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여 페이지의 얄팍한 두께, 시집크기만한 판형, 거기에 아이스커피 한 잔 정도의 가격. 살림지식총서다. 대략 목록을 훑어보다가 몇 권을 주문했고, 군것질하듯 읽었다. 

초,중,고등학교, 대학까지 꾸역꾸역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에 대해 한 번도 공부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물론 이과생이기 그랬을 지도ㅡ.ㅡ) 암튼 영어수업 시간에 문법공부를 하고, 시험 때마다 틀린 문장 찾기 문제를 풀곤 했지만, 우리 말 문장에 대한 공부를 했던 기억은 없다. 지금 세대의 국어교육을 그 때와 다르리라 믿고 싶다.
살림지식총서 376번은 <좋은 문장 나쁜 문장>이다. 이오덕의 저작만큼 투철하거나 다양하지는 않지만 우리 말 문장을 바로 쓰기 위해 기억해야할 기초적인 사항을 정리하고 있다. 우리말의 꼴과 변화에 깊이 있는 설명이 아쉽고, 우리말이 잘못 쓰이고 있는 현장을 꼬집는 실례가 부족하다. 하지만 이를 원한다면, 고종석의 글이나 이오덕의 글을 읽어야할 것. 군것질 거리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홍콩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내가 홍콩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의 팔할은 홍콩영화에서 배웠다. 그러던 홍콩이 슬그머니 내게 낯선 곳으로 변했다. 홍콩영화가 몰락하면서 홍콩을 만날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기 때문일까? 어느새 홍콩보다 중국이 부쩍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다. 중국에 수개월 머물었던 것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 반면 홍콩여행을 극히 짧았다. 그래도 오래전 여행에서 들었던 광동어 억양의 유쾌함을 잊을 수 없다. 여전히 북경어보다 광동어를 듣는 것이 좋다. DVD로 예전 홍콩영화를 다시 볼 때 주인공들의 실제 목소리(광동어)가 얼마나 반갑던지. 요즘 홍콩배우들이 본토영화에 출연하며 북경어를 하는 것이 낯설다. 아무튼 홍콩은 예전 같지 않고 낯선 곳이 되었다.
살림지식총서 330번째, <홍콩>은 홍콩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훑을 수 있는 알뜰한 요약판이다. 홍콩이 우리가 알고 있는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말고도 2305개의 섬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 먹거리 천국이며, 동서양의 혼재된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홍콩인의 삶 속에 드러나는지, 진정한 의미의 홍콩인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지, 중국반환 전후로 홍콩에는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흥미롭다. 언급하는 것마다 자연스레 그간 보아온 홍콩영화의 장면이 오버랩되곤 했다. 1960년대 쇼브라더스 영화부터 80년대 성룡과 주윤발의 영화를 거쳐, 최근작품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의미가 새겨지기도 한다. 홍콩의 과거와 현재를 짤막하게 짚어보며, 홍콩의 미래까지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이 책은 홍콩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중국을 이해하는데 제법 도움이 된다. 

 

솔직히 놀랐다. 이 얄팍한 책 속에 어쩌면 이렇게 알찬 내용이 들었는지. 살림지식총서 62번 <무협>은 시종일관 ‘협(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이 고룡, 김용, 와룡생 등의 무협소설에 대한 예찬이나, 싸구려 무협지에 대한 오타쿠식 지식들을 뽐내거나, 무협영화에 대한 숭배로 ‘무협’을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마천의 <자객열전>과 <유협열전>에 등장하는 당대 유협(遊俠)과 호협(豪俠)을 이야기하며, 협의 개념을 정의하고 중국인의 역사와 문화 속에 협의 개념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본다.
협은 늘 ‘지기知己’를 최우선으로 한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 어떤 명분이도, 대의도, 목숨도 중요하지 않다.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러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신념 앞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협은 합리성과 명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리석기 그지없다. 이런 유별난 캐릭터를 중국의 역사(사마천의 사기)는 기록하고 숭상한다. 책을 읽고 나니 중국 말고 다른 나라에 협과 같은 캐릭터를 이렇게까지 높이 산 예가 있었나 싶다. 일면 이해할 수 없는 협의 개념을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삶 또한 내가 바라는 것이다. 바라는 것 가운데 삶보다 더한 것이 있기 때문에 구태여 얻으려 하지 않을 따름이다. 죽음 또한 내가 싫어하는 것이다. 싫어하는 것 가운데 그보다 더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피하지 않으려는 따름이다. 사람이 바라는 것 가운데 삶보다 더한 것이 없다면 삶을 구해야지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사람이 싫어하는 것 가운데 죽음보다 더한 것이 없다면 그 어려움을 피해야지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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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산책 2010-06-29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살림지식총서..급땡기네요..함 훑어봐야겠어염~ㅎㅎ
군것질하듯 알음알음 읽으신 그 맛이 얼마나 달콤하셨을까나~^^

lazydevil 2010-06-30 11:34   좋아요 0 | URL
작고 가벼워서 지하철에서 읽기 편했어요.
오랜만에 가벼운 책, 전자책 보는 옆자리 처자가 부럽지 않았답니다.ㅎㅎ

이매지 2010-06-2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는 레이지데블님이 이과생이셨을 꺼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살림지식총서는 정말 군것질하듯 읽기 좋은 듯^^
저도 좋은 문장~에는 관심이 가네요 :)

lazydevil 2010-06-30 11:37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인문학쪽에 구멍이 뻥뻥~~ 뚫려있답니다. 체계가 없걸랑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