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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다시 읽은 <동물농장>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비범한 문제의식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우화로 끌어내린 오웰의 능력은 참으로 탁월하다. 웃음과 눈물을 통해 전달하는 섬뜩한 문제의식은 그야말로 마치 잘 만든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충격적이다. 나폴레옹이 두 발로 걷다니!
<동물농장>과 <1984>는 함께 읽어야한다. 둘은 쌍둥이 같은 소설이니까. <동물농장>은 <1984>의 어린이 버전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1984>는 <동물농장>의 SF 버전으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자신이 읽은 세상을 풍자적으로 형상화했고, <1984>에서 논리와 상상력을 동원해 증명해 보인다. 그러니까 <동물농장>이라는 풍자적 ‘명제’를 <1984>에서 이론의 틀을 제시하는 한편 ‘동물농장’의 지배자 나폴레옹이 두 발로 걷게 된 이후의 세상(빅 브라더의 국가)까지 보여준다. 이렇게 ‘동물농장/빅 브라더의 국가’는 완성된다.
공교롭게도 이 책은 <동물농장>과 <1984>를 함께 묶지 않았다. <동물농장>과 함께 실린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오웰이 죽기 전 완성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오웰이 작가로서 이력을 처음 시작한 시기에 출간된 이 작품과 <동물농장>의 연관성을 찾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하다. 작품 자체를 즐기면 된다. 룰룰라라~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동물농장>이나 <1984>와 달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들리지 않다. 하지만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따라지 인생, 즉 하류인생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이다. 작가의 실제 경험담과 허구의 경계를 오가는 이 작품을 르포타주라 해야 할 지, 소설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주인공 ‘나’(그래 오웰 자신이라고 치자!)가 겪는 파리와 런던의 삶은 가히 충격적이다. 가난의 무게는 오웰을 굶어 죽기 직전까지 짓누른다. 또한 운좋게 생긴 일자리는 살인적인 중노동을 요구한다. 굶거나 죽도록 일하거나! 모두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버텨내야할 것들이다.
달리 말하면 돈벌이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요령껏 굶으며 버텨야하고, 굶지 않기 위해 죽도록 힘든 일을 해야한다. 어느 것이든 인간다운 삶에 대한 최소치마저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최악의 상황은 오웰이 파리 생활을 접고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을 때 더욱 비참해진다. 거리로 내몰린 부랑자가 된 것. 그러니까 파리의 생활이 ‘오웰의 도시빈민 체험’이라면. 런던 편은 ‘오웰의 노숙 일기’다.
이렇게 비참한 이야기가 구구절절 사실적으로 펼쳐지는데도, 이 작품을 읽는 것은 즐겁고 유쾌하다. 1930년대 파리와 런던의 도시빈민을 바라보는 오웰의 눈이 따스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들이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끈끈한 무기, 즉 초월적인 긍정과 여유, 온정에 감화된 것이 분명하다.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작가와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파리와 런더의 따라지 인생>은 밝고 유쾌하며, 즐겁다.
<동물농장>, 떠오른 생각
-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 <동물농장>은 꽤나 깜찍한 유머를 담고 있어 수시로 낄낄거리며 읽었다. 가령 양들이 외치는 구호, “두 발은 나쁘고, 네발은 좋다!”가 반복될 때마다 날선 풍자가 읽히는데, 다른 한편으로 귀엽고 깜찍한 동화적 이미지가 떠오른다. 털이 몽실몽실한 양들이 몰려다니며, “두 발은 나쁘고, 네 발은 좋다!”를 외치는 그림이라니!! 암말 몰리가 분홍색 리본에 집착하고, 각설탕에 환장하는 모습은 또 어떻구! 오웰은 각 동물들의 습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