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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ㅣ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평점 :
<오르부아르>는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 1951~)가 2013년 발표한 작품으로 같은 해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르메트르는 추리 소설 작가로 이미 많은 상을 받았지만,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공쿠르 상이 장르 문학 작가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은 당시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던 듯 하다. 번역을 한 임호경씨도 이분이 뜰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크게 뜨게 될 줄'은 몰랐다며, 마침내 번역 의뢰가 들어왔고 '첫 페이지부터 독자의 멱살을 붙잡'는 이야기를 '폭풍흡입'하듯이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번역은 그리 만만찮았다고 하는데, 이야기는 워낙 재미가 있어 술술 읽히지만 문학적인 뉘앙스와 테스트 속 상징과 은유, 작가의 유머와 아이러니를 한국어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았다고 역자 후기에서 밝힌다. 그것은 이 소설이 대중성은 물론 문학성까지 겸비했다는 뜻이겠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시기인 1918년 11월, 휴전 협정 체결 이야기가 나오면서 병사들의 마음 속에는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싸우고자 하는 의지는 약해진다. 그러나 모두가 다 전쟁이 끝남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다. 몰락한 시골 귀족 출신인 도네프라델 중위는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워 '세상에서 다시 한자리 차지해야 한다는 광기에 가까운 욕구'(p.41)를 지닌 인물로 113고지를 바로 눈 앞에 두고 전쟁이 끝나려 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그러던 차에 종전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독일군의 동태를 살피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 내려지고, 제일 나이많은 병사와 가장 어린 병사 둘이 정찰병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곧바로 들려오는 세 발의 총성과 함께 프랑스 병사들 사이에서는 독일군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자는 분노에 찬 소리가 터져 나온다.
결국 1918년 11월 2일, 전쟁이 끝나기까지 채 열흘도 안 남은 시점에서 프랑스 병사들은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과 탄환을 뚫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고 그 와중에 프랑스 병사 알베르는 정찰병의 죽음이 독일군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이를 본 프라델 중위에 의해 포탄 구덩이에 매몰된다. 이런 알베르를 동료 병사 에두아르가 구하게 되는데 에두아르는 그 과정에서 포탄 파편에 맞아 얼굴 반쪽을 잃게 된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약 10분의 1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전쟁의 상처만을 안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두 사람, 그러나 세상은 이런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전쟁 전 은행 출납원이었던 알베르는 에두아르를 돌보며 샌드위치 광고맨으로 겨우 생활을 이어가고, 신분을 바꿔치기해 외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에두아르는 모르핀에 의지해 그야말로 절망적인 나날을 이어간다.
국가는 전사자들을 영웅시하며 추모 기념비를 세운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상이군인들은 외면한다. 전쟁마저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비열한 사회에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은 병사들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에두아르는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을 신문을 통해 보다가 어느 날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가 돌아오고 있'음을 느끼며 부조리한 세상을 상대로 황당한 사기극을 계획하는데, 그것은 바로 전사자 추모 기념비를 이용해 일확천금을 버는 것! 처음에는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계획을 거부했던 알베르도 삶에서 그 어떤 희망이 보이지 않자 사기극에 찬성하는데 재미있는 건 이 사기극을 나도 응원하고 즐기게 된다는 점이다.
이 소설의 원제는 'Au Revoir Là-haut'으로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라는 뜻이다.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의 명령에 불복종거나 반란을 일으킨 병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는데, 이 책의 제목은 1914년 12월 4일 국가 반역죄로 총살형을 받은 병사, 장 블랑샤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남긴 말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의 말은 이 책의 제사로도 인용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신께서 우릴 다시 만나게 해주시길 바라는 하늘에서 만나요.
나의 사랑하는 아내여, 천국에서 다시 봐요……
작가는 '감사의 말'에서 장 블랑샤르를 비롯해 모든 1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을 생각할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고백한다.
국가에 의해서 영문도 모른채 전쟁터로 끌려가 사라져 간 젊은이들과 전쟁에서 운좋게 살아 돌아왔어도 다시는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던 수많은 상이군인을 생각하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3년 전 이 책의 후속작인 <화재의 색>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뻔한 전개에 조금 실망했는데, 이번에 읽은 <오르부아르>는 1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배경으로 처음부터 강렬하게 시작해 도네프라델이 벌이는 공동 묘지 사업 비리, 알베르와 에두아르의 우정과 갈등 그리고 사기 계획, 에두아르 아버지인 페리쿠르 씨가 추모 기념비 사업에 엮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등이 시종일관 긴박하게 전개, 독자는 중간에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웃기지만 슬프고, 너무 재미있지만 깊이가 있으며, 해피엔드이면서 비극이기도 한 소설 <오르부아르> 이 여름이 가기 전에 강력히 추천한다.
지구는 늘 대재앙이나 역병으로 황폐화되기 일쑤고, 전쟁은 이 둘의 조합에 불과하다. 그를 탄환처럼 꿰뚫은 것은 죽은 이들의 나이였다. 대재앙은 만인을 죽이고, 역병은 아이들과 노인들을 죽이지만, 젊은이들을 그렇게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은 오직 전쟁뿐인 것이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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