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를 200 페이지 정도까지 꼼꼼히 읽고, 그 이후는 듬성듬성 넘겨가며 읽다. 글이 못마땅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읽은 글도 있었거니와, 이 정도면 신형철이라는 문학평론가가 어떤 글을 쓰는지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단상은 이 정도에서 그치고, 그의 본격 평론집인 <몰락의 에티카>를 읽고 싶다. 출간된 순서는 <몰락의 에티카>가 앞선다. 하지만 젊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을 만나는 순서는 어쩐지 <느낌의 공동체>가 먼저인 것이 좋을 듯싶다.
신형철은 짧은 단평에서도 지식을 자랑하고, 멋을 부리고, 감수성을 뽐낸다. 그런데도 거슬리거나 거북살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글이 참 쉽다. 그야말로 글재주가 돋보이는 글들이다. 그래서 더욱 진짜배기가 실린 <몰락의 에티카>가 궁금해진다.
쉬운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글을 쉽게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반대로 어려운 글은 독자를 진저리치게 만든다. 특히나 현학을 뽐내려는 과시욕과 자기애에 빠진 사람들의 글을 보면 짜증스럽다 못해 한심하다.
언젠가 원로감독의 회고전을 위한 소책자를 읽은 적이 있다. 소책자 첫머리에 알만한 영화평론가가 쓴 원로감독에 대한 헌사는 그야말로 코미디였다. 불과 2페이지짜리 헌사를 20분 넘게 낑낑거리며 읽었는데,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난감.
‘개별적 영화들의 차이가 빚어내는 운동을 XXX(감독 이름)으로 보자’는 둥, ‘급변하는 시대적 공기와 제도와 환경의 작용과 관습과 포기되지 않은 예술적 자율성과 상호작용으로 개별 작품을 바라보라’는 둥, ‘그 과정을 통해 XXX을 주어가 아닌 술어로 드러내라’는 둥, ‘XXX적이라는 하나의 메타 언어로 되돌아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둥... 이게 무슨 개소린가!! 평생 한국적인 것을 고집했고, 영화로만 삶을 이야기해온 노감독이 이 ‘개소리’를 끝까지 읽었을까? 읽었다면 무슨 소리를 했을까?
닥치고 영화나 봐.
멍멍...
현학으로 자기 한심함을 폭로하는 아이러니. 영화연구가와 영화평론가들의 글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낯 뜨거운 코미디.
아무튼, 한국문학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변화를 모르는 문예지는 언제부턴가 관심 밖이다. 유명작가가 출간한 수준 미달의 신작에 대해 입바른 평론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는다. 시대저항과 예술혼을 어쩌구 하면서 지들끼리는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세기가 바뀌도록 이어오고 있지 않나? 차라리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소설이나, 스티븐 킹의 신작을 읽는 것이 감동적이고 신난다. 예술혼을 맛보고 싶으면 부커상 수상작이나, 노벨문학상 작가들과 씨름하는 것이 낫다 싶다.
그런데 신형철같은 글 잘 쓰는 평론가의 책은 독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한국문학에 대한 순정과 싫은 소리 못하는 소심함은 여전히 마뜩치 않다. 하지만 그가 소개한 아름다운 시와,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는 아름다운 글은 불신으로 가득한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리고 그가 소개한 시에 손이 간다.
<몰락의 에티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