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性 - 상식과 몰상식을 넘나드는 인류의 욕망
이성주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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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 맑은 정신에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술 한잔 들어가면 부부간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남자들 술자리의  단골 소재이자 참 은밀하면서도 미묘한 즐거움을 주는 테마이다. 맹자의 <食色性也, 식욕食慾과 성욕性慾은 인간의 본성이다>라는 말처럼 성욕(性慾)은 인간이 가진 중요한 본래 성질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철학, 윤리, 사회 규범 등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각종 도덕과 규범들에 의해 철저히 간섭받고 통제되어 왔지만, 한편으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 “매춘賣春”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이어온 성 유희 문화는 그런 간섭과 통제해도 결코 사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마른 들판의 불길처럼 더욱 번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는 원래 재미있다”는 믿음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재밌게 풀이한 “엽기 조선왕조실록”의 작가 이 성주의 신작인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효형출판, 2010년 4월)”은 감춘다고 해서 결코 감춰지지 않는, 그동안 금기로 여겼던 각종 성에 대한 담론들을 역사적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작가는 서문인 “책을 들어가며”에서 이 책은 섹스에 관한 흥미위주의 흔한 이야기를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쟁, 경제난 등의 위기상황이 인류의 성 문화에 미친 영향들과 권력이 사회적 약자에게 가한 성적 억압과 폭력 등을 파헤침으로써, 인류의 성문화가 역사 속에서 어떤 왜곡과 굴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분석”하고자 하며, “성적 행위의 바탕이 되는 인간의 몸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고, 현대 남성의 일그러진 성의식과, 미국, 일본 등 '성문화 선도국'의 성 풍속을 살펴보고. 이로써 성이 인류사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망하려 한다”고 이 책을 쓴 집필 목적과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조금은 거창한 집필목적으로 들릴 수 도 있지만 내용에 들어가면 거침없고 익살스런 말투로 성 문화 및 역사에 대하여 부담 없이 쉽고 재밌게 설명하고 있다.


 

 책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 중 가장 많이 소개하고 있는 미국 - 작가도 머리말에서 오해하지 말라고 살짝 밝히고 있다 -에 대해 몇가지 소개해본다. 20세기 들어 미군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성에 관한 온갖 추문들은 끊이지가 않았는데, 1,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을 가장 괴롭혔던 질병은 바로 성병이었고, 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이 전 세계에서 만든 사생아가 65만 명으로 추산되고, 전쟁 후 미군 병사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 여자만도 7만 여명에 이르는, 특히 인기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멋진 주인공 로널드 스피어스가 9부에서 전리품에 그렇게 혈안이 되었던 것도 바로 영국에 둔 유부녀 애인과 자식을 위해서라고 하니 그에 대한 환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버린다. 최근 전쟁이었던 “사막의 폭풍 작전” 걸프전에서도 미군들의 지나친 혈기왕성함은 여실히 드러나는데, 성에 대해 엄격했던 중동 율법 때문에 객고(?)를 풀 때가 없었던 미군 병사들이 부대 내 여군들에게 눈길을 돌려서 전쟁 후 여군 병사들의 출산이 줄을 이어 걸프전은 "걸프전 베이비 폭풍"작전이라고 불리운다고 하니 굳이 반미, 반제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미군은 그것(!)에 대한 것 만큼은 세계 어디서나 골칫거리인 듯 하다. 