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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性 - 상식과 몰상식을 넘나드는 인류의 욕망
이성주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성(性), 맑은 정신에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술 한잔 들어가면 부부간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남자들 술자리의 단골 소재이자 참 은밀하면서도 미묘한 즐거움을 주는 테마이다. 맹자의 <食色性也, 식욕食慾과 성욕性慾은 인간의 본성이다>라는 말처럼 성욕(性慾)은 인간이 가진 중요한 본래 성질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철학, 윤리, 사회 규범 등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각종 도덕과 규범들에 의해 철저히 간섭받고 통제되어 왔지만, 한편으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 “매춘賣春”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이어온 성 유희 문화는 그런 간섭과 통제해도 결코 사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마른 들판의 불길처럼 더욱 번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는 원래 재미있다”는 믿음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재밌게 풀이한 “엽기 조선왕조실록”의 작가 이 성주의 신작인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효형출판, 2010년 4월)”은 감춘다고 해서 결코 감춰지지 않는, 그동안 금기로 여겼던 각종 성에 대한 담론들을 역사적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작가는 서문인 “책을 들어가며”에서 이 책은 섹스에 관한 흥미위주의 흔한 이야기를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쟁, 경제난 등의 위기상황이 인류의 성 문화에 미친 영향들과 권력이 사회적 약자에게 가한 성적 억압과 폭력 등을 파헤침으로써, 인류의 성문화가 역사 속에서 어떤 왜곡과 굴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분석”하고자 하며, “성적 행위의 바탕이 되는 인간의 몸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고, 현대 남성의 일그러진 성의식과, 미국, 일본 등 '성문화 선도국'의 성 풍속을 살펴보고. 이로써 성이 인류사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망하려 한다”고 이 책을 쓴 집필 목적과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조금은 거창한 집필목적으로 들릴 수 도 있지만 내용에 들어가면 거침없고 익살스런 말투로 성 문화 및 역사에 대하여 부담 없이 쉽고 재밌게 설명하고 있다.
책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 중 가장 많이 소개하고 있는 미국 - 작가도 머리말에서 오해하지 말라고 살짝 밝히고 있다 -에 대해 몇가지 소개해본다. 20세기 들어 미군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성에 관한 온갖 추문들은 끊이지가 않았는데, 1,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을 가장 괴롭혔던 질병은 바로 성병이었고, 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이 전 세계에서 만든 사생아가 65만 명으로 추산되고, 전쟁 후 미군 병사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 여자만도 7만 여명에 이르는, 특히 인기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멋진 주인공 로널드 스피어스가 9부에서 전리품에 그렇게 혈안이 되었던 것도 바로 영국에 둔 유부녀 애인과 자식을 위해서라고 하니 그에 대한 환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버린다. 최근 전쟁이었던 “사막의 폭풍 작전” 걸프전에서도 미군들의 지나친 혈기왕성함은 여실히 드러나는데, 성에 대해 엄격했던 중동 율법 때문에 객고(?)를 풀 때가 없었던 미군 병사들이 부대 내 여군들에게 눈길을 돌려서 전쟁 후 여군 병사들의 출산이 줄을 이어 걸프전은 "걸프전 베이비 폭풍"작전이라고 불리운다고 하니 굳이 반미, 반제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미군은 그것(!)에 대한 것 만큼은 세계 어디서나 골칫거리인 듯 하다. 청소년 시절 제일 흔하게 접하는 미국의 포르노물, 과연 그 산업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2001년 미국 포르노 사업이 거둬들인 수익은 미국 4대 스포츠, MLB, NPL, NBA, NHL이 벌어들인 수입 전부를 합친 것보다 많았으며, 2006년 기준 인터넷 수익만으로도 미국의 전국 TV채널인 ABC, CBS,NBC 3사의 수익을 합친 것 보다 2배를 웃도는 수익을 올렸고, 현재 미국 포르노 산업 규모는 57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전 세계 포르노 산업 가운데 미국 포르노 산업이 1년에 달성하는 수익만 120억 달러 정도라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50억달러를 금융구제로 신청할 만큼 당당한 미국 포르노 산업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더욱더 발전할 그런 산업으로 그 위치를 공공히 할 것만 같다. 책에는 미국 이야기 외에도 숭고한 정신의 올림픽이 사실은 젊은 남자들의 성욕을 잠재우려는 목적으로 탄생했으며, 과연 실재했을까 의문인 정조대의 사실여부, 순결의 상징 면사포의 숨은 뜻, 비아그라 덕분에 멸종을 면한 바다표범 등등 성에 관한 다양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성에 낯부끄러운 이야기들을 한껏 담고 있어 지하철이나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서 내놓고 읽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술집에서 늘어놓는 ‘근거 없고 질 낮은’ 음담패설들과는 다른 성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그러면서도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질끈 매고는 근엄한 표정으로 성에 대한 과학적, 철학적 해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침없고 유머스러운 말투로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재밌게 풀어가고 있어 읽는 데 아무 부담 없이 술술 읽히게 만드는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결코 밖으로 그 관심을 드러낼 수 없는 성에 관한 담론들을 만날 수 있었던 오랜만에 즐거운 책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