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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만세 ㅣ 매일과 영원 6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2년 8월
평점 :
소설가 정용준의 첫 에세이집이다. 아쉽게도 작가의 소설은 <선릉 산책>에 있는 단편 2개를 읽어 본 게 전부라 잘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소설 만세>라는 제목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모든 책을 알라딘에서 구입하는데 이 책은 지난 달 아는 분이 하는 북카페에서 샀다. 요즘 신경 쓸 일이 많아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밤에 자기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과 문학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나에게도 전달되어 행복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작가는 '소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단 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를 설명하고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 (p.23)이며 '한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의 마음과 감정을 살피는 일'(p.45)이라고 말한다.
뉴스나 기사는 사건을 그저 보여줄 뿐, 그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소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묘사함으로써 보여줄 수 있다. 며칠 전부터 캐서린 앤 포터의 단편을 한 편씩 읽고 있는데 '정말 모든 소설은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자 한 사람의 특별함과 고유함을 포착해 독자에게 설명하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만이 갖는 가치란 무엇일까...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너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돕는 것. 희망이 없지만 그것이 곧 절망도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 서서히 기울어지는 것들을 바로 세울 수 없더라도 그것을 버티고 선 이들의 삶에 "수고했어. 최선을 다했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어." 말해 주는 것.(p.50)]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참혹한 삶의 현장에서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떠올랐다. 뉴스는 페스트로 아수라장이 된 상황만을 자극적으로 전달할 뿐이지만, 소설은 페스트의 공포에 맞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꿋꿋이 하는 사람들, '버티고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담담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설 만세'라는 제목은 '10여 년 전 한 동료 소설가가 책에 서명과 함께 쓴 문장'(p.9)이라고 한다. 내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이 책을 산 것처럼 정용준 작가도 이 문장이 좋아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가 이렇게 첫 에세이집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여기서 '만세'는 '좋아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드는 만세'(p.10)가 아니라 소설을 쓰는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일종의 자신에게 거는 '애처로운 주문'과도 같은 '만세'이다.
<소설 만세>는 작가의 소설에 대한 애정과 진심을 담고 있는 책이다. 20대 중반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문예 창작과에 진학하지만 문학 문외한이었기에 (기형도가 섬 이름인 줄 알았다고 함 ㅋㅋ) 남들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던 이야기는 '읽기와 쓰기'에 대한 저자의 절실함을 느끼게 해준다. 학교 근처 인터넷이 안 되는 고시원을 얻어 글쓰기에 전념한 2년의 시간, 늦게 글쓰기를 시작해 문학을 향한 열정 외에는 가진 게 없던 자신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한승원, 나희덕, 이장욱, 이승우와 같은 스승 작가들, 그러다 이제는 어엿한 소설가가 되어 대학 문예 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쓰기는 어렵고 막막하다는 자신의 마음 고백을 담고 있다. 소설가가 되기까지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겸손한 어조로 차분히 풀어 나가는 저자의 글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소설 만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소설가로서 좀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저자의 열망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소설가에게도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만의 생각과 아이디어로 가득한 자신의 소설'(p.130)을 읽고 독자들이 '어디에서 본 것 같다, 뻔하다, 재미없다'와 같은 평을 남길 때, 그것은 상처로 남아 다시 새로운 글을 쓰기가 두려워진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구하기만 해서는 안되고 '스스로 원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좋은 작가가 되길 원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동사를 필요로 한다. 읽는다. 쓴다. 생각한다. 이렇게 써 본다. 저렇게 써 본다. 고쳐 쓴다. 쓰기를 위해 용기를 낸다. 엉망인 원고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힘을 내어 고친 글을 읽어 본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고를 폐기한다. 혹은 절대로 폐기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보여 준다. 독후감을 경청한다. 다시 희망한다. 좋은 생각과 이야기가 떠오르면 좋아한다. 이 모든 것을 계속 반복한다. (p.198)]
원하면 원하는 그것을 위해 무엇인가를 계속해야 한다. 이 말은 작가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면서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저자의 이런 정직하면서도 성실한 자세와 그 순수한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져서 참 좋았다.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계속 하는 그런 끈기와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