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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ㅣ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유머 미스터리”의 창시자라고 평가받는 작가라는 “히가시가와 도쿠야(東川篤哉)”는 2011년 일본 서점 대상 1위를 차지하고 150만부를 돌파할 정도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로 몇 개월 전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 서점 대상 1위에 150만 명이 사 볼 정도로 멋진 추리소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꺼리로써는 제격이었던 소설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으로 <수수께끼 ~>의 “호쇼 레이코”와 “가게야마” 콤비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만나고 싶었는데, 그의 데뷔작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원제 密室の鍵貸します/지식여행/2011년 10월)>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만화풍의 표지와 “치밀하고 대담한 트릭, 유머 본격 미스터리의 정수!”라는 표지 문구가 이 책 또한 <수수께끼~> 못지않은 유머 추리소설임을 짐작하게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이 책, 역시나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트릭(Trick)만큼은 문구대로 꽤나 치밀하고 진지한, <수수께끼~> 보다 한결 추리소설 다운 작품이었다.
일본 지바 현 동쪽, 가나가와 현 서쪽 정도에 위치한 도시 “이카가와 시” - 가상(假想)의 도시로 이 도시를 배경으로 “이카가와 시”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다고 한다 - 시립대 영화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남자 “도무라 류헤이”는 애인인 “곤노 유키”에게 이별을 당하고는 괴로워하다가 술김에 길거리에서 지나가던 샐러리맨과 주먹 다짐을 하다가 거의 일방적으로 얻어맞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 기분 전환 겸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선배 “모로 고사쿠”의 집에 비디오를 보러 가게 되고, 비디오 가게 점원이었던 친구가 재미없다고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빌려 온 비디오를 의외로(!) 재미있게 시청한다. 술을 사러 나갔던 고사쿠는 오는 길에 자신의 아파트 단지에서 한 젊은 여성이 투신 자살해서 그걸 구경하고 왔다고 말하고, 류헤이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던 전 애인 유키를 떠올리지만 애써 무시하고 선배와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신 후 목욕탕에 샤워하러 들어간 선배는 나올 줄을 모르고 이상하게 여긴 류헤이는 욕실에 들어가는데 욕실 바닥에 칼을 맞아 죽어 있는 선배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기절하고 만다. 다음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류헤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고, 선배 집을 서둘러 나온다. 그런 그에게 어제 죽은 여성이 바로 전애인인 유키이며 단순 투신자살이 아니라 몸에 칼을 맞아 죽었고, 경찰들이 자신을 조사하러 왔었다는 소식을 친구에게 전해 듣고 난감해한다. 연이어 일어난 애인과 선배의 죽음 - 창문과 대문이 안으로 잠겨져 있는 완벽한 밀실에서의 죽음 - 으로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어 버린 류헤이는 누나의 전 남편이자 사립탐정 “우카이 모리오”에게 도움을 청한다. 류헤이와 모리오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 행세를 하며 탐문에 나서고, 현직 경찰인 “스나가와” 경부와 “시키” 형사도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 과연 둘을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완벽한 밀실이었던 고사쿠 집에는 어떤 트릭이 숨겨져 있을까?
“오징어강”이라는 뜻인 “이카가와”가 “음탕하다, 수상하다”라는 뜻이기도 하다니 도시 이름에서부터 작가의 “말장난”이 느껴지는 이 책, 연쇄살인과 밀실 살인이라는 정통 추리소설적 소재 임에도 이야기는 꽤나 경쾌하고 유머스럽게 전개하고 있어 작가의 본령인 “유머 미스터리”의 진수를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 캐릭터들 설정이 꽤나 재미있는데, 하루 아침에 용의자로 몰려 우왕좌왕하다가 기껏 찾아간 곳이 전 매형이자 전혀 믿음이 안가는 3류 탐정을 찾아가는 류헤이나 밀실의 수수께끼를 단번(?)에 맞춰 버리고 으스대는 모리오 콤비가 펼치는 활약도 꽤나 재미있지만 폐수가 흐르는 강에 떠 있는 해파리 개수나 세면서 날씨를 맞출 정도로 하릴없는 스나가와 경부나 운전 중에 유력한 용의자인 류헤이를 하마터면 치일 뻔 했던 대책 없는 시키 형사도 믿음이 안가는 개그 콤비임에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콤비들이라면 결국 류헤이는 자신의 누명도 벗지 못하고 범인으로 체포되어 감방살이 신세를 못 면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 텐데, 사건의 해결은 스나가와 경부의 번뜩이는 추리 실력에 의해 해결되고야 만다. 단서는? 누구나 다 재미없다는 비디오를 주인공인 류헤이는 의외로 재미있게 봤다는 것이다. 정말 의외로 말이다 - 무엇이 의외인지는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기를^^ -. 이 말이 실마리가 되어 유키와 고사쿠의 연쇄 살인과 불가능할 것 같은 밀실 살인의 트릭이 드디어 밝혀지게 되고, 마지막에는 살인 사건의 의도 또한 반전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들은 꽤나 유머스럽지만 추리소설로서의 트릭만큼은 여느 소설 못지 않게 정교하고 치밀하게 그려져 있는 셈이다. 다만 트릭이 기발하고 치밀하기까지 하지만 사실 너무 수고스러운 준비가 필요 - 트릭을 이해하는 데 꽤나 복잡했다 -하고, 거기에 정말 우연과 같은 상황인 정전(停電)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실패했었을 그런 트릭이라 현실성과는 거리가 떨어지지만 말이다. 그래도 트릭을 설계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데 꽤나 공을 들인 작가의 수고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미리 친절(?)을 베푸는 장면들이 몇 몇 등장하는데, 책 초반에 작가가 직접 이 책은 두 가지 관점에서 하나의 사건을 그려갈 것이며 형사들은 범인이 아니다 라고 미리 일러주기도 하고, 밀실 트릭을 헷갈리게 할 목적(?)으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내출혈에 의한 것이니 조그만 욕실 창문에 기다란 창을 밀어 넣어 찔렀다느니 밑밥도 깔아 놓기도 하는데 읽는 중에는 제법 그럴싸하게 느껴지지만 결과를 알고 나면 억지스럽기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작가가 책을 재미있게 쓰려고 한 노력 정도로, 즉 애교 정도로 봐 줄 만은 하다.
캐릭터들의 기발함이나 유머는 <수수께끼 ~>가 좀 더 낫지만 추리소설 본연의 트릭과 반전의 재미는 이 책에게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어쨌든 두 권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어볼 만한 추리소설임에는 분명하다. 이 작가의 책들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니 하니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다음 편에서는 어떤 미스터리와 유머로 즐겁게 해줄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