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묘촌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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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팔묘촌>이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중 ‘빅5’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말이죠. <팔묘촌>은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기괴한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린 한 남자의 모험담입니다.

또 기대하지 말아야할 것은 이 작품이 탐정소설 특유의 트릭입니다. 실현 불가능한 완전범죄나 용의자의 완벽한 알리바이 따위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의 첫 작품인 <혼징가 살인사건>에서 보았던 밀실 살인사건같은 굉장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독약을 먹은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연쇄살인사건일 뿐이에요. 당연히 탐정소설다운 논리적 수사가 주는 재미를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팔묘촌>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공포소설 뺨치는 설정과 서스펜스 때문입니다. 380백년전 패주한 무사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몰살당합니다. 무사들이 가지고 있던 황금을 빼앗기 위해서죠. 그런데 황금은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그리고 다시 350여년이 흐른 후 마을에서는 하룻밤에 30명이 사살 당하는 참혹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자취를 감추죠. 다시 26년이 흐른 후 자취를 감춘 범인의 아들이 마을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연쇄살인이 벌어집니다. 마을사람들은 아들을 의심하고 동시에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설정이에요. 마을을 둘러싼 기괴한 역사, 과거 참사, 현재의 연쇄살인이 얽히면서 공포를 더해가죠. 주인공의 주변인물이 픽픽 죽어갈 때마다 서스펜스도 적절히 유지되는데, 아마도 요코미조 세이시의 전략은 논리적 추리가 아닌 공포였던 것 같습니다.

탐정소설이나 공포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긴장감(혹은 공포감)을 유발시키는 서스펜스적 요소와 논리적 사건 추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 합니다. 특히나 이야기의 주체가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이 되었을 경우는 더욱 그러하고요.

예를 들면 공포 서스펜스물의 걸작인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역시 탐정이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 않습니다. 뛰어난 탐정은 늘 용의자를 머릿속에 담고 있고, 이성적인 시선으로 살인사건을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심리가 발현된 공포가 끼어들기는 힘들죠. 자연히 이야기의 주체는 피해자들 중 하나일 수밖에 없죠. 이쯤 되면 왜 긴다이치 고스케가 미미하게 등장하냐고 불평할 수 없습니다. <팔묘촌>은 독자에게 공포를 안겨주려고 쓰인 작품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팔묘촌>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아주 흡사한 구성(컨셉?)을 가지고 있군요.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을 불과 세 작품을 읽었을 뿐입니다만, 요코미조 세이시는 <팔묘촌>같은 변종 탐정소설보다 본격 탐정소설을 더 잘 쓰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인물의 심리묘사는 단선적이기 그지없는데 이마저도 중언부언하고 있습니다. 공포를 끌어내기는 역부족이었어요. 아무리 출중한 ‘공포 소스’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요. 생각해보면 일본 특유의 문화적 특징이 드러난 본격 탐정소설이었던 <혼징가 살인사건>이 훨씬 간명하고 재미있 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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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10-03-04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zydevil님 리뷰는 역시 최고에요~
스포일러 누설없이 저 정도로 잘 분석해 내시다니...감탄할 따름입니다.
전 <팔묘촌>, <옥문도>읽었는데, 다 별로였어요ㅋㅋㅋ

lazydevil 2010-03-05 02:07   좋아요 0 | URL
우아~~~ 쥬베이님 격하게 반갑다는 말밖에!!!!!!!!!

Forgettable. 2010-03-04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저는 팔묘촌도 나름대로 재밌게 읽었어요. 리뷰도 쓴줄 알았는데 안썼네요. ㅋㅋ
뭔가 모험담이랄까.. 추리보다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더라구요.

전 요코미조세이시 참 좋아하는데. 왜인지 옛날 느낌이 참 좋더라구요 ㅋㅋ 얼마 전에 나왔던 악마가 피리 어쩌고는 진짜 별로였지만;;

여튼 [혼징가 살인사건]을 아직도!!! 못봤는데, 얼른 봐야겠어요.

lazydevil 2010-03-05 02:06   좋아요 0 | URL
저도 일본 특유의 옛날 느낌은 참 좋았어요. 부러울 정도로 일본적인 것을 장르물에 잘 드러내는 작가인 거 같아요^^ 그니까 대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