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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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 그것은 내려놓는 것이다.

혈기왕성한 체력, 지성, 아름다운 미모 등 나이가 들어가며 우리는 내려놓는 것을 배운다.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하나 둘씩 내려놓는 과정은 잃어가는 본인도 고통스럽지만 지켜보는 보호자에게도 쉽지 않다. 포기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게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가 아닐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힘든 내려놓음이 아닐까.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작가가 어머니의 치매를 지켜보며 써내려간 자전적 에세이이자 소설이다.

'자신이 체험하지 않는 일을 허구로 쓰지 않는다는 작가는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엇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이 문구 앞에 얼마전 화자가 되었던 공익 광고를 생각한다.

"엄마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 강렬한 카피는 치매의 모든 걸 설명한다. 모든 병 중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급격하게 역전되는 관계. 부모는 자녀가 되고 자녀는 부모가 되어 아이처럼 모든 걸 돌보아주어야만 한다. 처음에는 부분적인 돌봄이 전인격적인 돌봄으로 바뀐다. 하지만 우리가 광고에서 보았던 "엄마의 엄마가 되었습니다"라는 문구처럼 우리가 부모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저자 아니 에르노는 엄마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엄마의 엄마가 된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는 엄마처럼 해 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부모처럼 우리의 부모님을 돌볼 수 없다. 그러기에 저자가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가 없다고 했듯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은 사실이다.


어머니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다.


어머니의 상태가 악화됨에 따라 어머니의 거처도 바뀌어져간다. 집에서 병원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요양원으로 하나씩 마지막을 준비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악화되 가는 어머니의 상태를 바라보며 저자는 깊은 죄책감에 휩싸인다. 과연 그 죄책감에 자유롭지 않은 자녀가 얼마나 있을까. 병마에 시달리는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는 자녀의 심정 중 가장 큰 감정은 바로 '죄책감'일 것이다.

저자의 '죄책감' 감정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엄마에게 가지는 감정을 돌이켜본다.

저자의 어머니처럼 '치매'는 아니지만 나의 엄마도 불치의 병을 앓고 계신다. 엄마의 병명을 의사에게 확진받았을 때 나와 오빠 그리고 동생이 느꼈던 감정은 바로 '죄책감'이라는 한 단어였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엄마의 상태를 잘 몰랐다는 것. 그리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사실. 결국 우리가 엄마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우리를 내내 힘들게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실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그럼에도 살아야 하고 사회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더 큰 죄책감을 일으켰다.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엄마의 상태가 악화될수록 죄책감은 커져갔다.

자주 내려가던 부모님 방문도 바빠지며 뜸해져가고 가끔씩 엄마를 뵐 때마다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도 고통이었다.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의 고통을 바라만 보며 내가 느낄 수 없다는 건 나를 깊은 죄책감에 빠뜨렸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에서도 저자 또한 그런 죄책감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랐다.


엄마의 병 확진 후, 엄마의 몸 상태를 알리는 게 우리들의 큰 숙제였다.

아빠는 차마 그 역할을 하지 못하셨고 오빠는 스스로 이 숙제를 떠맡았다.

오빠는 울면서 엄마의 병명을 알렸고 엄마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제발 10년만이라도 살아달라고. 힘들겠지만 살아달라고. 절대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다혈질인 성격과 달리 마음도 여리고 겁도 많은 엄마가 쉽게 자포자기할까 무서운 오빠의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저자의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란 저자의 글이 오빠가 엄마를 향한 울부짖음이 겹친다. 어떤 모습으로라든 우리 곁에 존재하기만을 바라는 마음. 그 처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은 저자의 어머니가 생전 마지막으로 쓴 글이었다.

밤... 그건 아마 인생의 암흑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나씩 내려놓으며 조금씩 어둠은 짙어진다.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 밤이 길어지듯 병마는 깊고 긴 어둠으로 인도한다. 그럼에도 저자의 어머니가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라고 쓴 건 힘듬에도 그 밤을 껴안고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몸부림처럼 들린다.

엄마 또한 나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 너희를 위해서 살아간다."

살아있다는 건 하루를 또한 고통 속에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고 감내해야 하고 더 악화되는 자신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의 엄마도 나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자신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힘들지만 밤을 껴안으며 어둠을 통과해간다.

책을 읽으며 내내 후회했다. 왜 나는 이 책을 읽었을까. 비록 저자와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편찮으신 엄마를 지켜 보는 자녀의 입장으로 저자와 비슷한 감정 기복을 느끼며 저자의 어머니 모습 속에 나의 엄마 모습을 비추어보곤 했다. 읽는 동안 결코 쉽지 않았던 소설이였다.

