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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뒤에서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2년 전 <금테 안경>으로 처음 알게 된 작가 조르조 바사니(Giorgio Bassani 1916~2000).
그는 이탈리아, 볼로냐의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바사니는 유년기와 청년기를 페라라에서 보내는데 그의 작품 대부분이 페라라를 무대로 하고 있어 일명 '페라라의 작가', '기억의 작가'라고 불린다.
<문 뒤에서>는 페라라를 배경으로 한 연작 소설 중 하나로 1964년 출간되었다.
'나는 인생에서 여러 번 불행했다' 라는 음울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문 뒤에서>는 이탈리아 페라라의 한 유대인 소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던 '유독 암울하던 시기'의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일학년, 한창 예민한 시기의 10대 소년들이라면 응당 겪기 마련인 우정과 동경, 열등감, 미묘한 경쟁심과 같은 심리적 갈등이 소설 시작부터 내밀하게 펼쳐진다.
어느 날 문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소년, 그가 마주치는 삶의 실체는 유난히 자존심이 강한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수치이자 모욕으로 다가오고, 소년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김과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바꿔놓는다.
생의 이면에서 새어나오는 '악취'를 알게 된 것...
이 소설이 유독 슬픈 이유는 사건 자체보다 주인공이 자신의 상처를 찢고 나오지 못하고 그 상처 안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리라...다짐한 것이다.
영원히 문 뒤에 숨어 '단절과 적대감이라는 타고난 운명'에 사로잡혀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하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은 이 소설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지금도 못하고, 앞으로도 못할 것이다.' (p.159)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고스란히 지니고 살면서 그 상처 속에 숨어 살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기억'이 있기 때문에...
바사니는 '기억의 작가'가 맞다. 이 소설은 특히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