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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ㅣ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필립 K 딕은 천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작품 말고 단편집 한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의 상상력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작가의 독특한 발상과 이상한 유머로 가득 찬 작품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납니다. 다만 그 놀라운 발상과 유머에 쉽게 동화하기 힘들어 난감하고 당황스러울 따름입니다.
그가 SF 작가로서 천재임은 분명하지만 소설가로서 천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발상에 비해 이야기는 허술해요.(장편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보다 이전에 읽은 단편이 훨씬 강렬하게 다가온 것도 작가의 이런 특성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물의 심리묘사나 갈등, 이야기의 구성에는 그 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못 읽어줄 정도로 엉성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독보적인 상상력에 비해 눈에 띄게 처진다는 거죠. SF작가지만 문학성이 돋보이는 어슐러 K. 르귄과는 분명히 다른 타입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직설법으로 이야기해도 쉽지 않은 철학적 문제를 다층적인 은유, 아이러니, 이상한 유머를 뒤섞어가며 다루고 있거든요. SF소설이란 장르가 낯설기도 하고요.
솔직히 SF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상상력이 빈곤한 독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SF 소설에만 등장하는 이런 묘사가 어쩐지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종종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이 작품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홀든 말이야, 척추에 레이저 총을 맞고 지금 마운트 시온 병원에 있어. 최소한 한 달은 입원해야 될 것 같아. 요즘 나온 유기 플라스틱 척추 조직을 구해서 이식할 때까지 말일세.”(pp.47)
‘요즘 나온 유기 플라스틱 척추 조직’이라뇨. 가끔 고전 SF소설을 읽다보면 이와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장황하고 긴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벽걸이 TV나 휴대폰 영상통화를 말하는 걸 알고 맥이 풀리곤 합니다.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SF작가들의 탁월한 상상력이 경이롭기도 하지만, 시대가 변한 지금 한편으로는 군더더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상상력이 빈곤한 독자는 SF소설보다 SF영화가 훨씬 편리하고 신납니다. 그냥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블레이드 러너>나 <공각기동대>같은 영화가 훨씬 쉽게 와 닿아요. <유년기의 끝>보다 <노잉>같은 영화가 더 재밌고요. 물론 작품의 완성도를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기대와 달리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전혀 별개의 작품입니다. 살아생전 필립 K 딕은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가 자신의 작품과 아무런 상관없는 작품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영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읽어보니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참고로 소설 속 주인공 데커드는 둥근 얼굴에 대머리입니다. 외모부터 한창때 해리슨 포드의 귀여운 모습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