청소년 시절 제일 흔하게 접하는 미국의 포르노물, 과연 그 산업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2001년 미국 포르노 사업이 거둬들인 수익은 미국 4대 스포츠, MLB, NPL, NBA, NHL이 벌어들인 수입 전부를 합친 것보다 많았으며, 2006년 기준 인터넷 수익만으로도 미국의 전국 TV채널인 ABC, CBS,NBC 3사의 수익을 합친 것 보다 2배를 웃도는 수익을 올렸고, 현재 미국 포르노 산업 규모는 57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전 세계 포르노 산업 가운데 미국 포르노 산업이 1년에 달성하는 수익만 120억 달러 정도라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50억달러를 금융구제로 신청할 만큼 당당한 미국 포르노 산업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더욱더 발전할 그런 산업으로 그 위치를 공공히 할 것만 같다. 책에는 미국 이야기 외에도 숭고한 정신의 올림픽이 사실은 젊은 남자들의 성욕을 잠재우려는 목적으로 탄생했으며, 과연 실재했을까 의문인 정조대의 사실여부, 순결의 상징 면사포의 숨은 뜻, 비아그라 덕분에 멸종을 면한 바다표범 등등 성에 관한 다양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성에 낯부끄러운 이야기들을 한껏 담고 있어 지하철이나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서 내놓고 읽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술집에서 늘어놓는 ‘근거 없고 질 낮은’ 음담패설들과는 다른 성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그러면서도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질끈 매고는 근엄한 표정으로 성에 대한 과학적, 철학적 해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침없고 유머스러운 말투로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재밌게 풀어가고 있어 읽는 데 아무 부담 없이 술술 읽히게 만드는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결코 밖으로 그 관심을 드러낼 수 없는 성에 관한 담론들을 만날 수 있었던 오랜만에 즐거운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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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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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인류 역사상 이 분 만큼 영향을 끼친 분이 몇이나 될까? 종교, 철학, 역사,예술 등 모든 분야에 짙게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는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그날까지 계속 될 것만 같다. 그를 믿는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예수의 생애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일텐데 유독 성경에도 간략히만 묘사되어 있는 그의 유년시절 이야기는 온갖 설(說억)과 억측을 불러일으키는, 그래서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스페인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민음사/2010년 3월)”는 베일에 쌓여있는 예수의 유년시절을 배경으로 한 기발하면서도 재치와 유머가 가득한 소설이다. 

 예수의 어린 시절, 즉 1세기 무렵, 로마의 생리학자이자 철학자인 폼포니오 플라토는 신비의 시냇물을 찾아 세상을 헤매고 다니다가 이곳저곳 물들을 마시고 다닌 탓에 설사병과 방귀에 몹시 시달린다. 정처없이 떠돌다가 이스라엘의 나사렛에 도착한 그는 그 지역 부유한 상인 에풀론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에게 탐정으로 고용(?)되어 살인사건의 수사에 나서면서 그와 어린 구세주 예수의 좌충우돌의 모험이 시작된다. 그러나 각종 정황적 증거나 물적 증거는 요셉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가고 억울한 누명을 썼음에도 답답하리만치 외곬수인 요셉은 입을 꾹 다물어 버리고 결국 자신을 못박을 십자가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수사가 거듭되면서 조금씩 진실의 베일이 드러나게 되고 처형의 그날 아침 죽었다던 에풀론의 참회의 편지가 배달되면서 모든 진실은 밝혀지고, 요셉은 폼포니오에게 감춰두었던 진실을 밝히게 된다.

