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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옷장 - 개정판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10월
평점 :
<빈 옷장>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1940~)가 1974년에 발표한 데뷔작이다.
낙태 전문 산파에게 불법 낙태 시술을 받는 충격적인 장면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폭력적인 세상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세상과 싸우는 한 소녀의 뼈아픈 성장을 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드니즈 르쉬르'로 그녀의 부모님은 도시와 멀리 떨어진 변두리에서 노동자와 하층민을 상대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한다. 청결하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생활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유년 시절은 가난한 동네 여자아이들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드니즈에게 큰 행복감을 안겨준다. 부모는 억척스럽게 돈을 벌어 딸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이 때부터 드니즈 앞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부르주아의 청결하고 세련된 예의 바른 세상이...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세상이...
선생님과 부르주아 학생들은 자신이 속해 있던 카페와 식료품점, 부모님, 빈민층, 동네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쓰는 언어나 냄새, 행동 모든 것이 다르다. 드니즈는 도저히 좁혀질 것 같지 않은 두 세계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그녀가 학교에서 처음 배운 것은 모욕감과 수치심이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그렇게 믿고 싶지 않은데. 왜 나는 저 아이들과 달라야 하는가, 배에 단단한 돌덩이가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눈물 때문에 눈이 따갑다.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이것은 모욕이다. 학교에서 나는 모욕을 배웠고, 모욕을 느꼈다.(p.66)]
드니즈는 학교 친구들이 풍기는 여유로움과 편안함 앞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매번 말을 꾸며내거나 과장을 하고 잘 보이려고 가게 물건도 갖다 주지만 그들과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집과 학교라는 철저히 분리된 이중 생활 속에서 드니즈는 학업에 몰두한다.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공부를 선택한 드니즈는 반 친구가 대답하지 못하는 선생님의 질문에 자신이 대답할 때 자신이 '그 여자아이의 따귀를 제대로 때린 것'(p.80)과 같은 희열을 느낀다.
[이 계집애들아, 자, 드니즈 르쉬르다, 얼간이, 음탕한 년,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는 너희들보다 잘한다. (...) 나를 괴롭혔지, 엿이나 먹어라. (p.80)]
뛰어난 학업 성적으로 선생님과 학우들로부터 인정을 받음으로써 두 세계를 오가며 자기만의 사는 법을 터득한 드니즈. 그러나 부모를 향한 수치심은 갈수록 심해진다. 유년 시절 부모는 가게를 찾아오는 노동자, 하층민들 보다 우월한 존재였다. 그러나 학교에서 부르주아 세계를 접한 드니즈의 눈에 자신의 부모는 '중요한 사람들 앞에서 횡설수설하는 초라한 사람'(p.111)일 뿐이다. 그들은 예의를 모르고 높은 사람 앞에서는 말도 못하며 늘 불결한 차림새이다. 무엇보다 드니즈가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팔을 벌리고 흡입하며, 말도 하지 않고'(p.132)먹는 모습이다. '그들은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를까?'(p.131) 드니즈는 부모를 볼 때마다 '신분 상승'의 꿈으로부터 멀어짐을 느끼고 그들을 증오하며 진짜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니즈는 부모를 증오하는 자신이 '괴물'같이 느껴진다. '차라리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p.133) 좀 나으련만, 부모는 드니즈가 원하는 모든 것을 사주고 카페 일도 시키지 않는다. 오직 자식의 성공과 행복만을 바라는 부모에게 이런 마음을 품고 있으니 드니즈는 자신의 배은망덕함에 죄책감을 느낀다. '이유 없이 자신의 부모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p.135)
드니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부르주아 남학생들을 만나며 가벼운 연애가 가져다 주는 '자유와 쾌락'을 맛본다. 또한 다양한 부르주아 문화와 취향을 흡수하고 문학과 철학 책을 읽으며 '끝없는 우월감' 느끼면서 부모로부터 더 멀리 가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다. 그 결과 마침내 드니즈는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는데,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삶 앞에서 자신을 다시 한번 채찍질하는 그녀의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내가 아무리 학위를 쌓아 놓아도 절대 숨기고 싶은 것, 내 가족의 추함, 주정뱅이들의 바보 같은 웃음, 내가 얼마나 천박한 말투와 몸짓으로 채워진 멍청한 년이었는지를 감출 만큼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5년 전, 6년 전 르쉬르 딸의 모습을 문화나 시험으로 억누르지는 못할 것이며, 늘 그 위에 침을 뱉을 것이다! (p.189)]
드니즈는 대학생이 되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마음으로는 부모와의 관계를 끊는다.
신분 상승의 욕망으로 가득 찬 드니즈는 '대단한 집안', '교양있는 가정'의 법대생 마크를 만나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빨려 들어간다. 그녀는 자신의 출신과 환경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세련된 마크의 태도에 편안함을 느끼고, 그런 그의 부르주아적 취향을 닮고 싶어한다.
그렇게 드니즈가 욕망했던 부르주아의 세계...과연 그 세계는 드니즈에게 구원이 되었을까?
사립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된 소녀, 드니즈.
그녀는 자신의 '빈 옷장'을 자신이 욕망하는 것들, 부르주아적인 세련되고 우아하며 고급스러운 것들로 채워 넣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뱃속의 '수치심의 조각들'(p.214)뿐이었다.
마지막에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p.214) 라는 그녀의 물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임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정도는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소설 속 드니즈가 겪는 그런 소외감과 이질감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교실의 반은 강남에서 온 친구들이었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송파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강남과 송파가 서울과 시골의 차이만큼 극명하지는 않았지만, 그 작은 교실 안에서도 '강남 대 송파'라는 알 수 없는 두 세계가 있었고, 강남에 속하지 못한 나는 더 자세를 꼿꼿이 하고 옷도 잘 입고 다니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집안이 많이 우울했고 당시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고등학생으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없었다. 한마디로 속은 많이 외로웠는데 강남의 부유한 집 친구들처럼 여유있고 세련된 친구로 보이고 싶어서 나 자신의 어두운 면을 철저히 감추며 지냈다.
드니즈는 천박하고 무식한 부모에게 큰 증오를 느꼈지만 나는 자식의 교육과 미래에 무관심한 부모가 원망스러웠으며 오히려 자식 교육에 극성인 부모를 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었다. 특히 엄마는 아프시기도 했지만 워낙에 말이 없으시고 주변에 무관심해 정말 그 존재감이 너무나 작았는데, 나는 아직도 이 점이 너무나 싫고 슬프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히려 드니즈의 엄마처럼 천박할지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내가 뭔가가 되기를 바라는 엄마였다면 나는 좋았을 거 같다. 학교에 가면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은 불안했고, 집에 오면 아무 말 없이 힘들게 움직이는 엄마를 보며 동정심보다는 나의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그 때의 외로움과 소외감이 떠올라 중간에 가슴이 아팠다. 작가가 드니즈를 통해 쏟아내는 말들이 나의 말과 섞여 나의 상처를 되돌아보게 했고,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고,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는가...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원래 내 이야기를 잘 안하는데 이 소설은 워낙에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보니 나 또한 내 이야기를 끄집어 내게 되었다.
작가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만나 더 생생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온 이야기 <빈 옷장>, 나의 상처와 다시 만나는 시간, 나에게 그런 상처가 있었음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