이 책에서 가장 큰 울림을 꼽느라면 단연 제목이자 저자의 어머니가 쓴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이다. 나는 저자의 어머니의 마지막 문장에 엄마의 살아있음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고 이 문장 속에 엄마의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알아간다. 밤을 떠나지 않는 엄마가 유난히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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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잭 홀런드 지음, 김하늘 옮김 / ㅁ(미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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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가 첫 손님이면 재수가 없다."

"여자가 기가 세다."

모두 여성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발언들이다.

택시에 여자가 첫 손님이면 재수 없다면서 승차를 거부하는 택시 기사도 있었고 여자가 똑똑하면 망조라며 못마땅해했다. 지금에서야 그런 기세가 눌렀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런 여성 혐오 말들을 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여성을 비하했을까. 언제부터 여성을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여겼을까. 그 근원은 어디일까?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는 여성 혐오의 역사를 추적해 올라간다.

여성 혐오는 만연해 있고

끈질기며 유해하고 변화무쌍하다.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의 저자 잭 홀런드는 남자이다. 그는 이 작업을 딸과 함께 작업하며 집필해 왔다.

다가온다. 이제까지 주류세력인 남성들이 비주류였던 여성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현재까지 여성 혐오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연구한 작품이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데 가장 잘 쓰이는 신화이다.

저자 잭 홀런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여성 혐오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분석한다. 가령 제우스가 다른 여성을 강간하여 태어난 신화는 제우스의 여성 혐오를 정당화해주는 구실이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남성이 여성을 함부로 대하도록 읽혀졌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심지어 아테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여성의 배움을 억제하라고 강요했다.


"여성이 이성을 발달시키지 못하게 하라.

그건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에서는 과연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까.

슬프게도 우리는 하와의 존재부터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배운다. 뱀의 꾀임에 넘어가 이 세상에 죄악이 들어오게 한 존재. 그 죄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고 비난한다. 또한 믿음을 위해 여성의 화장을 거부하고 남편이 죽으면 그 친인척에게 결혼시키는 법률 등 성경의 말씀이 여성들을 혐오하는 수단으로 종종 이용되었음을 저자는 파헤친다.

그리스와 로마의 여성 혐오자들은 도덕적인 결함을 지적하며 끊임없이 여성을 질책했다.

그런데 여성 혐오의 역사에 신의 반감이라는 새롭고 강력한 요소가 추가되었다.


이 밖에도 저자는 문학 작품에서 나타나는 여성 혐오의 역사를 소개한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서정시와 여성 혐오를 분출하는 시가 동시에 나타나며 설전을 벌인다. 여성의 의견은 없이 화장을 반대함 여성의 자립을 막고자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에 대해 모호한 결론을 내리고 계몽시대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루소는 여성이 '복종해야 하는 성'이라는 믿음을 정당화했다. 시대에서는 계몽을 외치었을지언정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은 전혀 발전이 없었다.

저자 잭 홀런드의 말처럼 여성 혐오의 역사는 끈질기게 변화하며 괴롭혀왔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변화하며 이 사회에 만연해 왔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여성 혐오란 우리의 생각보다 매우 오래되었으며 한순간에 마술처럼 사라질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대로 포기해야 할까? 그리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여성 혐오를 우리는 자포자기해야 할까?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책 말미에 수록된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 줄 필요는 없다>의 저자인 이라영 사회학 연구자의 특별 서평을 꼭 읽어야만 한다.





지금도 여성 혐오의 역사는 변화무쌍하게 쓰이는 중이다.

그러나 혐오의 역사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는 저항의 역사도 있다.

무력하고 수동적인 피해자로 살지 않았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그 저항의 역사가 축적되어 오늘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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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 한 권으로 읽는 오리지널 명작 에디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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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의 대작이자 방대한 시리즈인 『안나 카레니나』를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크게 대조되는 두 가지 사랑으로 나눌 수 있다.

사교계의 여왕이자 화려한 안나 카레리나. 그녀는 가정도 있고 주변의 부러움도 받지만 공허함을 느낀다.

동생 부부의 문제를 중재해주기 방문한 안나 카레니나는 브론스키 백작의 열렬한 구애에 빠져 가정을 버리고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택한다.

열렬한 안나 카레리나의 사랑과 대척점에 서 있는 또 한 명의 인물은 레빈이다.

결혼이 일생일대의 축복으로 여기며 선량한 삶을 꿈꾸는 레빈은 브론스키에게 버림받은 여성 키티를 만나 결혼하며 소박한 사랑을 한다.

