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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심판한다 - 마이크 해머 시리즈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30
미키 스필레인 지음, 박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스필레인의 <내가 심판한다>는 이해할 수는 있지만 사랑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이해할 수 있다는 건 마크 해머 시리즈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는 점입니다. 매그넘 45구경으로 가차없이 상대방 몸뚱이에 구멍을 뚫고, 등장하는 여자마다 속살 모드로 므흣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거기에 스토리라인도 썩 나쁘지 않습니다. 사건도 스피디하게 전개되고요.
그러나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마크 해머라는 탐정이 비호감 그 자체라는 겁니다. 전쟁영웅 출신의 마초 탐정 마크 해머는 지금까지 만난 하드보일드 계열의 탐정 중 최고의 비호감 캐릭터였습니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마크 해머 이상으로 강압적이고, 일방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마초형 캐릭터를 만난 바 있습니다. 더티 해리 시리즈의 해리 칼라한이 그렇고, 데드 위시 시리즈의 주인공 폴 아무개가 그랬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마크 해머의 피를 물려받은 냉혈자들일 겁니다. 80년대를 풍미했던 람보나 코만도 류의 영화도 마크 해머의 후예겠죠. 그런데 이들에 대한 거부감보다 마크 해머에 대한 반감이 더 큰 건 무슨 이유일까요?
아마도 마크 해머 시리즈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로 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든 더티 해리나 람보, 코만도 같은 녀석들은 액션영화의 주인공입니다. 그들의 첫 번째 미션은 관객 대신 악당들을 실컷 두들겨 주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캐릭터라는 것이 없이 좀 무식하고 단순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걸 기대하고 극장에 갔고, 비디오나 디비디를 빌렸으니까요.
하드보일드 장르는 다릅니다. 그동안 이른바 하드보일드 소설로 분류되는 작품들을 통해 학습된 것이 있거든요. 샘 스페이드이든, 필립 맬로우든, 루 아처든 그들이 써가는 냉혹한 수사일지 속에는 말랑말랑한 감성을 슬쩍 숨어있습니다. 어찌 보면 ‘진짜 남자’인 척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섬세하기 그지없는 내면을 은밀히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위 하드보일드 대표작으로 불리는 작품을 읽으면 항상 알싸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거기에 길들여진 거죠. 그래서 마크 해머 식 막무가내 수사일지는 예상 밖이었고, 기대 이하였습니다.
잘 만들어진 액션영화로 해머 시리즈가 다시 탄생한다면 관심을 두겠지만, 소설로 만나는 것은 좀처럼 힘들 것 같습니다.
참,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중 <펄프 픽션>이라는 영화가 있죠? '펄프 픽션'이 싸구려 대중소설을 의미한다죠. 읽는 내내 이게 진짜 펄프 픽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