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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수확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71
대쉴 해미트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평점 :
대실 해밋의 <피의 수확>은 ‘어이쿠~’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작품입니다. 이렇게 까지 몰아붙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장르의 정확한 뜻이야 어찌되었건 ‘하드보일드’라는 말만 놓고 보면 <피의 수확>이야말로 진짜 ‘하드보일드’입니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그야말로 펄펄 끓는 물이 남긴 주전자의 뚜껑처럼 쉴 틈 없이 들썩거리거든요.
<피의 수확>은 한편의 갱스터 영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일명 포이즌 빌은 범죄자와 비리 경찰이 장악한 작은 도시입니다. 의뢰받은 사건 때문에 이 마을에 오게 된 주인공 ‘이름 없는 탐정’은 이곳의 지배자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습니다. 이것이 주인공의 심기를 건들인 거죠. 결국 주인공 ‘이름 없는 탐정’은 포이즌 빌을 지배하는 더러운 범죄자들을 깡그리 쓸어버리기로 마음먹습니다. 그것도 혼자 말입니다. 악당들을 상대로 고담시를 지키는 배트맨처럼 말입니다.
<피의 수확>에 등장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악당들뿐입니다. 그것도 비열하고 의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진짜 나쁜 놈들이죠. 그들은 서로를 속이고, 배신하고, 죽이는 개싸움을 벌이는데 이 과정을 주인공은 냉혹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이름 없는 탐정’조차 그리 도덕적인 인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그래서 이 작품이 하드보일드 소설의 시초라 불리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마디로 이렇게 까지 악당들만 등장하는 작품은 보다보다 처음입니다. 휴우~
대형 버스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악당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의 끝은 당연히 이들이 모두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피가 행간에 묻어나겠습니다.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주먹질이 오갑니다. 자동차를 타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살벌한 총격전도 여러 차례 벌어집니다. 이런 상황이니 독자도 딴 생각할 여가 없습니다.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남지를 쫓아가기에 바쁘거든요.
<피의 수확>은 빼어난 완성도가 돋보이는 작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솔직히 지나친 폭력 묘사는 눈에 거슬리고,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악을 척결하려는 이유도 선뜻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인물들도 중구남방으로 등장하고요. 하지만 이런 모든 문제점을 한방에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 만한 강렬한 ‘다크 포스’를 지닌 작품입니다. 독자들은 그 힘에 압도되거나 거부감을 일으키거나 하겠죠. 저는 어느 쪽인가 하면, 그 다크 포스에 매료되는 쪽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실 해밋의 명성이 허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과격한 하드보일드는 힘들어요. 아무쪼록 독자들에게 하드보일드 포스가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