화려한 안나 카레리나의 도시에서의 생활과 레빈과 키티의 농촌에서의 삶. 이 둘은 철저히 평행선을 걷는다.

이혼을 요구하지만 응해주지 않는 남편때문에 집을 버리고 브론스키와 떠나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 불행한 결말을 선택한 안나 카레리나. 톨스토이의 시대에 가정을 버린 선택도 놀랍지만 안나 카레니나가 끝내 불행을 선택한 과정 또한 놀라움을 자아낸다.

톨스토이는 무엇이 그녀를 불행에 이르게 했나를 알게 하기 위해 대조되는 레빈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웠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신에게 의존하며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는 레빈과 키티 부부의 모습을 통해 톨스토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남긴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이 정답이 아님을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나 카레니나를 결코 부도덕하다고 매도하지 않는다. 비록 그녀의 선택은 옳지 않았을지언정 안나 카레니나의 공허한 심리를 충분히 대변한다. 아내이자 엄마이지만 한 여성으로서 사랑받고자 했던 그녀의 욕구가 안나 카레니나를 응원하지 못한다 해도 그녀의 심리에 공감을 하게 한다.

한 권의 책으로 압축되어 방대한 분량에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좋은 입문서가 될 듯하다. 먼저 이 한권의 책을 읽은 후 시리즈로 읽는다 하여도 좋은 디딤돌이 되어줄 듯하다. 『안나 카레니나』는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럼에도 한 여성으로서 안나 카레니나의 욕구가 공감이 되면서 과연 레빈의 기독교적 삶이 정답일까라는 생각 또한 들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여유가 될 때 다시 곱씹어 천천히 재독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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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 - 올드 사나에서 바그다드까지 18년 5개국 6570일의 사막 일기
손원호 지음 / 부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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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아랍은 신비의 장소였다. 사막, 낙타, 오일이 떠오르던 아랍. 하지만 이제는 독재, 내전, 알카에다 IS라는 이미지가 대표되곤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우리의 이미지는 언론에서 들려주는 뉴스로 상상해 왔다. 정작 우리는 아랍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듣지 못했다. 과연 아랍은 덥고 무섭기만 한 나라일까?

여기 18년 5개월 동안 아랍 국가에서 생활하며 아랍을 사랑하는 사람의 아랍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는 저자 손원호씨가 이집트, 예멘,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직접 보고 겪은 진짜 아랍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먼저 아랍의 이미지는 뭐가 떠오르는가. 광활한 사막을 건너는 도도한 낙타의 아라비아 상인이 떠오른다.

아라비아 상인처럼 낙타의 등에 물건을 주렁주렁 싣고 가는 아라비아 상인의 모습처럼 낙타는 사막에서 가장 강한 동물이다. 이 아랍 이야기에도 사막이 빠질 수 없다.


우리에게는 그저 이동수단으로 알고 있는 낙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낙타가 본격적으로 사막에서 쓰이게 된 배경, 이동 수단 뿐만 아니라 전투에까지 사용되었던 낙타,

구약 성경과 상업, 전투, 문학 등에서까지 아랍인들과 함께 한 낙타의 역사를 통해 낙타가 주는 아랍인들의 이야기를 느끼게 해 준다.그리고 이토록 친숙했던 낙타가 문명의 발달에 그저 관광상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씁쓸한 이야기는 문명의 발달이 또 하나의 자연 친구를 잃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없다.

중동을 말할 때 이슬람을 빼 놓을 수 없다. 아랍인들의 정신적인 뿌리이자 내전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이슬람의 종파 다툼, 아랍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슬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과연 이슬람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척박한 아라비아반도에 빛을 비추어 준 분이지.

내가 말하는 것은 영적 척박함이야.

그곳에서 우리를 건져 준 분이 바로 선지자 무함마드야.


아랍의 휴일이 이슬람의 역사에 따라 공휴일이 정해지니만큼 이슬람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일. 흔히 알고 있는 라마단부터 시작해서 무슬림들의 최대 꿈인 메카 성지 순례 이야기는 빼 놓을 수 없다.



우리는 보통 엄격한 무슬림을 생각하니만큼 모든 무슬림들이 철저히 라마단을 지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독교인이어도 교리를 지키는 정도가 다르니만큼 이 책에도 모든 사람들이 엄격하게 지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호주 워킹홀리데이 때 함께 일했던 무슬림 동료들이 떠올랐다.

먼 이국의 땅 호주에서도 라마단 금식월이면 어김없이 금식하는 동료들이 있는가하면 청소같은 험한 일을 하는 데 어떻게 금식할 수 있냐며 자유롭게 먹던 동료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들도 자유롭게 믿는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계기였다.