 아직은 자신이 메시아인지 각성하지 못한, 아버지의 무고함을 믿고 또래의 여자와 정신없이 뛰노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인 “예수”가 등장하는 이 소설에는 예수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 4대 복음서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 즉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 예수에 의해 부활하는 나사로, 예수에 앞서 활동한 선지자인 사도 요한, 예수의 제자 마태, 훗날 막달라 마리아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매달린 바라바라는 도적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영화 속 가공의 인물인 “유다 벤허”- 자기는 사륜마차 모는 것만 좋아한단다 - 까지 등장한다. 특히 훗날 예수가 못 박히게 될 십자가도 사실은 요셉이 처형될 뻔 했던 그 십자가라는 설정,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일종의 수면제를 먹고 삼일 만에 깨어나서 무거운 무덤의 돌을 밀고 나온 에풀론의 예를 들어 사실 예수의 부활도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하는 작가의 상상력은 발칙하면서도 재미있다. 또한 책 끝 무렵에 등장하는 로마의 신 “아폴로”나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저승에 다녀온 오르페우스처럼 비참하게 살해당한 어린 소녀가 되살아나는 장면 - 예수가 나중 크면 결혼하고 싶다던 이 소녀가 바로 훗날 막달라 마리아가 될 그 소녀로 여겨진다 - 은 역사, 추리, 종교소설 - 솔직히 추리소설같은 기발한 트릭이나 치밀한 수사과정보다는 폼포니오의 어설픈 추리 과정이 전부이다 - 을 넘어 판타지 경계까지 넘나드는 온갖 장르적 특성을 갖춘 그런 소설이라 하겠다. “유머는 나의 성격 속에 녹아 있는 부분이다. 나는 내 글을 읽으며 재미있게 즐긴다. 그게 바로 유머이다.”라는 작가 인터뷰처럼 민감할 수도 있는 예수의 생애를 소재로 하면서도 “다빈치 코드”처럼 뭔가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정색을 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어린 시절 이런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 진짜냐고? 예이 알면서~”라고 말하면서 온갖 풍자와 유머로 재밌게 포장을 해서 종교인이든 아니든 굳이 불편하거나 삐닥한 마음 가질 필요없이 베게를 베고 편히 누워서 맘편히 읽을 수 있는, 쉽고 재밌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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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종말시계 - '포브스' 수석기자가 전격 공개하는 21세기 충격 리포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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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지구상의 석유는 2000년이 되면 완전히 고갈될 것이며 그래서 석유는 아끼고 또 아껴써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었다. 종말의 날처럼 들렸던 2000년을 넘긴지도 10년이 훌쩍 지난 현재 아직도 차로 넘쳐나고 있고 곳곳의 주유소에서는 휘발유를 팔고 있다. 물론 아침마다 유가가 얼마 오르고 내렸다는 것이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지만 말이다. 과연 석유가 없는 세상이 오기는 할 것인가? 석유생산은 정점을 지나 이미 감소 추세라는 견해도 있고 아직 심해나 극지 등 미 발견 유전들이 있어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견해도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의견들이 분분한가 보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유가로 인해 출퇴근 차를 집에 두고 다녀야 했던 경험을 해본 터라 석유 부족으로 인해 가격이 다시 오른다는 상상은 더할 나위 없이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끔찍한 상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석유가 없는 세상은 끔찍하고 두렵기만 할까? 크리스토퍼 스타이너의 “석유종말시계(원제 $20 Per Gallon, 시공사, 2010년 2월)”는 석유가격이 갤런당 2달러씩 올라 20달러에 이르기까지 가격대별로 우리에게 닥칠 현상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유가가 단계적으로 인상되는 동안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연구했다”라고 밝힌 것처럼 이 책에서는 유가가 갤런당 2달러씩 오르면서 우리의 삶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어떻게 변화하는 지에 대하여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유가는 과연 더 상승할 것인가? 작가는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이 증가하면서 석유 수요는 더 즐가할 것이며 지구상에 남아있는 석유를 시추하는 비용은 점점 더 오르게 될 것이므로 유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인상될 것으로 전망한다. 