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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평점 :
그동안 미국이나 유럽 문학들은 많이 접해봤는데, 뉴질랜드 작가의 소설은 버나드 베켓의 “2058 제너시스(내인생의 책/2010년 4월)”이 첫 작품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SF 소설이라 잔뜩 기대를 가지고 책 첫 페이지를 열었다. 다 읽고 나서 서평 쓰는 지금, “뉴질랜드 문학 최고의 선인세를 갱신한 작품”, “전 세계 22개국 베스트셀러 진입”이라는 요란한 선전 글이 아니더라도 내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묵직한 주제 의식과 소설로서의 재미가 조화롭게 풀어나간 작가의 글 솜씨에 한껏 반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을 만나 즐거운 기분이 든다.
책은 아낙스가 공화국 학술원에 입학하기 위해 치르는 구술 면접 시험을 주 얼개로 하고, 인터뷰 안에 21세기 중반 인류의 역사와 공화국 생성 과정,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아담의 이야기를 액자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2052년 전 세계에 전염병이 퍼지자 플라톤은 지금의 뉴질랜드와 같은 남태평양의 외딴 섬 사방 면에 방벽을 쌓아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그들만의 공화국을 건설한다. 어느날 보초병으로 근무하던 아담이 바다를 표류하는 소녀 이브를 발견하고, 외부인은 무조건적으로 사살하라는 규정을 어기고는 그의 선임을 죽이고서 그녀를 구출해서 숨겨주게 된다. 결국 아담의 행동을 수상쩍이 여긴 당국에게 발각되어 감옥에 수감되고, 아담은 감옥에서 인공지능 로봇 “아트”와 생활하게 된다. 아담과 아트는 인간의 사유와 진화에 대해 이야기나누게 되고 로봇이 인간보다 더 진화한 4세대 개체라는 아트의 주장에 인간에게는 로봇과 다른 생각하는 능력과 감정이 있다고 주장하고, 수많은 대화를 통해 로봇과 인간은 지적 교감을 나눈다. 아담과 아트는 결국 감옥에서 탈출하지만 경비병들에게 발각되고, 아담은 아트에게 죽음을 부탁하고 살아있는 인간을 결코 죽이지 못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 아트는 아담을 죽이고 자신의 관념을 온라인에 퍼뜨리고는 자신 또한 파괴되어 버린다. 이때부터 공화국에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제목이기도 한 "2058 제너시스(Genesis)"는 바로 공화국에 새로운 역사, 즉 창세기와 같은 역할을 한 아담이 태어난 년도를 의미한다.
200여 페이지 남짓의 짧은 분량인 이 소설은 그 분량 이상으로 많은 생각꺼리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아담과 아트의 논쟁을 통해서 광물, RNA, 뇌, 관념으로 진행되는 진화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나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전기스위치를 복잡하게 연결한 깡통”에 불과한 로봇에게 과연 관념이나 사유가 존재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사유하는 로봇은 과연 아트의 주장처럼 진화의 정점에 서 있는 새로운 개체로 볼 수 있는 지, 로봇을 창조한 인류는 과연 진화단계에서 뒤처지는 열등한 개체로 전락하고 마는지 등 철학적인 주제들에 대하여 결코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게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절대 마지막 장면을 먼저 읽지 말라”는 어느 아마존 독자의 충고처럼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소개는 생략한다). 디스토피아적 인류의 미래 예측과 그에 대한 철학적 고찰,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창조된 이 주제는 어찌보면 이제는 식상할 수 도 있지만, 세계문학에서 변방인 뉴질랜드 작가인 버나드 베켓의 이 소설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인상적인 책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