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공인 IQ 178(비공식은 무려 190)의 천재 작가이자 일본 3대 SF 작가라는 “쓰쓰이 야스타카(筒井 康隆)”의 작품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최악의 외계인>, <인구조절구역> 등 세 권을 읽어봤다. 세 책 모두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라도 하듯이 여느 작품들에서 접하기 어려운 독특하고 기발한, 심지어 괴이하기까지 한 작품들로 그나마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가장 무난(?)한데 정작 작가 본인은 가벼운 마음으로 평소와는 다른 ‘달달한’ 청소년용 단편을 쓴 것이었단다. 이런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쓴 게 이 정도면 작정하고 쓰면 어느 정도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작정을 하고 쓰면 더 “괴이”해지니 머리에 힘 좀 빼고 글쓰기를 당부하고 싶은 그런 작가라 하겠다. SF 뿐 아니라 호러, 순문학, 사소설(私小說. 자신의 경험을 허구화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써나가는 소설. 일본 특유의 소설 형식이라고 한다), 시나리오, 희곡, 에세이, 심지어 라이트노벨까지 전 장르를 망라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추리소설로 그를 다시 만났다. 바로 <부호형사(원제 富豪刑事 / 검은숲 / 2011년 10월)>가 그 책이다.

특별수사본부에는 별난 형사가 한 명 있다. 대재벌 “간베 기쿠에몬”회장의 아들 “간베 다이스케”가 바로 그이다. 대부호의 아들답게 쿠바 수도 아바나(La Habana)에서 공수(空輸)해온 개비당 8,500엔(이 책이 출간된 게 1978년이니 그 당시 환율은 어떤지 모르지만 지금 환율로는 무려 12 만원이 넘는다) 짜리 시가를 지금 막 불을 붙였음에도 아까워하는 기색도 없이 반으로 접어 버리는가 하면, 캐딜락을 타고 출근을 하지 않나, 영국제 수제 양복을 입고 빗속을 태연히 걷기도 하고, 초호화 주택에서 벌이는 파티에는 외국 유명 연예인들과 유명 교향악단까지 초빙하는 등 상상을 초월한 씀씀이를 보여준다. 주변 인물들도 범상치 않다. 우선 아버지 “간베 기쿠에몬”은 젊은 시절 온갖 흉악한 짓을 통해서 부(富)를 쌓아 왔지만 이제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형사인 아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쓴다고 말하면 오히려 기뻐서 울음을 터뜨리다가 숨까지 넘어간다. 오래전 기쿠에몬 때문에 가족을 잃었지만 어찌 보면 원수 곁에서 비서 노릇을 하고 있는 미녀 비서 “스즈에”는 다이스케의 수사에 적극 동참하는, 그리고 한 켠으로는 연정(戀情)을 품고 있는 그런 여인이다. 이처럼 금전 관념이 대책 없는 다이스케 형사는 공소 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5억 엔 강탈 사건 범인 체포(->“부호형사의 미끼”)에, 밀실에서 벌어진 중소기업 사장 살인 사건(->“밀실의 부호 형사”)에, 어린이 유괴 사건 해결(->“부호 형사의 함정”)에, 그리고 야쿠자 조직 회합(會合) 중 벌어진 밀실 살인 사건(->“호텔의 부호 형사”)에 자신의 돈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멋지게 해결한다. 말 그대로 돈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셈이다.

책에 실려 있는 네 개의 단편의 줄거리가 아닌 그저 캐릭터 설정 소개만 간단히 했지만 이 소개글만 봐도 얼마나 기발(?)할지 지레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번뜩이는 두뇌 회전이나 예리한 관찰력이 아닌 돈으로 상황을 설정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이런 기발한 설정들, 거기에 첫 편인 “부호 형사의 미끼”에서는 정색을 하고 점잖게 이야기를 풀어가더니 뒷 편으로 갈수록 형식을 파괴 - 사건 시간대를 임의로 뒤섞어 버리고, 작가가 자신은 추리소설 처음 쓰는 지라 어렵다고 투덜대질 않나, 주인공이 뜬금없이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사건의 과정을 확 생략해버리는- 하는 기괴한 형식 파괴 실험 또한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최근에야 서술 트릭이니 뭐니 하면서 추리소설 형식과 규칙 파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책이 출간된 년도인 1978년을 감안한다면 그 당시에는 가히 파격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기발한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 전개로 읽는 내내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미스터리 면만 본다면 밋밋한 수준이어서 그다지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유머와 미스터리 면에서 유머가 훨씬 뛰어난, 그 뛰어나고 기발한 유머가 미스터리의 밋밋함을 충분히 커버해주는 그런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 책과 유사한 설정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의 작가 “히가시가와 도쿠야”가 “유머 미스터리”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는 데 그 기원(起源)을 “쓰쓰이 야스타카”로 보는 게 맞을 듯 싶다. 아뭏튼 이 책, 구구절절 소개글보다 한번 읽어보는 것이 그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묵직한 미스터리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읽지 마시기를. 그저 웃고 즐길만한 가벼운 읽을 꺼리를 원하시는 독자들에게는 안성맞춤일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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