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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 상 ㅣ 스티븐 킹 걸작선 7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평점 :
<그것>은 스티븐 킹의 역작임에는 분명하자만 걸작은 아닌 듯 싶다. <그것>에 대한 여러 호평을 읽었고 작가의 재능을 인정하는 터라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만 <그것>은 여느 킹의 소설 중 평균을 조금 상횡하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선 필요이상으로 길다. 아마도 내가 킹의 편집자 였다면, 제발 분량을 줄여달라고 통사정을 했을 것이다. 킹의 놀라운 입담으로 피로를 느끼지 않고 책장을 넘길 수 있겠지만, 사실 군더더기라고 할 수 있는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작정하고 줄인다면 180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을 반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1/3만 줄여도 좀더 책읽기의 리듬이 더욱 빨라지고, 국내 독자들의 호주머니 부담도 줄었을 텐데.(물론 아둔한 독자의 쓸데없는 몽상이다^^;;)
킹의 소설을 번역한 어느 역자는 이런 말을 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이렇다. 킹의 재능은 단편에서 번뜩이고, 중편에 만개한다. 장편과 대작에서는 허술한 구성이 눈에 띄게 작품의 완성도를 깎아먹는다고...
<그것>을 읽고 그 역자의 견해에 동의했다. 적어도 <그것>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야심차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악의 도시 데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킹의 힘은 대단했지만 꽉 짜여진 플롯과는 어쩐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버리의 남편 톰이나 빌의 아내 오드리를 처리하는 맥없는 해결책은 많이 아쉽다. (개인적으로 킹의 최고작은 <사계>에 실린 네 편의 중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도 너무 '스티븐 킹스럽다.' 어린 시절의 회고와 강박관념은 킹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인데, <그것>은 마치 킹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나 소재의 집대성처럼 보인다. <내마음의 아틀란티스> <드림캐처> <총알차타기> <스탠바이 미>는 이래저래 흡사한 구석이 많은데, 그 원형이자 가장 뛰어난 작품은 중편인 <스탠 바이 미>가 아닌가 싶다. 킹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여러 작품 속에서 닮은 꼴 찾기 놀이도 재미있을 듯하다.
작품과 관계없이 편집에 대해 불평을 하면, 도무지 이 묵직한 책을 어떻게 읽으라고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것>같은 장르 소설을 특별히 시간내어 책상에 앉어 읽으란 얘긴지, 아님 그냥 폼으로 책장에 꼽아놓고 감상하라는 애긴지... 장르 소설은 자고로 한번 땡기면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혹은 친구를 기다리는 막간을 이용해 다음 페이지의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펴드는 것이 정상일터인데, 도대체 이 무거운 책을 어떻게 들고 다니란 말인가!!... 쩝.(팔 힘 약한 나만 그런가? ^^;;)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한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도 같은 이유로 불만이다. 양장에 멋지게 디자인한 표지는 좋지만 왕 큰 글자에 성긴 행간 등 쓸데없이 부피만 키웠다는 인상이 역력하다. 뭐 소장용으로 양장본을 출판하는 거야 환영하지만 보다 실질적인 책읽기를 원하는 독자의 팔을 위해 깔끔한 페이퍼백도 고려했으면 한다. 아니면 글자 크기 좀 줄여서 페이지 수라도 줄여주던지... 정말이지 양장본으로 출시된 <그것>에서 맞으면 죽는다!!!
뭐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으로 늘어놓은 불평과 독후감이었고....
지금보니 내 글도 필요이상으로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