이라 현실성과는 거리가 떨어지지만 말이다. 그래도 트릭을 설계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데 꽤나 공을 들인 작가의 수고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미리 친절(?)을 베푸는 장면들이 몇 몇 등장하는데, 책 초반에 작가가 직접 이 책은 두 가지 관점에서 하나의 사건을 그려갈 것이며 형사들은 범인이 아니다 라고 미리 일러주기도 하고, 밀실 트릭을 헷갈리게 할 목적(?)으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내출혈에 의한 것이니 조그만 욕실 창문에 기다란 창을 밀어 넣어 찔렀다느니 밑밥도 깔아 놓기도 하는데 읽는 중에는 제법 그럴싸하게 느껴지지만 결과를 알고 나면 억지스럽기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작가가 책을 재미있게 쓰려고 한 노력 정도로, 즉 애교 정도로 봐 줄 만은 하다.

캐릭터들의 기발함이나 유머는 <수수께끼 ~>가 좀 더 낫지만 추리소설 본연의 트릭과 반전의 재미는 이 책에게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어쨌든 두 권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어볼 만한 추리소설임에는 분명하다. 이 작가의 책들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니 하니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다음 편에서는 어떤 미스터리와 유머로 즐겁게 해줄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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