즉 증가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의 부족이 유가를 더욱 끌어올릴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유가가 오르면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갤런당 6달러가 되자 기름 잡아먹는 SUV가 멈춰서고, 8달러가 되자 항공기가 사라져 하늘이 텅비게 된다. 10달러에는 휘발유를 대체하는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차 들이 대거 출시되고 석유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도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대체하게 되며 12달러가 되면 교외지역에서 한가로이 생활하던 사람들이 다시 도시로 몰려들고, 14달러가 되니 미국 방방곡곡에 들어선 월마트가 물류비 때문에 속속 문을 닫고,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마을의 기반시설인 기차역, 우체국이나 생업에 더 가까운 곳으로 몰려든다. 컨테이너선은 기름 값 때문에 운항을 중단하고 더 이상 값싼 중국제품은 미국에 들어올 수 없어 미국 제조업이 다시 부활하는 세계화의 역행이 진행된다 - 미국 측 입장에서 보면 긍정적인 효과이다 -. 16달러, 높은 유류비에 어선들은 출항하지 못해 생선이 주재료인 초밥이 사라지고, 도시 근처에 농장들이 늘어서며 온실과 퇴비가 증가하면서 오히려 농산물 품질은 더 나아진다. 18달러, 철도가 거의 유일한 대중 교통으로 각광을 받는 시대가 도래한다 - 책 표지의 “자동차, 항공사 주식을 팔고 철도 주식을 사라”라는 문구가 제대로 들어맞는 그런 시대인 셈이다 - 마지막 상황, 20달러의 시대, 대체 에너지인 수력, 풍력, 원자력의 미래와 전기로 돌아가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소개하는 20달러 시대에 살고 있는 “빌”의 가상 일상은 결코 석유가 없는 시대가 암울하지만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미래에는 “단순히 지금 효과가 있으니 굳이 뜯어 고칠 필요가 없다는 고리타분한 사고 방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능률과 효율을 따지는 방식에 따라 지배될 것이다. 에너지 균형으로 가는 경로는 효율성, 가치, 기능을 판단하는 일련의 방정식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낭비하지 않고 능률과 효율로 최적화하여 에너지를 사용하는 세상이 바로 우리들의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인 셈이다.

이처럼 책에서는 단계별 가격 상승에 따라 발생하는 상황들을 개연성 있고 치밀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의 리터와 다른 갤런(3.78리터)이라는 단위가 영 생소해서 갤런 당 2달러라는 개념이 금방 와 닿지 않아 책 첫머리에 일러두기로 표시해둔 대로 갤런을 리터로 환산하고 환율을 1,130원/USD로 치환하여 계산해보니 이 책에서 최고 가격인 갤런당 20달러는 우리 돈으로는 리터당 5,980원/L 수준이 된다. 요즘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700원~1,800원 수준이니 3.3배 정도가 되는 가격이고 한 달에 자동차 휘발유로 150 리터 정도를 사용한다면 90만원 정도를 도로에 버리고 사는 셈이다. 나부터도 당장 차를 버리고 다닐 그런 부담되는 상황이고, 주변 직장동료에게 물어봐도 열이면 열 모두 당연히 차 두고 다닌다고 답들을 한다. 그러나 석유의 종말이 결코 암울하지 않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과 환경문제 해결, 건강 증진 같은 희망의 시대를 가져올 수 도 있다는 이 책의 예상처럼 벌써부터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필요에 의해서든 아니면 강제에 의해서든 인류는 항상 보다 진보된 방향으로 발전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일피크 시점이 2020년, 2030년 결코 멀지 않았다는 전문가의 예견에도 조금은 낙관할 수 - 정확히는 낙관하고 싶은 소망이 맞을 것이다 - 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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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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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한 영화로 먼저 만났던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이레/2004년 11월)”, 오랫동안 책장에서 고이 잠들어 있던 이 책을 드디어 꺼내 읽었다. 영화는 15세 소년과 36세 중년 여성의 불손한 사랑, 청소년 관람불가 라는 묘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광고에 끌려 봤지만,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었는지 초반부 보다가 여주인공 한나가 법정에 서는 장면부터는 졸기 시작해서 눈 떠보니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 장면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래서 동생이 빌려준 이 책도 영화가 별로였는데 책도 그저 그렇겠지 하고 손길을 안주다가 무슨 책을 볼까 하고 책장을 둘러보다가 우연찮게 눈에 띄여 읽기 시작했다. 이처럼 선뜻 집어들지 않고 멀리하다가 최근에 읽은 책이 코멕 맥카시의 “로드”와 이 책이었는데 둘 다 안 읽었으면 후회했을 그런 책이었다.