『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에서는 이슬람 외 타 종교가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우리의 편견도 깨뜨린다.

아기 예수가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에 거하던 유일한 기독교 마을 '올드 카이로' 이슬람과 함께 공존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협조하며 명맥을 유지하는 기독교인의 모습 등은 이 척박한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켜낸 그들의 믿음에 경이로움을 표하게 된다.

슬프게도 아랍은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 내전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한다. 그들의 유랑은 가까운 말레이시아로부터 유럽, 또는 한국이기도 하다.

특히 저자가 사랑한 어학원이 있던 예멘의 추억은 2018년 예멘 난민 찬반 논쟁으로 인해 저자는 더욱 안타까움을 표한다.

책에는 저자의 아랍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물씬 풍겨난다. 무엇보다 저자는 경험에 그치지 않고 그 역사왕 배경 등을 설명 후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함로 독자들이 빠질 수 있는 편견을 막아준다. 아랍의 여성들이 겪는 차별, 그리고 아랍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들을 통해 아랍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을 통해 아랍이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한다는 게 저자의 의도였다면 저자에게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아랍이 예전보다 훨씬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예멘 내전으로 인해 소식이 끊긴 어학원 스승과 동료들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아랍에도 하루 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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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전의 주인공 - 굿의 마지막 거리에서 만난 사회적 약자들
황루시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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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굿은 방법이 없을 때 찾는 동아줄과 같은 역할을 했다. 절실함에 무당을 찾고 무당의 굿판 뒤에서 열심히 빌던 모습을 종종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 이 굿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고 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과거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이 사회적 약자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굿에 나타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조명하는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뒷전의 주인공』이다.

『뒷전의 주인공』의 저자 황루시씨는 민속학자이자 가톨릭관동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무당굿놀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만큼 굿과 무당 등 무속 문화의 전문가이다.

"뒷전"이란 무엇일까. "뒷전"이란 무당굿의 맨 마지막 제차로 굿에 따라든 잡귀잡신을 물리는 절차이다.

가장 마지막 순서에 하는 순서로 하찮은 잡귀들을 결코 하찮지 않게 대접하는 것이다.

민속학자 황루시씨는 '뒷전'의 잡귀들이 주로 어떤 존재들인지에 대해 강조한다. 왜 하찮은 잡귀들인가?

바로 그들은 장애인, 불행한 민초들, 여성 등 사회적 약자로 험한 죽음으로 생애를 마감한 잡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뒷전은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며 풀어 주려는 의식이다. 무당은 그래서 이 뒷전이 중요하게 여긴다.


하릴없이 죽어 버려 본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기에 그 한은 더욱이나 깊고 아플 것이다.

이들의 한을 기억하고 적극적으로 풀어 주려는 것이 바로 뒷전이다.


뒷전은 지역마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고 하는 방식도 다르다. 황해도의 마당굿, 평안도의 뜰덩굿, 전라도의 중천맥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니 만큼 하는 방식도 약간씩 차이가 있다.

저자는 서울의 국사당, 황해도의 고 김금화님을 기리는 진오기굿 , 수용포의 수망굿등을 다니며 굿이 어떠한 형태로 잡귀들을 달래는지 소개해준다.

오직 무당의 구전과 체험으로 익힌 굿을 전승하는만큼 저자는 굿에서 부르는 무가를 통해 뒷전에 나오는 인물들의 의미를 해석한다. 가장 많이 나오는 시각장애인들, 아이를 낳고 죽는 해산모들, 다리나 팔을 못 쓰는장애인들, 꼽추 등 옛날에는 인간 취급도 받지 못했던 아픈 존재들이다. 사는 것도 쉽지 않았으니만큼 죽음 또한 억울한 사연이 많았다. 그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달래주는 것. 그것이 바로 뒷전이다.

무당의 연극으로 그들의 삶을 재현해내고 달래나가는 뒷전. 그들이 부르는 무가와 연기를 통해 저자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독자들에게 엿보인다. 단순한 동작이 아닌 그들의 사연을 통해 어떤 억울함이 있었는지 아픔이 자리잡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 주는 중요한 의미를 담당하고 있었다.

『뒷전의 주인공』은 결국 과거 사회의 아픈 자리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겠다. 죽음마저 잊혀져 그들의 삶을 알 수 없는 이들의 사연이 굿의 뒷전을 통해 재현된다. 그 연기 속에 죽은 자와 산 자가 화해하는 뒷전.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생을 꿈꾸는 무속 신앙의 참 면모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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