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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한 시대의 문화,예술을 통해 1차 세계대전 전후를 들여다 본 모드리스 엑스타인스의 <봄의 제전>에는 1920년대 말 '전쟁 붐'을 일으키며 출판 시장에 큰 활력을 가져다 준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레마르크의 성공은 실로 엄청나서 출판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레마르크의 대성공은 당연히 전쟁 문학의 붐으로 이어져 전쟁 소설과 회고록이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고, 대중의 전쟁에 대한 의식을 고조시킨, 전쟁 문학으로서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다.
전쟁 문학을 좋아해서 읽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책들 번역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읽기를 미루다가 <봄의 제전>을 읽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이번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역시나 중간중간 오타가 많아 아쉬웠지만, 일인칭 현재형 시점에 전쟁터의 생생함을 담은 간결한 문장이어서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1970)가 1929년 발표한 소설로 '가장 위대한 전쟁 문학'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반전(反戰) 문학의 대명사로 꼽히는 작품이다. 작가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파울 보이머와 그의 동기생들이 담임 선생의 권유로 군에 입대해 전쟁에 나가 겪게 되는 참혹한 전장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레마르크는 이 소설의 목적을 처음에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 책은 고발도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하더라도 전쟁으로 파멸한 세대에 대해 보고하는 것일 뿐이다."
18살에 군에 지원, 10주간의 혹독한 훈련을 받고 전선에 투입된 파울은 전장에서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어른들이 늘 강조했던 애국심이 얼마나 허황된 말이었는지 깨닫는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가지고 전쟁에 참가한 어린 병사들은 고통 속에서 무의미하게 죽어 나가는 전우들을 보며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확신은 의심으로 바뀌고 어른들로부터 배운 세계관은 무너져 내린다. 이들은 그저 쏟아지는 포탄 속을 뚫고 달리면서 그저 살인을 저지르는 '감정이 없는 죽은 사람'(p.127)일 뿐이다.
이들은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와도 다시 예전처럼 살아갈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파울의 친구 알베르트는 "전쟁이 우리 모두의 희망을 앗아가 버렸어."(p.98) 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외부 세계는 실체가 없는 허상일 뿐, 이제는 더 이상 그 세계에 발 붙이고 살 수 없다.
왜 죽이고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 어린 병사들, 그러나 전장 밖 외부 세계는 이들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 너무나도 헛된 죽음 앞에서 파울은 '행방불명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버림받은 상태에 있고, 나이 든 사람들처럼 노련하다. 우리는 거칠고 슬픔에 잠겨 있으며 피상적이다. 나는 우리가 행방불명되었다고 생각한다. (p.134)]
전쟁은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킨다. 파울은 적의 기관총을 피해 포탄 구덩이에 숨어 있다가 자신의 몸 위로 떨어지는 병사를 '미친 사람처럼' 칼로 푹 찌른다. 겨우 정신이 돌아온 파울은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구덩이 위로는 기관총 총알이 쉭쉭 지나간다. 날이 밝아 오고 계속되던 병사의 신음도 멈추지만 파울은 죽어가는 그의 눈 속에서 '끔찍한 공포'(p.230)를 본다. 파울은 프랑스 병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안심 시키고 물을 주며 상처 부위에 붕대를 감아 준다. '찔린 상처는 세 군데', 파울은 자신에 의해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이 괴롭다. 날이 밝고 오후 3시가 되자 병사는 숨을 거둔다. 자신이 죽인 시체와 한 구덩이에 있으면서 파울의 죄책감은 점점 더 심해지고 생각은 끊이지 않는다.
["전우여, 부디 나를 용서해다오! (...) 전우여, 어째서 자네가 나의 적이 되었던가. 우리가 이런 무기와 군복을 벗어 던지면 카친스키나 알베르트처럼 자네도 나의 벗이 될 수 있을텐데. 전우여, 나의 목숨에서 20년을 떼어 가서 일어나 다오. 아니 더 많은 햇수라도 가져가 다오. 내가 살아 있다 한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야." (p.235)]
파울은 죽은 병사의 군인 수첩을 펴본다. '제라르 뒤발, 인쇄공'
국적만 다를 뿐 자신처럼 전쟁터로 내몰린 젊은 청년이고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다.
파울은 '제라르 뒤발'에게 약속한다. 그러나 너무나 비참한 전장의 현실은 이런 파울의 약속도 공허한 자기 연민으로 느껴질 뿐이다.
["전우여, 오늘은 자네가 당했지만, 내일은 내가 당할 거야. 하지만 내가 용케 살아남게 되면 우리 둘을 망가뜨린 이것과 맞서 싸우겠네. 자네의 생명을 앗아가고, 나의 생명도 앗아 가는 이것에 맞서서 말이네. 전우여, 자네에게 약속하겠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이네." (p.238)]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전쟁의 무의미함과 기성 세대의 허위 의식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파울 보이머라는 한 병사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전장의 경험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전쟁을 일으킨 세상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다.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전쟁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재 러시아가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만 해도 전장에서 싸우는 군인은 물론이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폭격과 학살로 죽어가고 있다. 또한 세계는 전쟁으로 인한 경제 위기와 식량 문제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왜 이런 전쟁이 일어나는 것일까?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왜 몇몇 권력자들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야 하는가?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울화가 치밀어 올라 몇 번이나 숨을 깊게 쉬었는지 모른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치인들에 의해 일어나는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미래를 짓밟는 괴물과도 같은 것이다. 전쟁으로 얻는 그 이익이 과연 한 사람의 목숨과도 바꿀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레마르크의 소설은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인데, 이번 작품도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무엇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위의 물음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는 소설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제목을 읽으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