열 다섯 살 가을, 마이클(나)은 간염에 걸려 학교를 쉬게 되었고, 길가에서 구토를 하던 중 서른여섯 살 아름다운 그녀(한나)를 처음 만났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밀스러운 연인이 되어버린다. 사랑을 나누기 전 책을 읽어 달라는 한나에게 마이클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 <오디세이> 등을 읽어주게 되고 사랑이 점점 깊어갈 무렵 한나는 말 한마디 없이 마이클 곁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로부터 8년 후 마이클은 법정에서 나치 수용소 감시원으로 고소된 한나와 재회하게 된다. 마이클은 자신이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임을 수치스러워 하고 그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워 죄를 뒤집어 써버리고 종신형을 선고받는 한나를 보면서 그녀가 왜 그의 곁을 말도 없이 떠나버렸는지 이해를 하지만 판사에게 이 사실을 끝내 알리지 않는다. 그 후로 마이클은 책을 낭독한 것을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에게 계속 보내고, 한나는 이 테이프를 계속 반복해 들으면서 결국 글을 깨우치게 된다. 18년 후 한나의 사면원이 받아들여져 석방이 결정되자 마이클은 한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지만 석방 당일 아침 한나는 말없이 마이클 곁을 떠나던 그 날처럼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살을 하고 만다. 한나가 죽은 뒤 10년의 세월이 흘러 마이클은 그와 한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결심한다. 

처음에는 마치 불륜의 사랑을 엿보는 것과 같은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지만 영화에서의 과도한 애정장면들은 오히려 책에서는 별로 나오지 않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년과 중년 여성의 사랑이 담담하게 묘사한다. 이 책의 진짜 재미는 2부 마이클과 한나가 법정에서 조우하는 장면에서부터인데 - 영화에서는 이 장면부터 졸기 시작했다 - 나치 수용소 여자 감시원이었던 한나가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그녀가 왜 마이클과 사랑을 나누기 전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했는지, 외출하고 오겠다는 쪽지를 남겼음에도 불같이 화를 내던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갑자기 떠나버렸는지 모든 의문이 풀리면서 그녀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그녀의 재판과정, 결국 자신이 문맹임을 밝히기 싫어 자신이 보고서를 썼다고 거짓으로 밝히고 종신형을 선고받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문맹이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나치 친위대에 입대하고, 그저 국가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던 그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그녀의 삶, 결국은 감옥에서 어린 연인 마이클이 보내오는 낭독 테이프를 돌려 들어가면서 결국 글을 깨우치게 되는 장면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처음에는 사춘기의 성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육체적 사랑이었지만 성인이 되면서 삶을 같이 나누는 사랑으로까지 아름답게 발전한 두 사람의 사랑이 안타까우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든다. 그녀는 왜 석방하는 날 자살을 선택했을까? 여러 가지 해석도 있겠지만 작가가 이 책을 번역한 김재혁씨 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자살이 그렇듯이 자살을 결심한 한나의 결정은 저 자신에게도 알 수 없는 비밀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씀드릴 수는 있겠습니다. 유죄판결을 받은 뒤로 한나의 생은 후퇴였다고요. 그녀는 교도소를 세상으로부터 후퇴의 장소를 받아들인 거지요. 그리고 그녀는 교도소에서 다시 한 번 공동생활로부터 자기 자신에게로 그리고 자기 자신 속으로 후퇴한 겁니다. 그리고 생의 흐름을 완전히 되돌려 다시 세상에 나가서 그곳에서 산다는 것은 그녀에겐 아마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작가의 말대로 세상에 다시 나서기가 그녀에게는 힘든 고통이었을 수도, 그리고 어린 연인이었던 마이클 곁에서 늙고 추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문맹임을 밝히기를 수치스러워했던 그때처럼 두렵고 싫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결국 결말은 한나의 자살이라는 슬픈 결말이었지만 한나의 마지막 선택은 그녀이니까 할 수 있는 그런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묘한 여운이 남는다. 마이클과 한나, 두 사람의 부조화스러운,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 주는 이 여운이 제법 오래갈 것 같다. 이제 제대로 보지 못한 영화를, 좋아하는 배우인 케이트 윈슬릿의  연기한 한나에 제대로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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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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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국이나 유럽 문학들은 많이 접해봤는데, 뉴질랜드 작가의 소설은 버나드 베켓의 “2058 제너시스(내인생의 책/2010년 4월)”이 첫 작품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SF 소설이라 잔뜩 기대를 가지고 책 첫 페이지를 열었다. 다 읽고 나서 서평 쓰는 지금, “뉴질랜드 문학 최고의 선인세를 갱신한 작품”, “전 세계 22개국 베스트셀러 진입”이라는 요란한 선전 글이 아니더라도 내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묵직한 주제 의식과 소설로서의 재미가 조화롭게 풀어나간 작가의 글 솜씨에 한껏 반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을 만나 즐거운 기분이 든다.

