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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은 가장 큰 장점은 잘 읽힌다는 거다. 책읽는 속도가 느린 나도 제법 속도감을 내며 읽었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말기 바란다. 책읽기의 속도감과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비례하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일본 소설을 잘 모른다. 90년초대 유행하던 두 무라카미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고, 이른바 노벨상 받은 일본작가의 몇몇 소설과 고전 몇 편, 그리고 두 무라카미 후배격인 몇몇 작가의 작품을 읽었을 뿐이다. 대체로 만족스러웠고, 흥미로웠다. 어떤 작품은 상당한 책읽기의 즐거움과 여운을 주었다.
몇년 전부터 일본 소설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다. 반갑게도 전에 접하기 어려웠던 장르문학을 필두로 여러 작가들의 신구간이 쏟아지고 있다. 적지 않은 작품이 '모모상 수상작' 혹은 '영화화'라는 수식을 달고 등장했다.
뒤늦게 장르문학에 관심이 생겨 자연스레 일본 소설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추천과 명성에 비해 기대에 못미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그 소설들이 쓰레기통에 던져넣을 만큼 한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정도 수준이 이 작가의 대표작이며, 일본 문학상의 수상작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소설의 중량감이 현저하게 가벼워진 것은 비단 일본 뿐만이 아닌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용의자 X의 헌신>은 술술 읽힌다. 살인사건을 둘러싼 천재 수학자와 물리학자의 대결이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려는 살인용의자의 심리도 나름 괜찮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표면적인 묘사에 머문다. 살인사건을 둘러싼 두뇌싸움도,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심리묘사도 산골짜기를 흐르는 개울물처럼 경쾌하지만 깊지 않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서면 수면 아래가 훤하게 보인다.
결정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모녀(초반에 노출되는 사건이니 스포일러 아님)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 묘사가 결여되어있고,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이웃남자에 대한 모녀의 심리 역시 밋밋하게 드러나 동감하기 힘들다. 같은 이유로 기시 류스케의 <푸른 불꽃>은 범인의 심리 묘사에 충실함과 동시 긴장감 넘치게 사건을 전개한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이것이 장르문학의 한계인지, 아니면 일본 소설의 한계인지, 이 작품만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평론가도 아니고... 하지만 오랜만에 오프라인에서 구입한 책인데... 책값이... 모두 선구안이 떨어진 내 잘못이다. 그래도 끝까지 읽게 할 만큼 나를 붙들었다는 점에서 별 세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