책은 아낙스가 공화국 학술원에 입학하기 위해 치르는 구술 면접 시험을 주 얼개로 하고, 인터뷰 안에 21세기 중반 인류의 역사와 공화국 생성 과정,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아담의 이야기를 액자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2052년 전 세계에 전염병이 퍼지자 플라톤은 지금의 뉴질랜드와 같은 남태평양의 외딴 섬 사방 면에 방벽을 쌓아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그들만의 공화국을 건설한다. 어느날 보초병으로 근무하던 아담이 바다를 표류하는 소녀 이브를 발견하고, 외부인은 무조건적으로 사살하라는 규정을 어기고는 그의 선임을 죽이고서 그녀를 구출해서 숨겨주게 된다. 결국 아담의 행동을 수상쩍이 여긴 당국에게 발각되어 감옥에 수감되고, 아담은 감옥에서 인공지능 로봇 “아트”와 생활하게 된다. 아담과 아트는 인간의 사유와 진화에 대해 이야기나누게 되고 로봇이 인간보다 더 진화한 4세대 개체라는 아트의 주장에 인간에게는 로봇과 다른 생각하는 능력과 감정이 있다고 주장하고, 수많은 대화를 통해 로봇과 인간은 지적 교감을 나눈다. 아담과 아트는 결국 감옥에서 탈출하지만 경비병들에게 발각되고, 아담은 아트에게 죽음을 부탁하고 살아있는 인간을 결코 죽이지 못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 아트는 아담을 죽이고 자신의 관념을 온라인에 퍼뜨리고는 자신 또한 파괴되어 버린다. 이때부터 공화국에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제목이기도 한 "2058 제너시스(Genesis)"는 바로 공화국에 새로운 역사, 즉 창세기와 같은 역할을 한 아담이 태어난 년도를 의미한다. 

  200여 페이지 남짓의 짧은 분량인 이 소설은 그 분량 이상으로 많은 생각꺼리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아담과 아트의 논쟁을 통해서 광물, RNA, 뇌, 관념으로 진행되는 진화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나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전기스위치를 복잡하게 연결한 깡통”에 불과한 로봇에게 과연 관념이나 사유가 존재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사유하는 로봇은 과연 아트의 주장처럼 진화의 정점에 서 있는 새로운 개체로 볼 수 있는 지, 로봇을 창조한 인류는 과연 진화단계에서 뒤처지는 열등한 개체로 전락하고 마는지 등 철학적인 주제들에 대하여 결코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게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절대 마지막 장면을 먼저 읽지 말라”는 어느 아마존 독자의 충고처럼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소개는 생략한다). 디스토피아적 인류의 미래 예측과 그에 대한 철학적 고찰,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창조된 이 주제는 어찌보면 이제는 식상할 수 도 있지만, 세계문학에서 변방인 뉴질랜드 작가인 버나드 베켓의 이 소설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인상적인 책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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